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가르쳐준 소녀

2010. 5. 15. 10:03나 그리고 가족/수필(자작)

 

사랑을 가르쳐준 소녀 / 박인태



저는 중3 때에 비로서 사랑이란 것을 배우기 시작했나 봅니다.

이제는 이웃집 소꿉친구 순이도 같이 잘 놀아주지 않은 그 시기에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때부터 순이가 더 예뻐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이였답니다.

그날따라 눈이 몹시도 많이 내렸지요

모처럼 남녀 친구들과 여럿이 모여 뜨뜻한 구들을 깔고 손뼉을 토닥거리며 노래를 하고 놀았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잠시 정지간(부엌)에 나가있던 순이가 정지문을 빼곰이 열더니 나에게 까닥 까닥 손짓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추위에 잘 익은 붉은 볼을 문지르며 나지막하게 내 귀에 속삭입니다.


“이 세상에서 널 젤로 사랑 혀야~~~”


순이의 고백을 듣는 순간 나는 견딜 수 없는 당황함에 몸 둘 바를 몰랐답니다. 혹시 다른 친구들이 들었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으며, 말문이 막혀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말았답니다.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순이는 아무렇지도 않는 듯이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고 재촉을 합니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 방에서도 소녀는 저에게 이상한 눈빛과 함께 미소를 보내곤 했지요. 아 그 미소……. 견디기 힘든 고통 이였습니다.

글쎄 사랑을 배울 때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도저히 그 바늘을 깔고 있는 불편함이란.


소변을 핑계 삼아 허겁지겁 집으로 도망을 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온 세계는 백설로 은빛인데 머릿속은 텅 빈 사람이 되어 정신없이 달렸답니다.

눈구덩이에 빠지고 뒹굴면서…….

그러다가 잠시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하늘을 보니 달빛도 휘황하더군요.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은 걸 어떡합니까!

동짓달 긴긴밤을 뜬눈으로 하얗게 새우면서 비로소 사랑의 의미를 중얼거립니다.


“사랑이 무얼까? 사랑이 무얼까? ”


다음날 새벽 첫닭이 훼를 치며 시끄럽게 울었습니다.

아직은 밖은 달도 지고 없는 까만 밤의 계속입니다.

그래도 밤새 참았던 소변 때문만은 아니고 도무지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심장이 멎을 것 같아서 엄동의 매서운 바람 속으로 몸을 내밀었습니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내 깜정 운동화 한 짝이 어느 틈에 조그맣고 예쁜 빨강 맹꽁이 운동화로 변해버렸지 뭡니까.

이런 무슨 운명의 장난……. 스치는 생각 엊저녁 순이네 집에서 급하게 도망쳐 나오면서 그 계집애 신발 한 짝을 바꾸어 신고 온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저는 운동화가 한 켤레 밖에 없으므로 그냥 없던 일로 하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았습니다.

날이 더 밝기 전에 아무도 몰래 신발을 바꾸어 신으면 감쪽같을 것 같았습니다.


나는 순이네 집을 향해 어두운 겨울 눈길을 마구 달렸습니다.

밤새 눈이 더 내려 눈 위에는 내 발자국만이 선명하게 찍히고 있었습니다.

이러다가는 온 동네에 소문에 금방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합니다.

아 ! 얼마나 창피를 당할까…….


어느덧 소녀의 집에 당도하여 살며시 문 앞 신발이 놓인 댓돌을 관찰합니다.

그때 갑자기 정지문이 열리며 소녀가 나옵니다.

어쩌면 밤새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소녀도 나처럼 밤새 잠을 못자고 기다린 것처럼 두 눈을 부비면서 저를 빤히 바라봅니다.

얼굴을 마주보지도 못하고 눈길이 땅으로 향하는데…….

아뿔싸! 내 신발을……. 내 신발을 소녀가 신고 있지 뭡니까…….

모기소리 만큼 작은 목소리로


“내 신발 줘.........”


소녀가 방긋이 웃으면서 내게 다가오라는 시늉을 합니다.

너무 예쁜 모습에 심장은 요동치고……. 몸마저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소녀는 내게 다가와서 내 어깨에 그녀의 손을 얹으며 살짝 내 신발을 벗어 내게 밀어 줍니다.

그리고는 눈빛으로 재촉합니다.

어서……. 그러면서 나에게 더 큰 힘으로 기대는 걸 느꼈습니다.


소녀가 신었던 신발은 왜 그렇게도 따뜻합니까!

집에 돌아오는 길 소녀가 벗어준 쪽 발이 몹시도 후끈거림을 느꼈답니다.


야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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