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봄을 증오하며 운다(애도시)

2014. 4. 21. 18:31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꽃들이 봄을 증오하며 운다 

 

                                               麗尾박인태

 

 

해무 자욱한 춘 사월, 달 밝은 밤

꽃 몽우리가 끈적끈적한 껍질을 힘겹게 열며

하나둘 소리 없이 피워 올랐다.

여기 저기서

숨죽이던 밤이 술렁이며 봄맞이 축제가 시작됐다.

호호호

하하하

아 얼마나 아름다운 밤이냐

내일은 봄꽃 향기로 온 제주가 숨이 막히리라

새 아침도 그렇게 싱그러운 꽃과 함께 피어났다.

꽃들은 서로 바라보며

칭찬하며, 쓰다듬으며, 볼을 비비며 소리를 질렀다

오호라 아름다운 우리의 봄이여!

.

.

.

이 벅찬 봄이 꿈이었더냐?

방금까지 그렇게 싱싱하고 촉촉한 꽃송이에

그 누가 쓰고 짜디짠 소금물을 뿌려 시들게 하였나!

영문도 모른 체

처음엔 아름다운 성장을 위한 잠깐의 아픔이련 했다.

나의 찬란한 봄이여

나의 미래여

나의 분신이여

사랑한다. 너무 너무 사랑한다.

돌아오라! 부디

맹수의 아가리에 떨어져 시든 봄의 축제는 끝났다.

부디 좋은 세상이 있어 너희들의 봄 축제가 이어지기를

두 손이 닳도록 발바닥에 피가 나도록 문지르다

이 찬란한 봄을 증오하노라.

 

 

 

 

 

※ 2014.04.16 조도 맹골수도의 세월호 침몰 사고로 피다 진

   단원고 학생들의 영혼을 위로하며 몇 자 지어 바치다

'나 그리고 가족 >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선화(水仙花)  (0) 2014.05.15
노란 까치집  (0) 2014.05.13
미선(尾扇)나무를 찾아서  (0) 2014.04.07
산(山)  (0) 2014.03.28
무단배출(無斷排出)  (0) 2014.03.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