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밤의 추억

2007. 8. 17. 23:35나 그리고 가족/수필(자작)

한 여름밤의 추억...

마당 한쪽에 밑이 빠진 양동이 화덕이 냉구를 사정없이 자욱이 뿜어대고...
뻑뻑 땀을 훔치면서 어머니는 금방 밀어낸 밀칼국수 가락을 애호박이 팔팔 끓고 있는
양은 솥 안으로 살살 쏟아붓고 계신다..
재빨리 아직도 불길이 맹렬한 솔가지에 물을 살 살 뿌린다.
푸시식.. 푸시식.. 화덕속의 불기운이 사그라 지면서 하얀 수증기가 밤하늘로 흩어진다.
덕썩도 아니고.... 밀짚으로 성글게 만들어진 꺼적을 마당에 깔고 온 식구들이 까만 하늘아래 둥그렇게 앉았다.
눈이 매울 만큼... 자욱한 생쑥 태운 모깃불이 온 마당을 가득 채운다.
후루룩... 후루룩.... 밀가리 국수는 어찌 그리도 목구멍 속으로 잘 넘어가는지....
솥에 남은 것 좀더 퍼 묵고 싶어도... 꺼억 배꼭지가...
동네 북이 되어부렀어..

“에헴.... 아따! 인자 저녁 잡수신당가요?”



새팍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이웃집 아제가 저녁 인사를 햇다.

아부지는 새팍쪽을 바라보며....
“동상... .! 저녁 안했으면... 조끔 뜨고 가세..... 워여 들어오랑께....”

“아니여라아.... 배가 터지게 지금 묵고 나온 참이요..“

뭣이 먹을것이 그렇게 많아서 배터지게 묵고 나왓다고 그란데야....
어린 내 맘속에도 어른이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이 들었다.
더위가 물러가는 시간이면 밀대로 짜여진 거적의 등짝에 느껴지는 그 시원한 청량감은 돈대봉 당샘물로 등목하는 것에 비길 바가 아니다.
누워서 바라보는 북두칠성의 국자 모양도 뚜렸하고....
이야기 책에서 읽은 별자리 모양을 찾아보는 즐거움도 대단하다.
옛날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오른 손..
손 가락을.... 쩌...쪽 옥두섬을 가르키신다.
뭔지 모를 불길한 느낌과 함게 차가운 한속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기처럼 관통하며...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루룩 흐른다.
진짜였다... 분명히 여름 밤에 보면 옥두섬 이끝에서부터
저 끝까지....
바구지 만한 도개비 불이 빙빙 돌면서 번쩍 번쩍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누구 혼이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이 땅을 헤메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그때...
밖에서 놀다 들어 온 막내 동생놈이...
뭣을 급하게 처먹어서 그런지...
갑짜기 불록한 배대지를 움켜쥐고 데굴 데굴 구르며 사정없이 울기 시작했다.
금방 묵은 밀국시를 우왝질 하면서...
할머니께서 등짝을 두드리고... 집게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 넣어 우웩질도 시켜보고..
그리고 엄지 손구락 끝을 실로 묵고서 바늘로 폭 질럿다.
어지간 하면 우 욱.. 하고 기트림을 하면서 속이 내려가는 것이 보통이련만 이번엔 정도가 심한 모양이엿다.
어머이는 빨리 가게가서 까쑤명수를 사오라고 하신다.
달콤....가심이 팍 뚫리는 까수명수.... 침이 넘어간다. 내가 묵었으면 좋것다....
까수명수 병뚜겅을 쪽족 빨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 분위기가 보통 시끄러운 것이 아니다. 동생놈이 낯판대기가 새파랗게 되어갔고... 금방이라도 뒤질 것 같아 보인다. 더럭 겁이 났다.
으짜으면 좋으까? 다리가 후들 후들 떨린다

그때 유재(이웃) 아짐이 오셨다.
쑥물과 향물을 담은 쪼빡과 함께 정재(부엌)에서 식칼을 들고 나오신다.
그리고는 큼직한 식칼로 동생을 이리 찌르고... 저리 찌르고... 하는 시늉을 함시로..
쪼빡을 두드리면서 알수 없는 주문을 열심히 외우기를 오래동안 하신다.
"헙쎄..... !  헙쎄.....! 물가거라 !
오다가다 엥긴 귀신.... 밥 굶어 죽은 걸구귀신.....
타관 객지서 집 못가고 죽은 귀신..... 물러가거라.... 헙쎄...!
정든집 보고 잡아서 집주위에 얼른 거리는 조상 귀신... 어린 자손 너무 이쁘다고....
너무 뽀짝 보듬지 마시고... 물러가시요... ?쎄....“

얼마를 그렇게 주문을 외우시던 유제 아짐이 새팍를 향해서 정지칼을 휙 던졌다.
쑥물 향물을 담은 쪼빡을 조심스럽게 들고서 새팍을 향해 걸어나가셧다.
식칼은 정확히 새팍밖을 향해 비스듬히 꽂혀 잇었다.
쑥물과 향물을 붓고... 쪼빡을 식칼 자루위에 덮어 놓으시고는...
“식으밥 있으면... 반찬 몇가지와 조그만 재사 대자리 위에 한 상 차려 놓으시요..”
“후 우..... 인자 되었어라...”

동생놈은 언제 그래 무슨일이 잇엇느냐는둥 벌써 새근 새근 어머니 무릎위에 잠이 들었다.

정말 고마운 유재 아짐..
어제는 울 어머이가 막 욕하고는.. 오늘은 아짐한테 가서 귀신 물려 달라고 하고....
그래도 뛰어와서 땀흘리고... 뭣이라 말도 없이 휘이 휘이 총총히 돌아가신다.
아따! 우리 아부지가... 아짐네 안골밭 ... 쪼금 우리소로 갈아 쥣으면 좋것어라...
“오냐... 알았다”

나는

꿈속에서 어른이 되어 있었다.
내 몸에 꼭 맞는 이쁜 지게가 하나 있고.... 조그만 바작이 지게 위에 얹어 있었다.
바작 가득히 알이 꽉찬 진줄을 지고.... 유재 아짐네 마래 앞에 척 부려 놓았다.
아짐이 진줄이 참 맛잇게 보인다며... 오히려 나에게 한웅큼 주셧다.
삐들 삐들 마른 통통한 꼭지 진줄이 입안에서 까만 단물을 쏟아 주었다.
쩝 쩝.... 달디단 진줄을 원없이 묵었다.

꿈속에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설마 꿈은 아니것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