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닭

2009. 6. 20. 10:13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쌈닭


           麗尾 박인태


숲에서 살 때는

어쩌다 내 암탉 엉덩이 산란관에

살을 비비려는 그놈이 미워서

적당히 겁주어서 쫓으려고

발길질과 날개를 퍼덕인 것뿐입니다


어느 날부터

친절한 주인님이 돌봐주면서

누가 내 사랑을 훔쳐갈까 봐

따끔하게 일격을 가해 쫒아버리곤 했습니다

사랑은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거잖아요


더없이 고마운 주인은

하루가 멀다고 고급스러운 먹이를 주십니다

그분은 나의 신이십니다.

이제부터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은 하찮은 장식에 불과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신이시여

당신의 뜻이 그러하십니까?

나의 발톱은 아주 보잘것없나이다.

날카로운 창칼을 내려 주옵소서!

거룩한 전쟁에 적을 섬멸하겠나이다.


이제 깨달았습니다!

주인님은 내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당신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려도 좋습니다

아! 설령 이 몸 부셔져 사라져도

당신이 마련한 저 낙원에 있을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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