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천양희

2019. 11. 5. 11:26살다보니 이런일이/시(詩)를 위하여

시를 어떻게 쓸 것인가

천양희 시인

 




 


 

시를 쓸 때는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시란 실재에 대한 결핍과 갈등에서 출발하지만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발견, 체험과 상상력을 전제로 해서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란 말은 자기만의 체험(경험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체험은 자기만의 경험이다)을 씨앗으로 삼고 키워가는 과정에서 또 다른 체험을 보태서 참 시를 태어나게 하는 첫 물음이 되는 것이다.

 


 

또 시를 쓸 때 상상력만큼 중요한 것이 체험이다. 자신이 몸소 겪은 직접, 간접의 체험이 ‘어떻게’ 상상력과 잘 어우러지느냐가 살아있는 좋은 시의 요건이 되는 것이다.

 


 

특히 시를 쓸 때 어려운 것은 말과 뜻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얻는 것이다. 그 때 시의 생명이 되는 것은 긴장과 절제이다. 긴장과 절제가 없으면 시에 생동감이 없고 말만 많아져 시가 탄력 없이 풀어지고 만다. 그래서 시에도 말의 절약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시란 시인을 잠들지 못하게 하는 언어이며 일어서는 언어라고 했을 것이다.

 


 

좋은 시를 쓰려면 우선 창작의 기본방법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본방법이란 네 가지 많은 것(四多)인 많이 생각하고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찢어버리는(지워버리는) 것이다. 여기에다 세 가지 적은 것(三少)인 덜 먹고 덜 자고 덜 쓰는 텍사스 마인드를 함께 품고 산고(産苦)를 겪어야 한다.

 


 

그리고 또 좋은 시를 쓰려면 자기가 표현하려는 대상에 가장 잘 들어맞는 적절한 한 가지 단어를 잘 찾아야 한다.

 


아무 말을 적당히 갖다 붙이거나 이미 다른 사람이 써버린 말을 써선 결코 좋은 시 살아있는 시를 쓸 수 없다.

 


 

그리고 또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없는 사실을 상상력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과 있는 사실을 왜곡시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시는 감정의 해방이 아니라 감정으로부터의 탈출이다.

 


시를 쓸 때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보다 사물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어떻게 잘 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인식과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 살아있는 시를 쓰게 한다. 자기만의 유레카(발견)가 있는 시가 개성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가지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시인들은 자신의 시를 자세히 들여다 보는 현미경같은 눈과 남의 시도 잘 볼 수 있는 망원경 같은 눈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의 시에 대해서도 엄격해질 수 있고 책임질 수 있으며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기틀을 잡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정신이 해이해져 시가 잘 되지 않을 땐 ‘창조의 파괴’를 해야 한다.

 


창조의 파괴란 파괴함으로써 창조해내는 정신을 말한다. 창조에도 파괴가 있어야 하고 시에도 시의 위기, 시의 죽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시의 위기, 시의 죽음이야말로 새로운 시를 탄생케 하는 최고의 질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문학)란 삶에 대해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존재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는 것이며 어떻게 삶을 극복하고 살아가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