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 위에 집을 한 채 그려보라. 지붕부터 그렸다면 당신은 아마도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집을 지어본 목수는 결코 지붕부터 그리지 않는다. 먼저 주춧돌을 그린 다음 기둥 도리 들보 서까래 지붕의 순서로 그려나간다. 그것은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다. 배 만드는 목수 마광남(61·완도군 완도읍·노동부 선정 한선기능 전승자)씨도 그랬다. 그의 차 운전석 옆 선반에는 종이배가 가득 있다. “배 만드는 놈인께 담배 피우고 남은 빈 껍닥 가지고도 배 만들고 있더라”는 그가 만든 종이배는 앞뒤 높이가 같지 않다. 배 앞머리는 훌쩍하니 높고 뒤는 낮다. 심심풀이로 종이배 하나를 만들어도 ‘저절로’ 제대로 만들고야 마는 그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우리 전통 목선들의 모형을 만드는 일이다.
“내가 죽으면 요것이 고만이것다, 흔적도 없것다 싶응께 안되것더래니께. 맥이 끊기는 게 아깝고 서운해서 혼자 맘이 급해졌제. 내가 할 수 있는 맨큼은 다 맨들어 놓고 남겨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 완도 화흥포의 송대목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비좁은 컨테이너박스가 현재 그의 작업실이다. 아침7시에 출근해 오후6시에 퇴근한다. 하루에 꼬박 11시간 정도를 일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돈이 돼서도 아니다. 그는 군 제대 후 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까지 완도조선소에서 목선 만드는 일을 했다. 일도 재미있고 돈벌이도 좋았다. “내가 만들어낸 배가 바다에 나가는 것이 그렇게 재미지고 오져. 바다에서도 배들끼리 누가 더 빨리 간가 무언의 경쟁이 일어날 때가 많네. 이기고 온 선주가 아따 ‘누구 목수가 만든 배 참 잘 가데’라고 넌지시 한마디 건네면 그게 제일 큰 칭찬이고 보람이었지뭐.” 잘 만든 배라면 물의 저항력을 최소화하고 기울었다가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복원력이 좋아야 한다. 특히 뱃머리 부분을 날렵하게 만들어야 솜씨좋다는 인정을 받는다. 각도가 너무 커도 배가 기우뚱해지고 각도가 너무 작으면 속도가 떨어지므로 각도를 적절히 날렵하게 뽑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한창 배만드는 일에 재미가 붙을 무렵 FRP선박이 나오면서 목선 수요가 점점 떨어지기 시작해서 결국 그 일을 접게 됐다. “목선은 파도가 있을 때도 항해하기 좋고 환경면에서도 좋제. 기관만 제거해서 물 속에 가라앉혀도 되고. 그러면 그것이 어초라고 물고기 아파트 역할도 하잖여. FRP 배는 썩지도 않고 뒤처리하기가 골칫거리제.”
배 만들기를 잊고 딴 일로 생계를 꾸리며 살아온 지가 수십 년인데 몇 해 전부터 새삼스레 배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졌다. “오매 미쳤가니 돈도 안 되는 일에 빠졌다냐.” 주변에선 말렸지만 그래도 좋았다. 본격적으로 배 모형 만들기를 시작한 것은 97년. 제일 힘든 건 자료수집이었다. 같은 연대의 배를 참고하기 위해 일본, 중국에도 가보고 선박에 관한 기록이 한 줄이라도 나와있는 책이면 모조리 구해서 읽고 있다. 증언도 열심히 구하고 있다. 2년 전께 강진의 옹기 운반선을 만들 때도 그랬다. 강진 칠량에 옹기 운반선을 상세히 기억하고 있는 90세 된 노인이 있었다. 그 증언을 토대로 배를 조금씩 만들어나갈 때마다 차에 싣고 강진으로 달려가서 둘이 얼굴 맞대고 배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연구했다. 그렇게 완도와 강진을 열다섯 번 오간 끝에 옹기선을 완성했다. “인자 흠잡을 데 없이 잘 만들어졌구만.” 드디어 노인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기쁨은 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공력을 쏟았어도 일단 만들어진 것에는 미련이 없다. “언제라도 복원할 수 있게끔 내 머리가 기억하고 내 손이 기억하고 있으면 그 뿐.”힘들여 만든 옹기 운반선도 강진군청에 기증했다.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배만 나오면 정신이 홈빡 쏠린다. 북한관련 프로그램을 보다가 대동강에서 백범 김구선생이 탔었다는 배가 얼핏 한 장면 소개되는 걸 보고 방송국에 수소문해 그 비디오테이프를 구하기도 했다. 산에나 숲에를 가도 나무를 보면 ‘오매 저것으로 배만들면 좋것네’라는 욕심부터 난다. 소나무 삼나무 밤나무 가시나무 가죽나무 비자나무 굴피나무 녹나무…각각의 수종 성질에 따라 쓰면 좋을 배의 부분들이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배에서 제일 만들기 어려운 부분은 부자리삼이다. 자연스럽게 휘어지도록 곡선처리를 하다보면 나무가 부러지기 일쑤이다. 몇 번이고 인내심과 끈기를 발휘해야 한다. 나무를 통째로 놓고 만드는 대부분의 모형 배들과 달리 원래 배의 제작공정 그대로 만드는 것이라서 더 힘이 많이 간다. 최근 개관한 완도 어촌민속전시관에도 그가 만든 실물크기의 고깃배 1척과 판옥선, 상고선, 주낙배, 옹기선, 동해안 떼배, 남해안 채취선 등 모형 11점이 전시돼 있다. 지금까지 13종의 배 모형을 만들어온 그는 앞으로도 복원해야 할 배 모형은 “한도 끝도 없이 많다”고 말한다. 바닷배뿐만 아니라 지역마다 강마다 다른 강 배도 만들고 싶다.
 옹기선
그 수많은 배들 중에서도 제일 만들고 싶은 배는 장보고 선박이다. 형태나 특징, 구조 등에 관한 기록과 자료를 구하기 힘들어서 작업은 더디지만 열정은 변함 없다. 장보고는 도대체 어떤 선박으로 해상무역을 했을까. 남들에게는 전혀 궁금하거나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에게는 너무 궁금하고 중요한 물음이다. 예순하나의 나이에도 호기심을 잃지 않았으며 꼭 이루고 싶은 꿈을 갖고 있는 사람. 그가 행복해보였던 이유다.
남신희 기자 miru@jeonlado.com">miru@jeonlad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