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암 터

2007. 8. 15. 08:25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새암 터

       

        여미(麗尾) 박인태 

 

 

우리 마을

가운데. 

깊고 맑은 우물

동네 새암 터


너무

깊은 새암은

현기증이 난다

어느 해 섣달 그믐밤

다정한 양 뒤에서……

그 우물가에는

죽은 엄니의

한숨 소리가 난다


그 새암은

임종 앞둔 울 아배가

각시는 남이라고

아들만 모아놓고

비밀로 알려주려다 들켜버린

우물 속에 감춰 둔

금방 튀어 오르려 무릎을 세운

일어서지 못한

황금 소머리 이야기

비밀을 안다


그 새암 가에서

소싯적부터 

보고 기억한다는

고모가 들려준

우리 할미의

삼단 같은 빨간 댕기머리

치렁치렁 춤을 추며

두레박질 하던 모습

말 같지 않은 이야기의

비밀을 안다


그 새암은

무척이나 서운한.

금숙이가 침 뱉은 일…….

용배의

자치기 작은 잣대

심술 나서 던져 버린 일.

삼두가

여자애들 신발 샘에 감춘일.

볼메수 엄니가

빨래하다

구정물 덜 씻고

두레박질 한일…….


동네 새암은.

다 기억한다.


그 중에서

더 생각하고 늘 좋아라 하는 일

정월 보름날

마당 구석도 네구석

방구석도 네구석

샘 구석도 네구석.


둥기 둥가 잘난다.

잘난다 펑펑 잘난다.

샘구멍에서 잘난다.


신나게 두들겨 대던

군고 농악패의

북장구 쾡과리 소리를

더 생각한다.


열두 발

상모 춤처럼

빙글 빙글 돌며

동네 새암은 쉬지 않고

펑펑 쏟는다.

잘난다 잘난다.

우리새끼들 키워낸

엄메 젖통처럼

쉼 없이

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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