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5. 15. 10:00ㆍ나 그리고 가족/수필(자작)
제목 : 아빠의 무용담
우리나라 보통의 월급생활자가 그렇듯이 정신없이 지나가는 생활전선에서 겨우 숨을 돌리는 주말이 되면 집에서 늘어지게 자고 싶은 것이 요즘 40대 후반 가장들의 소원인 것이다.
엊그제 토요일 저녁에도 친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서해안 바다낚시를 다녀와서 사워를 하고 평시의 버릇대로 팬티만 걸치고 목욕탕에서 나오는데, 둘째딸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우 뚱하면서 아빠를 불러 세웠다.
“아빠 물어 볼 것이 있는데……. 잠깐만요…….”
“뭐가 급하다고 사워하고 나온 팬티차림 아빠한테 묻는다고 그래?”
아무리 허물없는 가족이라지만 선뜻 지나가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이렇게 불러 세우고 정색하며 뭘 묻겠다는 딸년의 행동에 약간 당황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왜? 물어봐!”
“아빠 지금 수건으로 가린 옆구리 말이야……. 그 상처는 무슨 상처야?”
“응……. 이거……. 글쎄 전에 알려주지 않았던가?”
“아빠 옷 입고 알려 줄 테니 조금 있다가 아빠 방으로 들어와라”
언제부턴지 우리 애들이 가끔 물러와서 대충 얼버무리고 정확한 답을 해주지 않던 터라 오늘은 자세히 알려주고 자식들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기로 하였다.
기왕이면 그럴듯하게…….
“그러니까…….
지금부터 약 20년 전
너희 엄마와 아빠가 결혼하기 약 1년 전 어느 날 저녁 이였지.....,“
너희 엄마를 집에 데려다 주려고 한적한 골목길에 들어서 몇 발자국을 옮겼을까
뒤에서 이상한 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니 느낌이 안 좋은 덩치 좋은 남자 너덧 명이 거들먹거리면서 뒤를 바짝 따라오고 있더구나.
직감적으로 불량한 청년들이라는 느낌이 뇌리를 스치는 그 순간…….
“왜 처다 봐? 떫냐? 그림 좋은데......,”
“왜 그러십니까? 저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나요?”
“다른 게 아니고 거기 예쁜 여자 말이야 우리하고 좀 놀자고 하는 말인데……. ”
아빠는 순간적으로 너희 엄마를 몸으로 감싸고 대응 자세를 취했지…….
그러자 불량한 청년중 하나가 나서더니 주먹을 날리더구나. 그래서 아빠는 순간적으로 피하면서 그 동안 태권도로 단련된 운동신경을 총 동원하여 싸움이 시작되었단다.
한참 정신없이 싸움을 하다보니 두어 명은 이미 도망을 하고 한명이 너희 엄마를 인질로 나를 위협하더구나.
그래서 다가가서 행동을 취하려는 순간 아빠는 힘을 잃고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단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 똘마니 겁쟁이가 아빠한테 맞는 것을 두려워하여 휴대한 잭나이프를 휘두르고 도망을 한 것이었다.
다행히 너희 엄마가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의 도움을 청해서 곧바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지
그때 아마 한 15바늘 꿰매고 며칠 입원한 사실이 있단다.
그때만 해도 이 아빠 날라 다녔다고 말해야 하나……. 하 하 하
“진짜야 아빠! 정말 멋지다~”
“그럼 아바가 너희들에게 거짓말을 하겠니……. 의심나면 네 엄마한테 물어보지 그러냐.”
“이 영광의 상처가 없었다면 아마 우리 딸들도 이 세상에 태어나기 어려울 수 도 있었겠지…….”
“왜냐하면 그 사건을 겪고나 서 너희 엄마와 사랑이 훨씬 깊어졌거든……. 하하”
“역시 우리 아빠 최고 멋쟁이야”
딸년들이 흥분하는 모습에 아빠는 으쓱하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옆구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이러한 딸들과의 대화도 한두 번이지 여러 번 무용담이 되고 보니 옆구리 상처 이야기는 매번 각색되어 점 점 그럴듯하게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에 내 자신도 놀라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릴 적에는 별다른 의심 없이 아빠의 무용담에 갈채를 보내던 큰딸이 의심 병이 도졌는지 부엌에서 혼자 애쓰고 있는 엄마를 찾아가서 아빠의 무용담이 사실인지를 캐묻기 시작했다.
그러자 여태 나의 무용담에 이렀다 저랬다 논평을 자제하던 마누라가 오늘은 무슨 일이 힘들었는지 아니면 힘든 일 거들지 않는다고 삐졌는지 중대 발표를 하고 말았다.
“ 예들아 웃기지 말라고 해라……. 너희 아빠는 태권도는커녕 맨손체조도 제대로 모르는 몸치거든”
“사실은 말이야 그 상처에 대해서는 나도 자세히는 몰라도 어쨌든 엄마와 데이트 어쩌고저쩌고 하는 과정에 생긴 상처는 턱도 없는 헛소리란다”
“아빠! 그럼 뭐여요?”
“그럼 여태 우리한테 뻥쳤다는 말이에요? 말씀해 주세요. 진실이 뭐예요?”
“빨리 빨리요”
“알았다 알았다고......, 사실대로 말해줄게........, 나중에 나중에 말이야”
이제는 말할까 보다
사실은 말입니다. 지금으로부터 49년 전 저는 저 멀리 우리나라 남쪽바다 건너 전라남도 진도군 조도면 여미리라는 조그만 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태어난 아기의 오른쪽 옆구리에 조그만 물 혹을 갖고 태어낫다고 합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하시던 우리 할머니께서 아버님을 데려다 놓고 추궁한 결과 어머님의 산달에 이웃집 수퇘지 불알을 거세하여 주셨다는 자백을 받아냈답니다.
그리하여 자식의 생산을 담당하시는 조앙신님의 노여움을 일으키시어 수퇘지 불알과 비슷한 모양의 상징을 갖 태어난 아가의 옆구리에 붙여서 경각심을 일깨워 주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할머니께서는 아침마다 정화수를 떠다놓고 두 손을 싹싹 부비시며 조앙신께 빌고 또 열심히 비셨다고 한다.
정성이 부족하셨던지 아니면 죄가 너무 중하였던지는 몰라도 그렇게 열심히 빌어주신 우리 할머니의 바램은 이루어지지 않아 최후로 선택한 방법이 있었으니 굿이었다.
어머님의 산후 3칠일이 되던 날 아침에 근동에서 유명하다는 당골레(무당)가 초청되어 나의 옆구리 혹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굿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 큰 형님께서 그때 상황을 다 기억하고 있어서 들어 옮기자면 그 굿이 참으로 재미있었다고 한다.
당골레는 우리 집에서 키우던 새끼돼지 한 마리를 준비해서 쑥물과 향물로 정갈하게 우선 목욕을 시키고 나서 옆에 묶어놓고 굿을 시작했다고 한다.
징을 두드리며 경문을 외우면서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하는 굿을 구경하느라 동네 사람들과 어린애들이 빙 둘러싸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 그 굿하는 모습이 하도 괴이해서 여기저기서 킥킥대며 웃음보가 터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당골레 할메는 징 한번 두드리고 돼지 불알 한번 만지고........, 생각만 해도 웃기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열심히 굿을 하던 과정에 묶어놓은 돼지가 감자기 쾌......,액 요란한 괴음을 지르면서 느슨해진 탓인지 고개를 돌려 굿을 열심히 하는 당골레 할메의 손가락을 깨물어 버렸다.
너무 갑자기 당한 일이라 당골레 할메는 돼지도 놓치고 손가락에서는 시뻘건 피가 묻어나고 신성한(?) 굿판이 개판이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되어 마지막 정성을 드린 옆구리 혹 없어지는 굿판도 개판이 되어 끝이 났다.
문론 그 일이 있은 후에도 나의 옆구리에는 여전히 혹이 붙어있었다.
이제 나이가 여섯 살 쯤 되었을 무렵에는 그 혹은 너무 커져서 말랑 말랑한 정구공 크기까지 자라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뙤약볕이 작열하던 바닷가 해수욕장에서 재밌게 놀던 나는 낮은 갯바위에서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 일로 혹이 다쳐서 밤에 고열이 되고 혹이 퉁퉁 부어 올랐다.
그 다음날 할머니와 나는 4시간의 여객선을 타고 목포로 후송되어 모 병원(이름이 기억이 안남)에서 혹 제거 수술을 받고 며칠을 입원하다가 완치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내가 고향집에 돌아온 그날 저녁 우리 할머니께서는 목욕재계하시고 조촐한 제상을 준비했다. 그리고 길고 잔잔한 목소리로 조앙신님께 정성을 올리는 제를 올리셨다.
아마 우리 손자 혹이 무사히 없어지게 도와 주셔서 감사하다고 하였을 것 같다.
이제는 말할까 보다
“애들아! 아빠의 상처는 조상님들의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치유된 복주머니 흔적이란다.
여기까지 저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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