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제역 단상(斷想)

2011. 1. 18. 21:31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구제역 단상(斷想)

 

                            여미 박인태

 

구제역이 만연하는 오염된 세상

죄 없는 가축이 살 처분되고 있다.

병든 소가 다 죽는 것도 아닌데

영문도 모른 체 생명을 다 하는구나.

수의사는 수의학을 공부한 것이

오늘처럼 한스러울 줄 몰랐다고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다가

재촉에 못 이겨 다시 살 처분 주사기를 쥔다.

여물이며 사료를 주는 주인에게

목을 문지르며 다정한 인사를 하는 친구야

오늘 너를 지켜주지 못하는 구나

먼저 간 어미 소를 보내지 못해 핥고 있는

솜털에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송아지

너도 어미 곁으로 가야된단다.

아름다운 윤기와 고운 황금빛 털은

이토록 잿빛 죽음을 덮는 거적이 되었는지

얼마나 무서웠느냐 매몰 그 순간에도

온 사지를 부르르 떨고 있구나.

인간은 제 살기위해 너의 사체위에

그 독한 생석회를 뿌리고

아직도 덜 식은 몸뚱이에 흙을 덮는다.

십년 전 끊은 담배개비에 불을 붙인다.

이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라니

너를 위해 담배 한 개비로 향을 사른다.

안녕 내 친구

'나 그리고 가족 >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강  (0) 2011.02.06
구제역 현장에서   (0) 2011.01.26
창밖에 눈이 내리고  (0) 2010.12.18
첫눈  (0) 2010.12.13
첫눈  (0) 2010.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