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과 저승 사이

2010. 5. 15. 10:05나 그리고 가족/수필(자작)

 

이승과 저승 사이


아그(아이)들이 많이 몰려 있다.

뭔 일일까?

누군가가 담장 아래서 단잠에 빠져 있다.

아 하고 쫘악 벌린 입 속에서는 파리가 한입 들어 있다가 아이들이 쫒으면 웅 소리를 내고. 잠시 흩어졌다 다시 모이곤 한다.

다 헐어진 누더기를 입고 있어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어려운데 헝클어진 머리에 창꽃(진달래) 몇 송이가 붉은 색이다 못해 남색으로 멍든 모양으로 꽂혀있다.

짓궂은 어린 놈 하나가 긴 풀잎으로 콧구멍을 폭 폭 찔렀다.


“으 히……. 히 에취.

어떤 쌍놈의 새끼여!

어디 낫으로 모가지를 확 베어버릴 것이여“


곰보딱지 공덕이 누님 이였다.


무슨 병인지는 몰라도 평시에는 멀쩡하다가도 날씨가 꾸무룩하고 습기가 많은 날 아침이면 윗동네 아랫동네 섬 온 산을 휘저어 가며 맨발로 뛰어 다니다가 해가 오르면 양지 바른 곳에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오수를 즐기곤 한다.

아이들은 국민학교에서 돌아오다가도 공덕이 누님을 만나면 무조건 도망하기에 죽을힘을 다하기 일쑤다.


잡히면 낫으로 모가지를 확 쳐버린다고 하든가 어쨌던가.


안 그래도 보리밭 속에 숨어서 학교 갔다 돌아오는 어린애들을 잡아서 피를 빨아 먹는다는 숨어있는 문둥이가 무서워 모래를 한주먹씩 게침(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디 공덕이 누님까지 그러니 영 살맛이 안 나는 등하교길.

그래서 친구들과 동네 학생들이 모두 모여서 줄을 맞춰 십 여리 길을 돌아오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자 집에 돌아오고 있었다.

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모퉁이를 돌자마자 공덕이 누님과 마주쳤다.

숨이 확 막혀 왔다. 이대로 죽게 되나 부다

간신히 공덕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때 공덕이 누님이 히죽 웃었다. 히히히…….


내 손을 와락 잡았다.

순간 오줌이 절로 나와 바지 밑으로 주루룩 흘렀다.


“ 야아! 이 것 먹어”


공덕이 누님의 더러운 손의 무강(새순을 잘라낸 맛없는) 고구마 삶은 것 하나를 내게로 내 밀었다.

순간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그 손을 휙 뿌리치고 잽싸게 반대 방향으로 도망을 하였다.

내 뒤를 공덕이가 전속력으로 쫒아오고 있었다.

한 참을 그렇게 달리다가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


공덕이 누님이 땅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버려진 무강 고구마에서 흙을 털어 내면서…….

공덕이 누님의 머리에는 여전히 새빨간 창 꽃(진달레)이 꽂혀 있었다.


그럭 저럭 국민학교도 졸업하고 중학생이 되어있던 어느 날.

학교 갔다 오는 길 옆 초가집 지붕위에 여자 옷 한 벌이 얹혀 있는 것이 보였다. 동네 사람들이 바쁘게 집을 들락날락 하는 것을 보니 무슨 잔치가 있나보다.

그런데. 

이럴 때 꼭 빠지지 않고 사맆(대문간)에 앉아서 오는 이 가는 이에게 시비를 걸어야 하는 공덕이 누님이 보이지 않았다.


팽나무 가지에 예쁜 종이 꽃 몇 송이가 걸려 있다.

땅거미 내리는 어스름녘 어딘가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간다.

아마도 우리들처럼 따스함이 오롯이 담겨있는 엄메 집을 찾아가는 모양새로…….


집에 돌아오니 어머이가 흥얼흥얼 하면서 육자배기조의 노랫가락을 이어가신다.


“우리 엄메 날나서 남한테로 보내서…….

나는 언제 알뜰한 임을 만나서 남사는 세상을 살 어나 볼까나…….

고나 헤…….에 “


“어머이! 어째 그런 노래를 불러요? 뭔 일 있소?”


“끌 끌 끌…….


그저께 저녁에 우리집에 찾아와서 밥 달라고 해싸께, 밉다고 비땅(부지깽이)으로 한대를 때러 부렀더니 돌아 감시로 달구똥 같은 눈물을 흘림 시로 무지하게 욕을 해 싸더니……. 오메 오메……. 쉽게 갈 줄을 어찌케 알았건냐……. 어따, 불쌍한 년……. “


“그 원수 놈의 손님…….

야속한 천연두는 아예 애를 쥑일라면 쥑이든지 할 것이지 다 죽었다고 해서 윗목 찬디다 싸서 논께. 열병이라서 그랬것지만 차디찬 냉기 땜 시 다시 살아서 죄인이 되었으니 빡빡 얽어 곰보딱지가 되어 부렀서.


그래도 고것이 커서 큰 오라버니 보다 더 나이 많은 중늙은이한테 시집가는 것이 너무도 서러워 한나절 내내 눈물로 적시다 떠났더란다. “


“바닷물이 든물(밀물)이 될 때를 기다려 물이 동동(잠잠) 해졌을 때 관사도(진도의 섬 이름)로 떠나는 풍선(돛배)이 시끄테 갱변(바닷가) 그 쪽빛에 바다 너머로 미끄러져 돛 끝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공덕이 누님의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무명수건만 흔들어 대더란다. “


“아베(아버지) 아베 우리 아베

뭣 할라고 나를 나서 남 한테로 보냈는가?

놈(남)들은 임을 만서 알콩 달콩 재미난 디…….

나는 나는 못 살것네…….

죽어도 못 살것네……. 내가 못난 곰보라도 이팔청춘 젊었는디 늙은이와는 못살것네. “


결국은 자유의 몸이 되어 상조도(진도 소재) 땅으로 돌아왔건만 거기에는 공덕이 누님의 집은 없었다.

산이 집이고 굴이 집이고……. 모든 땅이 내 것인 걸.


흰 종이로 만든 지전과 상여 꽃들이 바람에 출렁인다.


“ 너어오 너어오 너어오 너어오 어허허어 허어 어너리나 넘자 너허오 ...

세상사 쓸 곳 없네. 아무리 믿어도 쓸 곳 없고 …….

이 세상을 내가 간데 저건너 앞산이 북망이요…….


문턱 밖이 황천인데 세월아 멈춰라 오고가지 믿어라…….

어허노 어허노 어이가리나 넘자 너허요…….


일가친척 많다 해도 우리의 친구가 많다 해도 …….

내 대신 갈 이 없고 나만 홀로 떠나가니 인생 일장 춘몽일세…….


어허노 어허노 어이가라나 넘자 너허요…….

너는 가고 나만 남고 잘 살아라 잘 살아라 나는 이제 떠나 간

다……. 


어허노 어허노 어이가리나 넘자 너허요 ……. “


너무도 얄밉고 얄미운 유재(이웃) 아짐(아주머니)은 상여 앞에서 어깨춤을 덩실 덩실 추면서 상여를 인도한다.


“뭣이 좋다고 저렇게 춤추고 그란 다야……. 오메 뵈기 싫은 거.”


이제는 정든 집과 친지들을 하직할 시간이란다.


“사람들아 일가친척도 하적이요 동네사람도 하적(하직)이요

이제 가면 다시 못 올텐데 마지막 하직을 하고 가요…….

잘 있으시오 잘 계시오 나는 이제 한 번 가면 언제 다시 만날 손

가……. 명사십리 해당화야 명년 춘삼월 돌아오면 …….

꽃이 피고 열매 맺어 다시 만난건만 …….

이 잔둥(잔등)을 한 번 넘어가면 아하 어느 시절에 다시 만나리오…….

잘 계시요 나는 갑니다. “


그 고개가 바로 아리롱 고개였다는 것이다.


영원한 안식처를 찾아.


“에허야 왔네 내가 왔네 내가 여기 왔네…….

만년유택 내 땅을 내가 왔네…….

새로 벗을 삼고 수목으로 담장하고…….

만년 유택 여기 왔으니 모두 다 고맙구나……. “


그날 저녁 나는 초꼬지(호롱) 불 밑에서 아름다운 꽃상여 그림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