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4. 22. 14:18ㆍ살다보니 이런일이/시(詩)를 위하여
최문자 시인은 협성대학교에서 문예창작과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중 시인은 이 시대의 마지막 양심이라는 순수성에 높은 점수를 받아 대학교에서 무작위 추천을 받아 총장으로 선임이 되었다고 한다.
대학교 총장 선임은 이사회의 2/3 이상 결의 선인 12표 이상을 얻어야 총장 선임이 될 수 있었으나 처음 투표에서 단지 1표 밖에 얻지를 못하여 순간 포기하려고도 했었으나 추천인들에 대한 예의 및 여자 총장의 높은 벽을 무너뜨리고자 시인의 자존심을 걸고 이사진의 각 개인들을 접촉 설득하여 목표를 이루었다고 한다.
총장은 카리스마나 도전 정신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며 시인으로서 오로지 감내하며 문학에 대한 열정 하나를 믿으면서 모든 권위를 버리고 꾸준히 노력을 한 결과 소기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하였다.
여고 졸업 시에 이미 소설로 신춘문예에 당선을 하였으나 그 후 약 10 년간을 절필을 하며 글 쓰기를 포기하고 지냈었다고 한다. 비록 지나간 이야기이긴 하지만 주위의 많은 문인들이 계속해서 작게 작게 글을 쓰고 있다가 지금은 말라 비틀어진 모습을 보게 되는데 반하여 자신은 늦게 그 동안 못쏟아 부은 문학의 열정을 일시에 뿜어낼 수가 있어 지금껏 많은 문학 활동을 할 수있음에 많은 감사를 느끼고 있다고 하였다.
자신이 생각컨데 진정한 문학으로는 시. 희곡, 드라마, 평론, 동화 등을 꼽을 수 있으며, 수필은 누구나 쓸 수 있는 장르로서 자신의 대학교에서는 수필 전공을 아예 빼버리는 결단을 내리기까지 하였단다. 문학이란 무단하게 열심히 노력을 하여 아예 뿌리를 뽑아 내야 하며, 만약 문학을 하던 중도에서 그 맥이 끊기게 되면 다시 문학을 새롭게 시작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주위 동네 아줌마들과 어울려 놀는 것을 즐기기 보다는 문학에 큰 꿈을 그리면서 매진하여야 역설을 한다.
문학의 근원을 살펴 본다면 샘물에 해당하는 원칙적 측면과 그릇에 해당하는 실현적 측면의 두 양태가 있다. 원칙적 측면은 문학을 공부하기 이전에 소유한 것으로서의 샘물로 가령 다섯 째 첩의 딸이나 창녀의 딸로 태어 난 경우나 반대로 재벌집 딸이나 시인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나서 문학을 할 환경이 자연스레 주어진 경우를 들 수있다.
실현적 측면은 비록 문학적 환경으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글 쓰는 학문을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가 주어졌거나 혹은 좋은 문학 선생님을 만나는 주변 상황이 알맞게 주어진 경우를 이른다.
만약 자연히 생성된 샘물을 깡통에 담으면 제 물 맛이 안나게 마련이지만 값나가는 도자기에 담게 되면 샘물의 본연의 가치 이상의 물 맛으로 구미를 돋구게 된다. 이전까지만 해도 문학을 잘하려면 원칙적 측면에서의 90% 재능에 10% 노력을 요하였지만 현재는 70% 정도의 실현적 측면이 강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당금은 글 잘 쓰는 스승을 만나거나 좋은 모임 등을 통해서 문학의 정도를 마음껏 높혀 갈 수가 있다. 개중에는 대학도 안다니고 지게만 둘러매고 다니는 생활을 하면서도 훌륭한 작품을 쓰는 분들이 더러 있기도 하다. 하지만 대다수의 문인들은 실현적 측면에서의 좋은 글을 쓰고 있다.
문학은 일상적 삶의 표현이기에 신학, 철학, 과학 등의 모든 책을 두루 읽어야 하며 그래야지만 작가로서 상상력을 발휘하여 허구를 만들 수가 있으며 이를 현상이라고 하는데 시 창작에도 깊은 관계가 있다.
훗설에 따르면 학문은 비록 어려운 것이지만 어린이라도 현상학을 익히는게 가능하다고 한다. 현상학이란 무엇을 어떤 마음에서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컵은 눈으로 볼 수있는 실재를 인식하는게 매우 중요하며 또한 나무의 경우로 보면 나무에 다가가서 나뭇가지, 잎 및 안보이는 뿌리까지 들여다 보는 안목을 키운 후 모든 것을 인식한 후에야 글의 기초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만약 실재를 등한시한다면 글이 안써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그래서 자신은 제자들에게 풀이라는 주제를 주면서 자신의 느낌은 적지 말고 실재만을 쓰라고 종용도 했었으며 실재를 제일 많이 쓴 학생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으며 그 후에 쓴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하여 자신이 느낀 바를 적게 하는 훈련을 시켰었다. 왜냐 하면 실재 없이는 상상만으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실예의 하나로 한 양심 없는 시인의 작품을 소개해보기로 하겠다. "장미원에 갔다. 꽃의 수효보다 많은 나비, 어지러워 눈을 감았다." 라는 싯귀를 대하면서 여러분은 이 시에서 잘못 쓰여진 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왜냐 하면 통상 나비는 날개가 장미 가시에 찔릴까봐 장미에 앉지를 않으며 오로지 벌만이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실재 없이 오로지 상상력으로만 쓴 시로 좋은 시는 못된다. 이는 장미원에 가지 않고 상상력만으로 쓴 글로 작가 자신이 아무런 감동 없이 쓴 글로 어느 독자가 감동을 느낄 수가 있다는 말인가.
염상섭의 소설인 표본실의 청개구리란 작품을 보더라도 '청개구리를 해부하여 가지고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장을.'이라고 기술을 하고 있는데 실재는 청개구리가 냉피동물로서 김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화이드 보드가 흰색이라고 표현을 한다면 이를 쓴 사람은 거짓으로 감각이 없는 사람이다. 화이트 보드에는 검은 점, 붉은 점, 푸른 점 등이 실재해 있기 때문이다. 물 컵이라도 만약 말기 폐암 환자가 가래 용기로 사용을 하였다면 그것의 실재는 물 컵이 아닌 그 작가에게는 단순 가래 용구일 뿐이다.
문학은 각자의 진실이 따로 있기에 정답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오로지 얼마나 열심히 작품을 써서 독자에게 다가가 얼마 만큼 감동을 주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만약 어느 시인이 「흙은 사각형이다 」라는 표현을 썼다면 일순 의아하게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가 빈농 출신으로 임야에서 생계를 유지해 오다가 도시개발의 논리에 몰려 일정 보상비를 받고 자신이 지녔던 농지가 사각형 주택단지로 짤라 조성된 땅을 보고 쓴 글이라면 쉽게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그 작가에게 흙은 사각형으로 보여지는게 너무나 당연하다.
작가에게는 그렇게 보였고 진실을 말하는데 어느 누가 그 시인을 평가한다는 것은 살인 행위로서 이런 사고에서 빨리 벗어나서 그 단계를 뛰어 넘어야만 작품으로서 발전을 기약할 수가 있다. 그래서 소박한 실재론만으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고 한다.
같은 예로서, 일반인에게 비친 책상이라는 물건은 다른 이에게 의자, 침대 구실로도 가능하며 책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야 시인의 자질이 있다. 가령, '미움은 칼이다'라는 표현을 썼다면 칼은 소박한 실재론이 아니다. '글을 품은 자는 칼이 된다.', '그릇이 깨지면 칼이 된다.'나 '인격이 깨지면 칼이 된다.'에서 처럼 그릇이나 인격이 될 때에 비로서 시가 된다.
수필에서는 그릇은 오로지 그릇일 뿐이기에 시, 소설 등의 장르에서 자극을 받을 필요가 있다. 소박한 실재를 시로 보는 발상은 매우 위험하며 작품은 오로지 누가 더 감동을 주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고정희 시인의 「편지」라는 제목의 시에서 '그 녀에게로 가는, 그리움의 전깃줄에, 나는, 감전이 되었다'라는 표현에서 '그', '가는', '전깃줄', '나', '감전' 등이 사실로서 실재가 많이 들어가 있다.
가령 다른 예로, '나는 이 많은 그리움을 어찌할까'라는 표현을 했다면 이 표현으로는 시가 될 수가 없다. 왜냐 하면 그 속에 실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재와 상상력은 매우 중요 한 것이다.
「한 여자가 있다」라는 문귀와 「그 남자가 죽었다」의 두 실재(사실) 사이에 우리는 무한한 상상력을 집어 넣을 수가 있는 것이며 그 상상력이 시의 주체나 소설의 주체로서 모우멘텀이 되는 것이다.
'어머니는 나를 걸레 끝에 매달았다'라는 표현에서는 걸레가 단순 청결용 도구가 아닌 그 싯귀에서 창녀를 연상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럿셀은 소박한 실재는 거짓이지만 참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구멍 뚫린 상처 받은 가슴'에서 구멍 뚫린이란 실재가 아닌 거짓이지만 이 글귀를 참으로 볼 수 있음과 같은 이치이다.
시인은 의식이 있어야 하며 의식이 없으면 시를 쓸 수가 있다. 하지만 반드시 대상이 존재하여야지만 의식이 생긴다. 만약 괴롭히는 시어머니가 있으면 그 가운데에서 의식이 생기게 되며 그리고 주기적 대상이 있어야만 의식의 체계성이 생긴다. 같은 이치로 건너방에 남편이 숨을 죽이고 자신의 작품 활동을 방해하고 있지 않는데도 단지 건너 편 방에 남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신의 글에 집중을 못시키는 이치와 같다.
의식은 대상에 대하여 뻗침이 생겨야 하며그것이 어느 쪽으로 뻗치느냐가 지향성의 문제가 된다. 만약 장미 꽃 하나가 있다면 작가의 뻗침의 대상이 꽃잎, 나무잎, 대, 뿌리 등 어디인가가 문제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하여 대상을 찾을 수도 있겠으나 실재가 더 좋음은 물론이다.
대상을 정하고서도 작용이 일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작가가 시간 덜 투자를 했고 문학 공부 시간이 짧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도 뻗침은 사라지게 된다.
강의를 하러 가다 안성 휴게소에서 배꽃에 취해 밖으로 나갔다 교통 체증으로 강의 시간이 다 끝난 후에 도착을 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배꽃 과 총장'이라는 작품만을 남길 수가 있었다.
혹자는 당신이 시인이고 좋은 경치에 왔으니 당장 시 한편을 지어 보라고 하는데 이는 시 창작의 원리를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작가라고 하여 또한 경치가 좋다고 하여 바로 시를 쓸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비록 자극은 있을지언정 그 대상과 뻗침이 없기에 아무리 뛰어난 작가라도 바로 좋은 시를 쓸 수가 없는 것이다.
명품 가방이 하나 있다손 치면 만약 작가의 의식이 뻗쳐 작용이 되면 이는 시로 쓰는게 가능해진다. 시는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왜냐 하면 20 대의 스폰지처럼 빨아들이는 사랑이 있는가 하면 40, 50 대의 갈고 닦은 사랑도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을 사람으로만 보지 않고 꽃을 꽃으로 보지 않는 현상학의 지향성이 좋은 시를 쓸 수가 있다.
끝으로 최문자 시인은 젊은 시인은 선배를 따라 하지 않는 실험정신이 필요하고 데뷔 시인은 제 목소리를 가졌으니 존중해 줄 필요가 있고 19세기 산업시대와 20 세기 경제 시대를 거쳐 21 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아 문학이 그 중추의 역할을 할 것 임을 믿고 있다고 하였다.
[최문자 시인 약력]
- 1943년 서울 출생
- 시인이며 성신여대 대학원 졸업(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