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추웠던 겨울밤

2010. 5. 15. 10:01나 그리고 가족/수필(자작)

 

그 추웠던 겨울밤 / 麗尾박인태

 

옆 동네 동구지 개똥수 아저씨가 군대 가서. 군 복무하기 더럽게 빡세다는 소문이 자자한 해병대에 끌려가서 몽둥이 배트를 허벌나게 맞아 그냥 병신이 되었다던가?

어쨌다던가?…….

 

아랫말 코 찌지리 형이 군대 가서 고향에 편지를 보냈는데.

 

글쎄. 어째야 쓰가…….

 

겉봉투는 간신히 옆에 전우한테 글씨체가 안 좋아서 그런다고 함시로 대필로 쓰기는 썼는데 속 편지를 쓸 줄 알아 야제.

워메 복장 터지고 환장하겠는 그. 에라, 모르겠다.

 

집 그림 하나 그리고 그 위에 굴뚝을 그리고

날아가는 큰 새를 한 마리 그려 넣고 편지를 보냈는데,

 

동네 사람들이 이 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가 결론이 뭐냐?

 

“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아도 갈 새가 없다” 는 뜻이었다.

 

그래서 또 한 번 크크 웃음이 묻어나던 우리 동네 사랑방의 추억

어쨌든 그 밤은 그런대로 왁자지껄하고 어른들의 군대 이야기로 재미가 나던

겨울밤 이였지.

 

한편으로는 가난한 섬사람들의 겨우살이 식량인 고구마가 소리 없이 썩어가던 슬픈 밤!

 

여미리 섯동굴 모가지와 목 너머로 보이는 씨아도 사이로 매섭게 불어오던 도지바람

(태풍을 동반한 북풍)에 문풍지는 허일 없이 울어대고 을씨년스러움이 소름을 돋게

하던 그 하얀 밤.

 

섯동굴과 벼락바 너머 눌옥도 근처 송곳 여 바다로 어둠이 벌겋게 빠지는 시간이면 아부지와 삼춘들이 모방(사랑방)에 모이거나 안방 윗목에서 새나꾸(새끼) 여러 발을 꼬아 놓으신다.

보드랍게 추려놓은 물을 적신 짚단에서 한두 가닥씩 뽑을 때 마다 차가운 물방울이 여기저기로 틔기 곤 했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 새끼 꼬던 아잡씨들이

“아가, 원능(빨리) 자라” 채근하신다.

 

혹시 나를 재우고서 삼춘들끼리 맛있는 거 추렴해서 묵을라고 그런 거 아니야?

의심 병이 도져서 잠자려 가고잡지 않지만 할 수 없이 채근에 못 이겨 안채로 건너와

할머니 왼 어깨를 베고 누웠다.

 

그리자 할머니는 내 배를 쓸어내리며 나직하게 자장노래를 시작했다.

항상 듣던 노래. 그 노래는 주문인 것도 같고 노래도 같아서 금세 소화가 더딘 더부룩한

배도 내려가고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든다.

 

자장자장 우리 애기/

문턱 밑에 검덩개야/

울 애기 밥 한술 뚝 떠 묵고/

우리 애기 잠재 주라/

반침 밑에 삽살개야/

울 애기 밥 한술 뚝 떠 묵고/

우리 애기 잠재 주라/

마당 가운데 멍멍개야/

울 애기 밥 한술 뚝 떠 묵고/

우리 애기 잠재 주라/

동네 개도 짖지 말고/

꼬꼬 닭도 우지마라/

우리 애기 잘도 잔다/

울 애기는 꽃밭에다 뉘어주고/

남의 애기 쇠똥 밭에 뉘어 논다"/

자장자장 우리 애기/

(전남 진도군 조도면 자장가)

 

아직 잠이 덜 든 것 같은데 부엌 벽적에 붙어있는 초꼬지(호롱) 불을 후 욱하고 끄셨다.

 

간신히 잠을 잔 것도 같고 아직 안 잔 것도 같은데 뒤척이는 모양새를 보았는지 어렴풋이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가 어째 그러냐? 나쁜 꿈이라도 꿨냐!"

 

“아니랑께라…….”

꿈인지 생신지 대답까지 했다.

 

꿈결에 유재(이웃) 쌈 잘하는 그 새끼하고 한바탕 쌈질을 했는지 어쨌는지

뽀스락 뽀스락…….

 

 

성가신 소리에 잠을 깬 시간은 어느새 새벽 미명이다.

 

“어따……. 솔찬히 바람이 팩팩 부러 부네요.…….”

 

언제 갱변(바닷가)에 다녀오셨는지 아버지는 진줄(바다해초) 묻은 갯 옷을 벗고 계신가

보다.

 

“어찌 게나 파도가 쌘지......, 쪽대가 아무리 길어도 쪽질 하기 겁나게 무섭디다”

 

혼자 말처럼 아버지는 할머니 들으라고 구시렁구시렁 그러시는 것을 안다

 

아! 오늘 아침에도 맛있는 오징애국 묵것구나.

살짝 디쳐서 초장에 찍어 먹어도 겁나게 맛있것제.

 

겨울 태풍이라도 불라치면 조도 섬 주위에 지천으로 배 뒤집어져 떠밀려 해변으로 들어오던 오징어야 한 양동이는 하루 새벽이면 건저 냈지.

 

껌뎅이가 주렁 주렁 매달린 정제깐 무쇠솥 끓는 물속에 살짝 데쳐낸 오돌오돌한 하얀 살점하며 뜨끈한 놈을 부엌칼로 대충 잘라서 입 천정이 데도록 주어먹던 갑오징어.

서로 바라보며 낄낄웃던 먹물뭍은 얼굴은 행복의 미소가 가득했었지.

 

지천으로 넘치던 그 풍요의 바다.

나이 들어 너무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