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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4. 23. 13:31살다보니 이런일이/시(詩)를 위하여

우리 회원들이 제대로 시를 쓰기 위해 시에 대한 연재를 한다. 

詩는 짓는 것이 아니라, 심장 밑바닥에서 괴어 넘쳐흐르는 것을 추스려 담아내는 것이다.

詩는 쓰는 것이 아니라, 심금에서 우러나오는 영혼의 울림을 현상시켜 빚어내는 것이다.

심중한 번뇌의 흔적도 없이 잔머리와 손재주로 낱말 부스러기들을 그럴싸하게 짜맞추는 기교성 테크닉으로 갈겨 대는 시들. 그런 것은, 화장발 두텁게 하고 미인인척, 잘난 척 하는

허영기 많은 배우의 어설픈 몸짓과 같은 것이다

마치 넋두리 잡답 같은 글들을 대충 써놓고서는 퇴고도 한 번 해보지도 않은 채, 엉성한 글들을 작품이랍시고  함부로 발표들을 해대면서, 시인이라고 명함 디밀어 대는 실로 심각한 착각 속에서 잘난 채하는 삐에로 같은 자들이 우후죽순으로 난립하고 난무하는 것이 

지금 한국시단의 모습이자, 그 몰골이다. 

아무렇게나 대충 써 대면, 죄다 詩이고, 詩人인 줄 안다

시가 아닌 것은, 자작글이나 마음의 글, 일상의 글이나 넋두리라고 해야지

덮어놓고 무조건 시라고 써놓고는 여기 저기 문학지니 동인지니 하면서

마구잡이식으로 발표하고 올려대니. 문인의 격과 가치가 저절로 추락하고 있다

실로 그 꼴들이 한심하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다.

시가 아닌 것은, 시라고 표기를 하지 말고, 시로 발표하지 말아야 한다.

추상적인 시나, 관념적인 시, 그리고 서정적인 시라고 예외일 수 없다.

특히, 서정시에 있어서도 서정적인 표현을 함에 있어서

평범하고 쉬운 단어 하나, 한 글자라도 좀 심중히 생각하여 궁구해보고

심고를 거듭하여 퇴고의 정성을 많이 들여야 하고

쓰고 난 뒤에는 어느 정도 시간적으로 좀 묵혀 두었다가

시간 날 때, 다시 한 번 정밀 검토도 해보고 그러고 난 후에

신중히 문학지를 잘 선택해서 발표해야 한다.

책으로 활자화가 되고 나면, 오류가 발견되더라도  고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정시라고 대충 쉽게 묘사하여 쓰고 발표하는 얕은 속성을 버려야 한다.

우리 회원만이라도 제대로 시를 배우기 바라며 연재한다.

 

시(詩)의 제목 붙이는 방법


모든 사물과 개체에는 이름이 있다.
모양과 형태가 있는 것엔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상물을 찾을 때, 제일 먼저 이름을 보고 찾는다.
이름은 사람이나 동식물에게나 그 대상물의 얼굴이며 상징이다.
문학 작품의 제목은 사람의 이름과 같다.

제목이 좋으면 그 글이나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제목이 좋지 않은 것은
독자들이 외면하여 찾지 않기 때문에 호응을 받기가 힘들다.
작가나 출판업자들은 책의 제목 정하기에 무척이나 고뇌한다.
책의 얼굴이어서 첫인상이 좋아야 맞선(독서)이라도 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간혹 ‘무제(無題),’ 라는 제목을 보기도 한다.
이것은 제목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경우이지만,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이다.
글 중에서 ‘이름 모를 꽃’‘이름 모를 새’‘이름 모를 곤충’등으로
무책임하게 기술한 것에서, 공허감 같은 것을 얻게 된다.
작가는 동식물 도감이나 사전류를 다 찾아서라도 이름을 알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고,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신뢰를 준다.

수필에 있어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제목은 상품의 상표와 같아서 제목만을 보고도 그 상품의 질과 품격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을 상징하는 총체적 이미지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먼저 부르기 좋고(소리의 조화), 뜻이 좋고(의미의 조화), 획수(모양의 조화)가 어울리는 것이 좋다.
글의 제목도 산뜻하고, 의미가 깊고, 흥미로운 것이 좋다.
글을 읽고 나서도 뚜렷하게 ‘제목’이 각인 되어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좋을 것이다.

강석호는 「제목, 어떻게 붙일 것인가」
(수필문학 1998. 5월호 pp.23~25)에서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제목들의 유형들을 분류하여 제시했다.

① 주제를 집약한 것(추상적)

② 주제를 풀이한 것

③ 문장의 줄거리를 압축, 집약한 것

④ 문장의 목적을 내세운 것
<아버지께 드리는 글> (서간문), <두만강 7백리>(기행문),
<어느 비오는 날의 서정>(일기문), <사랑하는 님의 영전에>(조사)

⑤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
<피서지에서 생긴 일>, <교단 생활 40년의 회상>,<비에 젖은 소풍>

⑥ 명사 하나 만을 붙인 것
<나무>(이양하) <보리>(한흑구) <달밤>(윤오영)

⑦ ~과 ~의 나란히 꼴(⑥의 복합형)
<꽃과 바람>, <믿음과 사랑>, <돼지와 미소>

⑧ 계절명이나 지명을 사용
<봄이 오는 소리>. <가을의 전령>, <여름날의 소나기>, <지리산 철쭉>

⑨ 적당한 제목이 없을 때
<無題>, <實題 >, <數題>, <有感> 등

⑩ 시적 효과를 노린 것
<사랑의 파도를 넘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⑪ 작은 표제 중의 하나를 택한 것
정병욱의 수필 <물과 기름의 대화>는 <올빼미의 눈>, <옷이 날개라고는 하지만>,
<음식보다 보약으로>, <온돌 문명과 영토>, <물과 기름의 대화> 등 소제목 중에서 하나를 택함

⑫ 매혹적인 것
< 그녀와 나는 이렇게 헤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안개는 나를 유혹한다>

⑬ 불연속적 용어의 결합
<잉크와 안경>, <돌과 바람>, <책과 가위>, <미녀와 강도>

⑭ 한자로 된 제목
<溫故而新>, <可逆反應>, <貧利泌禍>, <異人異說>

정주환은(鄭周煥)은 「현대수필 창작입문」에서 제목 붙이는 유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① 주제를 집약한 것; 「아버지」「손수건의 사상」

② 화제(토픽)를 나타낸 것; 「애인」 「자유부인」

③ 중심 인물을 가리킨 것 ;「상록수」「바다와 노인」

④ 본문 중의 중요한 사항을 나타낸 것; 「태백산맥」「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

⑤ 인상적인 것을 나타낸 것;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⑥ 상징적인 것 ; 「주홍 글씨」「감자」

⑦ 글의 줄거리 또는 인물명을 나타낸 것; 「늙은 창녀의 노래」 「낙엽을 태우며」

⑧ 내용의 일부 또는 전체를 나타낸 것; 「내인이면 늦으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⑨ 분위기를 나타낸 것 ; 「달빛 고요」

⑩ 문장의 목적을 나타낸 것; 「한국의 영혼」「우리 문화 산책」 「이집트 기행」

이상과 같은 방식에 따라 제목을 붙인다.
그러나 제목을 붙일 때,
첫째,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것은 피해야 하며
둘째, 평범하지 않고 특색있는 제목을 택할 것이며,
셋째, 간결하고 선명할 것이며
넷째, 흥미를 끌고 매력적인 것으로 제목을 붙여야 한다.

그러면 알렉산드로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ere)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써 놓고
표제를 붙이는데 고심한 그 실례를 보자

그는 이 소설이 나오기 3년 전인 1842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망명(亡命)중이던,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뒤마는 제롬의 아들과 함께 배를 타고 엘바섬에 갔다 오는 길에
괴상한 바위섬 하나를 목격했다고 한다.
그래서 뒤마는 뱃사람에게 그 섬 이름을 물었더니
'몽테크리스토 섬' 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그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13세기에는 승원(僧院)이 있었다.
그러나 터키군이 이 섬에 침공했을 때,
승려들이 달아나면서 섬 어딘가 에다 보물을 감추어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섬이라는 것이었다.
뒤마는 그 섬 이름의 어감(語感)이 좋을뿐더러,
재미나는 전설까지 전해져 오므로 제롬에게 함께 여행한 기념으로
‘몽테크리스토 섬’ 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꼭 쓰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을 다 써 놓고 막상 제호를 붙이려 할 때,
‘몽테크리스토 섬’이라 붙이려고 하니 마음에 들지 않아,
고심하던 끝에 ‘섬’ 대신 ‘백작’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소설이 출간되자, 파리에는 새로운 유행어가 생겨났다.
즉 이 소설의 제명인 ‘몽테크리스토’ 란 말이 어감이 좋다 하여
파리 시민들은 무엇이든 마음에 들고 좋은 것이면,
다 이 ‘몽테크리스토 !’ 라고 하고,
큰 황소를 보아도 ‘아, 몽테크리스토 !’ 하고 감격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내용도 재미있지만, 그 제명으로서도 성공한 보기라 하겠다.

 

시(詩)의 제목 붙이는 방법


모든 사물과 개체에는 이름이 있다.
모양과 형태가 있는 것엔 이름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대상물을 찾을 때, 제일 먼저 이름을 보고 찾는다.
이름은 사람이나 동식물에게나 그 대상물의 얼굴이며 상징이다.
문학 작품의 제목은 사람의 이름과 같다.

제목이 좋으면 그 글이나 책을 읽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제목이 좋지 않은 것은
독자들이 외면하여 찾지 않기 때문에 호응을 받기가 힘들다.
작가나 출판업자들은 책의 제목 정하기에 무척이나 고뇌한다.
책의 얼굴이어서 첫인상이 좋아야 맞선(독서)이라도 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간혹 ‘무제(無題),’ 라는 제목을 보기도 한다.
이것은 제목을 구하기가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단적으로 말해 주는 경우이지만,
바람직한 태도는 아닌 것이다.
글 중에서 ‘이름 모를 꽃’‘이름 모를 새’‘이름 모를 곤충’등으로
무책임하게 기술한 것에서, 공허감 같은 것을 얻게 된다.
작가는 동식물 도감이나 사전류를 다 찾아서라도 이름을 알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태도이고, 그래야만 독자들에게 신뢰를 준다.

수필에 있어서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제목은 상품의 상표와 같아서 제목만을 보고도 그 상품의 질과 품격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이름’이 그 사람을 상징하는 총체적 이미지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먼저 부르기 좋고(소리의 조화), 뜻이 좋고(의미의 조화), 획수(모양의 조화)가 어울리는 것이 좋다.
글의 제목도 산뜻하고, 의미가 깊고, 흥미로운 것이 좋다.
글을 읽고 나서도 뚜렷하게 ‘제목’이 각인 되어 내용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 좋을 것이다.

강석호는 「제목, 어떻게 붙일 것인가」
(수필문학 1998. 5월호 pp.23~25)에서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는 제목들의 유형들을 분류하여 제시했다.

① 주제를 집약한 것(추상적)

② 주제를 풀이한 것

③ 문장의 줄거리를 압축, 집약한 것

④ 문장의 목적을 내세운 것
<아버지께 드리는 글> (서간문), <두만강 7백리>(기행문),
<어느 비오는 날의 서정>(일기문), <사랑하는 님의 영전에>(조사)

⑤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한 것
<피서지에서 생긴 일>, <교단 생활 40년의 회상>,<비에 젖은 소풍>

⑥ 명사 하나 만을 붙인 것
<나무>(이양하) <보리>(한흑구) <달밤>(윤오영)

⑦ ~과 ~의 나란히 꼴(⑥의 복합형)
<꽃과 바람>, <믿음과 사랑>, <돼지와 미소>

⑧ 계절명이나 지명을 사용
<봄이 오는 소리>. <가을의 전령>, <여름날의 소나기>, <지리산 철쭉>

⑨ 적당한 제목이 없을 때
<無題>, <實題 >, <數題>, <有感> 등

⑩ 시적 효과를 노린 것
<사랑의 파도를 넘어>,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잠 못 이루는 밤을 위하여>

⑪ 작은 표제 중의 하나를 택한 것
정병욱의 수필 <물과 기름의 대화>는 <올빼미의 눈>, <옷이 날개라고는 하지만>,
<음식보다 보약으로>, <온돌 문명과 영토>, <물과 기름의 대화> 등 소제목 중에서 하나를 택함

⑫ 매혹적인 것
< 그녀와 나는 이렇게 헤어졌다>, <내가 사랑하는 여인>, <안개는 나를 유혹한다>

⑬ 불연속적 용어의 결합
<잉크와 안경>, <돌과 바람>, <책과 가위>, <미녀와 강도>

⑭ 한자로 된 제목
<溫故而新>, <可逆反應>, <貧利泌禍>, <異人異說>

정주환은(鄭周煥)은 「현대수필 창작입문」에서 제목 붙이는 유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① 주제를 집약한 것; 「아버지」「손수건의 사상」

② 화제(토픽)를 나타낸 것; 「애인」 「자유부인」

③ 중심 인물을 가리킨 것 ;「상록수」「바다와 노인」

④ 본문 중의 중요한 사항을 나타낸 것; 「태백산맥」「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다」

⑤ 인상적인 것을 나타낸 것; 「너는 눈부시지만 나는 눈물겹다」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

⑥ 상징적인 것 ; 「주홍 글씨」「감자」

⑦ 글의 줄거리 또는 인물명을 나타낸 것; 「늙은 창녀의 노래」 「낙엽을 태우며」

⑧ 내용의 일부 또는 전체를 나타낸 것; 「내인이면 늦으리」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⑨ 분위기를 나타낸 것 ; 「달빛 고요」

⑩ 문장의 목적을 나타낸 것; 「한국의 영혼」「우리 문화 산책」 「이집트 기행」

이상과 같은 방식에 따라 제목을 붙인다.
그러나 제목을 붙일 때,
첫째, 내용과 너무 동떨어진 것은 피해야 하며
둘째, 평범하지 않고 특색있는 제목을 택할 것이며,
셋째, 간결하고 선명할 것이며
넷째, 흥미를 끌고 매력적인 것으로 제목을 붙여야 한다.

그러면 알렉산드로 뒤마 페르(Alexandre Dumas Pere)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써 놓고
표제를 붙이는데 고심한 그 실례를 보자

그는 이 소설이 나오기 3년 전인 1842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 망명(亡命)중이던, 나폴레옹의 동생 제롬을 찾아간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 때, 뒤마는 제롬의 아들과 함께 배를 타고 엘바섬에 갔다 오는 길에
괴상한 바위섬 하나를 목격했다고 한다.
그래서 뒤마는 뱃사람에게 그 섬 이름을 물었더니
'몽테크리스토 섬' 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당시 그 섬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으나 13세기에는 승원(僧院)이 있었다.
그러나 터키군이 이 섬에 침공했을 때,
승려들이 달아나면서 섬 어딘가 에다 보물을 감추어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 오는 섬이라는 것이었다.
뒤마는 그 섬 이름의 어감(語感)이 좋을뿐더러,
재미나는 전설까지 전해져 오므로 제롬에게 함께 여행한 기념으로
‘몽테크리스토 섬’ 이란 제목으로 소설을 꼭 쓰겠다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을 다 써 놓고 막상 제호를 붙이려 할 때,
‘몽테크리스토 섬’이라 붙이려고 하니 마음에 들지 않아,
고심하던 끝에 ‘섬’ 대신 ‘백작’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이리하여 이 소설이 출간되자, 파리에는 새로운 유행어가 생겨났다.
즉 이 소설의 제명인 ‘몽테크리스토’ 란 말이 어감이 좋다 하여
파리 시민들은 무엇이든 마음에 들고 좋은 것이면,
다 이 ‘몽테크리스토 !’ 라고 하고,
큰 황소를 보아도 ‘아, 몽테크리스토 !’ 하고 감격해 마지않았다고 한다.
이 소설은 내용도 재미있지만, 그 제명으로서도 성공한 보기라 하겠다.

 

초고의 영감과 퇴고의 막노동 - 고옥주



유난히 눈이 풍성한 이번 겨울, 아파트 베란다의 뿌연 대형 유리창으로 가까스로 내다보이는 풍경은 순백이 아니었다. 검은 색에 흰 색 물감을 조금씩 타는 것처럼 천천히 끈질기게 환해지고 있었다. 안경까지 쓰고 자세히 보면 눈발은 아파트 사이에 갇힌 바람 탓인지 제 스스로의 가벼운 탓인지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날아오르고 있었다. 나를 향해 돌진한다고나 할까.
눈 자체는 숨막힐 듯한 속도감과 진행형을 지니고 있지만 이상하게 다른 대상으로부터는 그 운동성과 기능을 마비시키는 징조를 보여준다. 그리하여,

도시를 슬로우 비디오로 만드는 눈.

첫줄이 나왔다. 잠시 철새떼의 비행을 슬로우 비디오로 표현한 몇년 전 누군가의 인상적인 싯귀가 떠올라 주춤한다. 슬로우 비디오란 말을 누가 특허낸 것은 아니지만 표절의 의혹을 살 수는 없으니까. 그래도 그 말이 가장 적절하며, 서로 다른 상황이라고 판단한다.

보고 있을 땐 날아올라 구름에 달라붙고
보지 않으면 슬금슬금 물방울에 쌓이는
눈,
길들은 지익지익 소리를 내며
이해할 수 없이 아득해지고
내 내부회로에서 톱니바퀴가 툭 불거지고
뼈를 이탈하는 너울이 늘어져
질질 끌리다가 뒷부분이 검게 물들고 잘라져 나가는
잠깐
일부 망가진 나는 드디어 내 몸을 벗어났다

제목도 아직 없는 소박한 11줄의 초고를 들여다본다. 너무 상식적이지 않은가? (좀 비범해 보여야 좋을 텐데…) 짧고 단순해서 소품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소품은 시가 아닌가? 반값 취급은 받기 싫은데…)
무엇을 쓰고 싶었나를 다시 생각해 본다. 눈으로 촉발된 나 자신의 변화를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 공동분모로 설정하고, 확대·해석하여 공감하시라고 주장하다 안 되면 세뇌라도 하겠다는 의도라 치면, 제대로 표현은 된 것일까?

모든 낯설고 새로운(일상적이지 않은) 대상에 대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 낯섬과 새로움에 기대어, 물귀신처럼 우리를 옥죄는 일상으로부터, 나의 조건들로부터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아닐까?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벗어나 보일 것인가?
시 자체의 생명력이 발동하여 시 속에 시인의 의도가 자연스럽게 녹아 나오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시인의 희망 사항일 뿐이다.
영감의 순간이 반짝 지나고 이제부터는 막노동의 시간이다. 다시 한번 읽어본 후 거슬리는 부분을 고쳐나간다.

2행의 ‘보고 있을 땐’을 ‘바라보면’으로 3행의 ‘보지 않으면’을 ‘눈 돌리면’으로 바꾸어 부드러운 느낌과 ‘슬금슬금’에 호응하게 했다.
7행부터 나와 눈의 의미가 유기적으로 얽혀 나아가야 하는데 이대로는 갑자기 나로 옮겨간 부분이 자연스럽지 않다. 그래서 7행을 ‘사람들의 내부 회로에/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자마자/ 일상의 톱니바퀴가 툭 불거지면서/ 느릿느릿 흐르는 피/ 잠시 손을 놓는 뼈’로 행을 늘려 변화 과정을 자세히 극대화하여 표현해 보았다. 숙성 기간을 좀 가져보자는 의도이다.

눈이 쌓여 속도가 느려지고 서로 부딪치는 차들, 교통마비로 차 안에 갇힌 사람들, 눈에 먹히는 거대한 도시를 내 내부 풍경으로 전이시키는 과정이다.
‘느릿느릿 흐르는 피’를 다시 읽어보니 어쩐지 눈이 주는 긍정적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의도에 들어맞지 않는 듯하여 피를 물로 바꾸었다.
‘잠깐’ 이후의 여백을 위해 ‘ , ’를 덧붙였다.

마지막 부분 다시 가다듬고 ‘나뭇잎 훌훌 털어 제몸 벗어나는 나무처럼’을 덧붙여 한순간의 일탈을 자연의 섭리에 내재시켜 그 상쾌한 잠깐의 의미를 확대하고 싶었다. 생겨난 자리에서 썩어 죽을 때까지 평생을 떠나지 못하지만, 나뭇잎으로 온세상을 날아 떠돌 수 있는 계절을 허락받은 나무, 어디든 갈 수 있지만 제 마음에 묶여 주변을 맴도는 인간. 또한 잠깐의 일탈만으로도 다른 세상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경외를 떠올리면서.
그리하여 제목도 「눈올 때 잠깐」이 되었다. 영원에 비길 만한 잠깐이 되기를 삼가 비는 바이다.

눈올 때 잠깐

도시를 슬로우 비디오로 만드는 눈.
바라보면 날아올라 구름에 달라붙고
눈 돌리면 슬금슬금 물방울에 쌓이는
눈.
길들은 지익지익 소리를 내며
이해할 수 없이 아득해지고
사람들의 내부 회로에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자마자
일상의 톱니바퀴가 툭 불거지면서
느릿느릿 흐르는 물
잠시 손을 놓는 뼈
뼈를 이탈하는 너울이 늘어져 질질 끌리다가
뒷부분이 검게 물들고 잘라져 나가는
잠깐,
망가진 채로 나는
드디어 내 몸을 벗어났다
나뭇잎 훌훌 털어 제몸 벗어나는 나무처럼.

한 가지 상황에 맞는 말은 단 하나 뿐이라는 무의식을 선입관으로 공유한 사람들의 기준으로 보면 완성품이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내 체력과 인내와 능력의 한계 안에서 끝을 맺었다. (고옥주)


◇88년 문학정신 등단.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시집 『나무 나무

 

시창작을 위한 일곱 가지 방법


첫째 장식없는 시를 써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 시적 공간만으로 전해 지는 것,
그것이 시의 매력이다.
시를 쓸때는 기성시인의 풍을 따르지 말고
남이 하지 않는 얘기를 하라.
주위의 모든 것은 소재가 될 수 있으며
시의 자료가 되는 느낌들을 많이 가지고 있게 되면
시를 쓰는 어느 날 그것이 튀어나온다.
하지만 시는 관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관념이 구체화되고 형상화 되었을 때 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묘사하는 연습을 많이 하라.

둘째 시는 감상이 아니라 경험임을 기억하라

시는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단단한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구체적 언어를 이끌어 내 준다.
단지 감상만 갖고서는 시가 될 수 없으며
좋은 시는 감상을 넘어서야 나올 수 있다.
시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했지만 개인을 넘어서야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감상적인 시만 계속해서 쓰면 '나'에 갇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를 넘어선 '나'의 시를 쓰라.
단, 시를 쓰는 일이란 끊임없이 누군 가를 격려하는 일임도 기억해야 한다.
(예)'따뜻함' / 강은교
웅덩이 건너편 모래가/웅덩이 쪽 모래를 손짓하는 새/ 아침별이
저녁별을 손짓하는 새/햇빛 한 올이 제 동무 햇빛을 부르러 간 새

셋째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고
자신을, 자신이 시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내가 정말로 시인이 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지 말고 신념을 갖고 시를 쓰라.
나의 시를 내가 맏지 않으면 누가 믿어 주겠으며
나의 시에 내가 감동하지 않으면 누가 감동해 주겠는가.
시가 어렵고 힘들게 느껴지는 순간엔 처음 마음으로 돌아가서
시가 처음 당신에게 다가왔던 때를 돌아보라.
문학 평론가 염무웅은 이렇게 충고한다.
'세상의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왜 하필 당신은 시를 쓰려고 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를 쓰는가?'라고.
우리는 신념을 갖고 시를 쓰되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시를 써야 한다.

네 번째, 시의 힘에 대하여

좋은 시에는 전율을 주는 힘이 있다.
미국의 자연 사상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떠오르는 아침해를 보고 전율하지 않는 사람은 한물간 사람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일몰과 일출을 보는 습관을 가지라.'
그는 자연에서 생의 전율을느끼라고 충고한다.
우리의삶에서 가장 전율을 많이주는 것은 무엇일까?
연애가 주는 스파크, 음악 등이 아니겠는가.
허나 살다가 보면 이때의 전율도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시는 정신적으로 전율을 느껴야만 나올 수 있다.
그러므로 시를 쓰려면 전율할 줄 아는 힘을 가져야 한다.
표현과 기교는 차차로 연습할 수 있지만
감동과 전율은 연습할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에게 감동이 혹은 전율이 스무살때처럼 순수하게 올 수 있을까?
그 순수한 전율을 맛보기 위해서는 시인의 남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다섯 번째 자유로운 정신(Nomade)에 대해서

원래 '노마드(Nomade)' 란 정착을 싫어하는 유목민에서 나온 말이다.
이말은 무정부 상태, 틀을 깬 상태, 즉 완전한 자유를 의미한다.
예술의 힘, 시의 힘은 바로 이 노마드의 힘이 아닐까?
우리의 정신은 이미 어떤 틀에 사로잡혀 있는 국화빵의 틀에 이미 찍혀 있는 상태다.
그러므로 우리는 틀을 깨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
흔히 문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 틀을 깨는 과정에서
술(알콜)의 힘을 빌어야 좋은 문장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술을 도구로 하여 얻어지는상태가 과연 진짜 자유인가를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건 자유를 빙자한 다른 이름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술의 힘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어떤 이데올로기도 그려져 있지 않은
순백의 캔버스를 끄집어 내기 위해서만 술을 마셔야 하지 않을까.

여섯 번째 '낯설게 하기'와 '침묵의 기법'을 읽히자

우리는 상투 언어에서 벗어나 '낯설게 하기' 기법을 익혀야 한다.
상투의 틀에 붙잡히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정신으로 긴장을 살려나가자.
감상적인 시는 분위기로밖에 남지 않으며
'시 자체'와 '시적인 것'은 확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시적인 것은 시의알맹이가 아니다.
시적인 것에만 너무 붙들려 있으면 시가 나오지 않는다.
우리의 시가 긴장하여 이데올로기의 자유를 성취하는 순간
깜짝 놀랄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에 사로잡히지 않는 자유정신을 지니자.
몸의 자유가 뭐 그리 중요한가?

또한 "침묵의 기술, 생략의 기술"도 익히자.
예를 들어 T.S. 엘리어트 의 황무지라는 시는
우리에게 침묵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는 시다.
시와 유행가의 차이는 그것이 의미있는 침묵인가 아닌가의 차이이다.
시는 감상이 아니라 우리를 긴장시키는 힘이 있는 것인데,
만약 설명하려다 보면 감상의 넋두리로 떨어져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침묵의 기술을 익혀야 한다.
보다 침묵하는 부분이 많을수록 그 시는 성공할 것이다.
말라르메는 말했다.
"바람이 분다. / 살아야겠다." 이 짧은 두 행의 사이에는
시인 자신이 말로 설명하지 않은 수많은 말들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이 보이는가?
그러나 침묵의 기술을 익히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한 법.
우리는 많이 쓰고 또 그만큼 많이 지워야 한다.
시를 쓸때도 다른 모든 세상일처럼 피나는 연습이 필요하며
더욱이 말로 다 설명하지 않으면서 형상화하는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곱 번째 '소유'에 대한 시인의 마음가짐

시를 쓰고, 어느 정도의 성취를 맛보려면 약간의 결핍현상이 있어야 한다.
왜냐 하면 매사 풍요한 상태에선 시가 나오기 힘들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들리긴 하겠지만
시인이 되려는 사람은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려고 해선 안 되지 않을까

 

상징 기법

1.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경우



이러한 유형의 시에서는 시의 제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시인의 시정
신을 상징적으로 함축, 암시해 주는 것이 바로 시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형의 시를 지을 경우 지나치게 애매하고 무분별한 개인적 상징의 덩어리를 만든 나머지, 그 작품이 상징적 여운을 주는 작품이 아니라 그저 난해하기만 한 작품이 되어버리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작품 전체가 주는 상징적 의미가 일상적이거나 현상적인 것에 머물지 않고 형이상학적 본질을 지향할 경우, 이런 유형의 시는 더욱 큰 감동의 여운을 주게 된다.

보편적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어떤 특정한 소재에서 상징적 표현의 질료를 구할 경우 그 작품은 성공하기 어렵다. 상징적 사건을 제시하는 수법은, 시만이 줄 수 있는 애매성과 상징성의 결합효과에 의해 독자에게 큰 감동과 감미로운 여운을 줄 수 있다.
상징과 비유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전체성과 부분성의 차이에 있다고 할 때, 작품 전체가 하나의 상징을 이루는 유형으로 시를 장작해 보는 훈련은 가장 중요하면서 효과적인 습작방법이라 하겠다.

공중에 떠다니는
저기 저 새요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

밭에는 밭곡식
논에는 물벼
눌하게 익어서 수르러졌네!

초산 지나 적유령
넘어선다
짐 실은 저 나귀는 너 왜 넘니?

- 김소월, <옷과 밥과 자유> -

위의 시는 김소월의 시 가운데 드물게 현실인식을 보여준 시인데, 시 전체가 하나의 상징으로 이루어진 좋은 본보기이다. 일제치하에서 자유를 빼앗기고 살아가는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을 "네 몸에는 털 있고 깃이 있지"라는 표현 속에 담아내고 있다. 새는 자유의 상징이고, 구속된 주체에서 보면 희망의 상징일 수 있다. 이 시에서 우리 민족은 구속된 상태이고, "짐실은 저 나귀"에서 보듯 고난의 상태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한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열망이 '털이 있고 깃이 있는 새'의 부러움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저승이 어딘지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 서정주, <춘향유문> -

위의 시는 춘향전의 설화를 기본 모티프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얼핏 보면 상징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살피게 되면 '천길 땅 검은 물속'이라든가 '도솔천'의 의미에서 보듯 불교의 윤회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시이다. 근원적 질서, 순화론적 세계 등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나타내 보임으로써 인간의 질서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2. 어떤 상징적 시어가 의도적으로 쓰여져 상징적 의미를
환기시키는 경우

비유와 상징의 차이는 상징이 보다 더 근원적인 사고에 접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형의 시를 창작할 경우, 시쓰는 이는 상징적 사건의 창조보다 시어가 갖는 상징적 의미의 창조와, 그러한 시어가 그 작품의 전체적 흐름 속에서 상징적 재문맥화 작용에 어떻게 기여하는가를 신경써야 한다.
하나의 시어가 사전적, 일상적 의미로서가 아니라 상징적 의미로 쓰여질 때 재문맥화 작용이 이루어진다. 일상적이고 흔한 소재를 상징적 시어로 승화 시킬 때 거기서 오히려 상징의 확산과 상승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 김춘수, <꽃> -

김춘수의 <꽃>은 전후의 아픔 속에서 실존적 자기 물음에 팽배해 있던 1950년대에 나온 작품이다. 본디 꽃이 주는 보편적 의미는 아름다움이나 화려함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는 꽃의 그런 의미는 전혀 풍기지 않고 존재론적 완성의 의미에 더 가깝다. 즉, 그 꽃은 그 자체만으론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만큼 꽃이 갖고 있던 상징적 의미가 전이, 확산을 거쳐 새로운 의미 생산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런 예는 다음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 서정주, <국화옆에서> -

서정주의 <국화옆에서>도 상징으로 이루어진 좋은 예이다. 국화는 우리의 고전시가에서 지조 있고 절제하는 선비의 상징으로 인식되어 있으나 이 시에서 원숙한 40대의 여인으로 상징되고 있다. 즉 국화꽃이 의도적으로 사용됨으로써 하나의 고정된 의미를 탈피하여 확산과 상승작용이 일어난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된다.

3. 원형적 상징을 응용하는 경우

원형이란 가장 보편적인 상징이 될 수 있다. 융에 의하면, 원형을 사용하는 시인은 그 자신의 목소리보다 한결 강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호소력을 가지게 된다. 예전의 시에서는 시인의 잠재의식에 의하여 원형적 상징들이 간접적으로 시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의식적으로 원형적 상징의 세계를 작품 속에 투영시켜 시창작을 시도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처음으로 시를 쓰려는 사람은 이를 의식적으로 사용하여 작품의 분위기를 조성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원형적 상징의 주는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물(바다) - 창조의 신비, 탄생, 죽음, 부활, 재생, 어머니
2) 태양 - 자연의 법칙, 시간의 인생의 경과
3) 원 - 전체성, 생산, 풍요로움
4) 대지 - 어머니, 생산, 풍요로움
5) 바람 - 호흡의 상징, 공포
6) 사막 - 정신적 불모, 죽음
7) 십자가 - 고난, 고통, 시련
8) 봄 - 새벽, 탄생
9) 여름 - 인생의 절정기, 낙원
10) 가을 - 몰락, 비극, 영웅의 패배
11) 겨울 - 밤, 혼돈의 세계
이를 구체적인 시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바다 위에서 눈은
부드럽게 죽는다.

죽음을 덮으며
눈은 내리지만

눈은 다시
부드럽게 죽는다.

- 허만하, <데드마스크> -

위 작품의 경우 물이 이 시의 주된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물이 갖는 원형적 이미지가 탄생과 소멸 등 순환론적 질서에 따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시는 대표적인 원형적인 모티프를 차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원형적 이미지는 자연현상 이외에 다음과 같은 신화적 상상력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

나요, 오장환이요. 나의 곁을 스치는 것은, 그대가 아니요, 검은 먹구렁이여, 당신이요.
외양조차 날 닮았다면 얼마나 기쁘고 또한 신용하리요.
이야기를 돌리오. 이야길 돌리오. 그대의 동족뿐이요.
그대의 피는 거멓다지요, 불지를 않고 거멓다지요.
음부 마리아모야, 집시의 계집애모양,

당신이요. 층층한 아구리에 까만 열배를 물고 이븡의 뒤를 따른 것은 그대 사탄이요.
차디찬 몸으로 친친이 날 감아주시요. 나요, 카인의 末裔요. 병든 시인이요.
벌이요. 아버지도 어머니도 능금을 따먹고 날 낳았소.

- 오장환, <불길한 노래> -

인용시는 아담과 이브의 전설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즉 아담과 이므, 카인, 능금 등이 원형적 상징임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들인데, 결국 이 시는 인간의 근본적으로 죄를 짓고 태어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자연적 질서뿐 아니라 신화라는 모티프를 이용하여, 이를 원형적으로 응용해서 작품이 씌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글의 전개 방법

주제가 정해지면 주제에 적합한 내용 전개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

◆ 설명의 방법
◇ 분류:일정한 기준을 정해 나누어 다른 무리와 구별하는 것.
   동물을 식성대로 분류하면, 육식과 채식, 잡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 분석:사물의 구성요소로 나누는 것
    얼굴을 분석하면 눈, 코, 귀, 입 등이 있다.

◇ 비교:비슷한 점을 들어 설명하는 것.
    사람의 얼굴과 원숭이의 얼굴을 비교하면 눈, 코, 입, 귀 등이 거의 비슷하다.

◇ 대조:차이점을 들어 설명하는 것.
    문학어는 함축적이고 개성적이나, 일상어는 지시적이고 객관적이다.

◇유추:두 대상 간에 비슷한 점을 들어 논리적으로 추리하는 방법.
   고래와 사람은 같은 포유류에 속한다. 그러므로 다른 물고기와 달리 새끼를 낳을 
    것이고, 젖을 먹일 것이고, 언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비교와 다른 점은 일종의 논리적 사고라는 점이다.)

◇ 예시: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이는 것.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장 가까이 있다. 예를들어 공기, 물, 음식, 옷, 집 등이다.

◇ 인용:인용이란, 말 그대로 격언이나 속담, 유명한 말 등을 끌어와 쓰는 것.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 정의:어떤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을 설명하는 방법.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 진술의 방법
◇서사(敍事):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시키는 것.
   소설 참조

◇ 설명(說明):일정한 사물, 곧 과제를 쉽게 풀어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알게하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사실명제(事實明題)를 'K는 W다.'와 같은 방식으로 진술하는
기술 양식. 
    설명문 참조

◇ 묘사(描寫):구체적인 대상을 말로 그려 보이는 기술 양식. 대상의 특징을 일반화,
유형화하여 설명하지 않고, 어떤 사물의 모습이나 상황을 감각적으로 제시하는 방법. 
    예술문 참조

◇ 논증(論證):분명하지 않은 사실이나 원칙을 놓고 그 진실의 여부를 증명하는
동시에, 읽는 이로 하여금 쓰는 이와 증명하는 바를 시인하여 믿게 하고, 그것대로
행동하기를 요구하는 기술양식.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다.

출처 : 뇌졸중의재발방지
글쓴이 : 행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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