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회초리

2013. 12. 17. 14:29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아버지의 회초리

 

                                    麗尾박인태

 

일천구백칠십일 년

국민학교 5학년 초겨울 무렵

하굣길 인적 드믄 양지 산소에 숨어

옆집 친구와 일만 원 지폐 다발의

백 원짜리 수를 세어보았다.

하나둘……. 아흔아홉 백.

백 하나!

백 원짜리 한 장이 남았다.

심장이 두근대고 숨이 가빠왔다.

다시

친구와 번갈아 여러 번 수를 세어도

큰돈 백 원 한 장이 분명히 남았다.

이런 것을 횡재라 하나보다.

오던 길을 되돌아

이웃동네 점방으로 달려가

십리사탕 한 봉지와 크림빵 두 개

껌 한 통을 사고도, 칠십 몇 원이 더 남았다.

 휘파람을 불며 즐겁게 집에 돌아 와

아버지께 신문지에 싼 돈 뭉치를 전달했다.

심부름 잘했다는 칭찬과 용돈을 기대하며.

속으론 아버지의 용돈은 오늘의 횡재와

비교도 안 되는 푼돈이겠지.

돈다발에 퉤 퉤 침을 발라가며

몇 번을 세시던 아버지께서

책가방을 가져 오라 하셨다.

가방을 거꾸로 흔들자

동전이 쏟아지고

숨겨놓은 십 원짜리 지폐가

팔랑팔랑 놀리듯 얄밉게 기어 나왔다.

나는 목침에 올라서서

팔짝팔짝 뛰면서

생전 처음 아버지의 회초리를 맞았다.

후로 그 회초리를 늘 기억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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