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박구하 ♠ 2000/11/28(화)
<시조논단> (이 글은 2000.8.12 울산에서 개최된 한국시조시인협회 여름세미나 "오늘의 현대시조, 이대로 좋은가"라는 주제하에 발표된 논문이며, 시조문학 2000년 가을호에 전재된 글임)
시조는 있는가 시조란 무엇인가. 어렵다기보다 모르겠다가 더 정확한 요즘의 내 심정이다. 게을러 공부 못한 탓일 터이지만 책을 읽어도 모르겠고 발표되는 작품들을 보면 더욱 몰라만 진다. 구구각색, 형식이 어떠니 내용이 어떠니 시와 시조가 어떻게 다른 건지 논의만 많았지 정작 권위있는 정설이 없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시조가 일반 문학독자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시조의 울 밖에서는 시조 자체가 외면 받고 있고 시조의 울안에서는 파격(破格)과 비격(非格)이 정격을 외면하는 상황이다. 진정 우탁 선생을 불러오고 잠든 황진이를 깨워야 할 것인가. 이 땅에 시조는 아직 살아 있는가,있다면 어디 있는가.죽었다면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시조는 시조인들에게는 아직 살아있을지 모르겠으나 일반 대중들에게는 고시조가 전부이고 그것도 오래 전에 죽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해야 옳으리라. 그러므로 지금 시조를 쓴다고 하는 이들은 시조를 잃어버린 책임이 있다. 속죄의 길은 잃어버린 시조의 참모습을 되찾아 이 땅에 살려내는 일이다. 그런데 답답한 것은 기실 시조인들이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시조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더욱 답답한 것은 대부분 자기들이 잘 모른다는 그 사실조차 잘 모른다는 것이다.
시조는 시의 첨단이다 3장6구12음보는 시조의 육체다. 예술의 장르는 각자의 고유한 몸을 가지고 있고 그 몸에 맞는 옷을 입고 있다. 원숭이가 사람흉내를 낸다고 사람이라 하겠는가. 시는 서정의 결정체요 시조는 그 시의 첨단에 있다. 시가 감정의 발로이자 절제요 개성적 인식의 단초이자 종언이라 한다면 시조는 시의 조상이자 시의 후손이다. 시조는 아다시피 조선조 말에 사라진 문학장르가 아니며 더더구나 자유시로 이행해간 낙오자도 아니다. 자유시는 서구에서 들어 온 시형식의 하나일 뿐이며 바로 그 형식의 자유분방성 때문에 주춤하는 시조의 비틀걸음을 추월하여 어느 결에 오늘의 우리 시세계를 석권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시조는 수 천년을 이어온 우리 민족의 시가형식의 마지막 주자로서 칠백여 년 오직 한 형식을 고수하여 우리의 애환을 토로해온 영혼의 식기로서 비록 자유시의 물결이 거세다해도 한 두 세기만에 그리 쉽게 깨어질 그릇이 아니다. 시를 담는 형식으로서 3.4조 또는 4.4.조의 시조가 우리 민족 정서에 가장 잘 맞는 것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이라고 우길 수는 없다. 이 그릇에 담아야만 맛이 나는 음식, 이 그릇이 아니면 그 맛이 나지 않는 음식을 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시조는 내용보다 틀이 우선이고 틀이 무너지면 이미 시조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이 틀에 맞추기 위해서는 절제와 응축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유시의 엑기스가 바로 현대시조의 본모습이라 할 것이다. 여기에 시조의 독자성이 있다. 여기 우리 산야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바위덩이를 보자. 바위는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바위이지만 예술인은 그 속에서 의미를 읽어낸다. 조각가는 바위 속에 든 부처를 찾아내어 우리에게 마애불상을 보여준다. 시인은 예컨대 바위의 침묵 속에서 생명의 근원을 읽어 우리에게 그 숨소리를 듣게 해준다. 시조는 시가 건져 올린 이 생명의 숨소리 즉 '대상의 서정성'을 다시 한번 더 정련하여 시의 잡다성, 가치성, 산문성을 소화하여 하나의 율격 있는 소리 즉 '노래'라는 요리를 만들어 들려준다. 그러므로 시조는 시의 어머니요 시중(詩中)의 시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는 그대로는 (즉 율조가 없이는) 시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어머니나 장인들의 능숙하고 치열한 솜씨로 다듬어 먹기 좋고 보기 좋게 꾸며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조가 자유시를 흉내내거나 따라가야 한다는 말처럼 우스꽝스러운 말은 없다. 정반대로 자유시야말로 서정의 최첨단에 있는 시조를 따라와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조는 시가 될 수 있어도 자유시는 시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조는 꼭 시조라고 부를 필요는 없다.시조를 한국적 정형시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숭원 교수의 말대로 시조에는 시조의 길이 있다. 오늘날 복잡다단한 '현실의 일상성', '일상의 다양성'을 몇 수의 시조로 형상화할 수는 없으므로 시조는 만능이 아니며 또 만능일 필요도 없다.(박재삼이 왜 시조와 자유시를 오가며 시를 썼는지 생각해 보라) 내 자식이 만능이 아닌데도 만능인이 되게 하려는데 치맛바람이 일고 무리수가 따르는 것이다. 자유시를 따라가려는 파격논자들의 비애가 여기에 있다.
시조는 쓸만한 사람만 써라 시조는 시조 자체로 여유롭고 자유스러운 것이다. 시조의 한계를 논하여 시조가 쓰거나 읽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은 시조를 쓸 자질이 부족한 사람이다. 황진이는 단 6수로, 매창은 단 1수만으로 (물론 더 많이 지었겠지만 남아있는 것만) 불멸의 시인이 되었다. 거기 어디에 형식의 제약을 느낄 수 있던가. 시조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아니 알려고도 하지않은 채 시조의 대가인 양 호령하고 있는 현실은 차라리 슬프다. 멀리는 우탁 선생이 혀를 차고, 가까이는 조운 선생이 눈살을 찌프린다. 제대로 된 단수하나 써내지 못하면서 엇나간 연시조다, 번지 없는 사설시조다, 번호판 없는 옴니버스시조다... 도대체 시끄러워 고인들은 잠을 잘 수가 없는 것이다. 우탁이 탁상을 치고 신흠이 신음하고 매창이 매라도 들어야 할 판이다. 시조는 시인의 자질이 있고 자유시의 기초와 소양을 갖추어 감정절제와 자기수양을 거친 언행일치의 자만이 쓸 수 있다. 그렇지 못한 자들은 시조를 쓰지 말라. 그보다는 훌륭한 한 사람씩의 시조독자가 되어 더 이상 시조가 어떻네 떠들지 말고 헐뜯지 말고 진실로 이 땅에 시조가 부흥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한 사람씩의 시조시인을 도와 주라. 이것이 시조부흥의 길이요, 시조를 후세에 이어주는 오늘을 사는 우리 시조인들이 문단사에 죄를 짓지 않고 사는 명예로운 길이다. 시조의 현대화, 대중화는 떠든다고 되는 일이 아니요 떠들기 이전에 이미 현대화되어 있고 대중화되어 있어야만 한다. 가람, 노산, 조운, 초정, 백수, 이호우, 박재삼, 박경용 등을 지나 아직 이 땅에 현대시조가 살아 있다고 하겠는가. 일본 단가가 우연히 국민문학이 된 게 아니다. 다와라마치라는 근세 걸출의 천재 소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여기 우리 시조가 가야할 길이 있다. 시조가 그 문학성을 살리되, 자유시처럼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의 대중성을 회복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자면 시조는 쉽게 쓰여져야 한다. 쉬우면서 아파야 하고 뒷울림이 커야 한다. 이것은 아무렇게나 쉽게 쓰라는 것이 아니라 깊고 단단한 시상을 누에가 뽕잎을 먹고 고치를 뽑아내듯 시인의 고통스런 작업 끝에 자기의 오장육부로 소화해낸 뒤 보통의 지적 수준에 있는 독자들이 이해될 수 있도록 쓰여져야 한다는 뜻이다. 소월이나 목월의 시처럼 읽혀져야 하고 청마, 만해나 이형기의 난해성까지는 좋으나 국적불명, 주술불일치, 희랍의 고대문자 같은 작자만이 아는 잠꼬대거나 자기도 내심 잘 모를 애매한 배배꼬임으로 독자를 괴롭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시조의 대중성 회복은 신춘문예부터 2천년에는 함부로 시조를 쓰지 말자. 또 함부로 시조를 쓰게 내버려두지도 말자. 이제 더 이상 시조를 외롭게 하거나 화나게 하지 말자. 시조 신춘문예는 시조만을 뽑아야 하고 그것도 가장 시조다운 시조만을 뽑아야 한다. 신춘문예는 일반 문예지의 등단과는 다른 것이다. 저변확대를 위해 문예지에서 다투어 시조쓰기 운동을 벌이고 등단문을 활짝 여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이것을 작품성이 모자란다고 매도하는 것은 문제의 일면만을 보는 단견이다. 요즘 같은 정보화시대, 사이버시대에는 굳이 등단문을 거칠 것도 없이 누구나 사이버공간에서 작가나 시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문예지를 통한 요식절차를 거치겠다는 것은 그 기개도 가상하거니와 그것이 또한 시조단에 대한 스스로의 약속이요 시작(詩作)에의 자기 다짐도 되는 것이니 좋은 일이다. 등단후 설혹 좋은 시조시인이 되지 못한다해도 그는 이미 영원한 시조인이요 한사람의 훌륭한 시조독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신춘문예는 그러하지 않다. 과거 60년대 이전의 미디어 태부족의 시대에 비하면 그 위세가 많이 축소, 퇴색되었으나 아직 그 어감이 주는 프레미엄은 대단한 것이고 더구나 한해 동안 치열한 경쟁을 뚫고 새해에 발표되는 작품은 비단 문학인뿐이 아닌 일반인들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읽고 그 작품성에 박수를 보내는 화려한 무대인 점을 감안해야 한다. 해서, 이 난이야말로 우리 시조가 자유시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 아니 오히려 그에 앞서가는 높은 서정시인 점을 밝혀 그 진면목을 보여줄 절호의 기회인 것이다. 근래 다른 문학부문에서도 신춘문예의 작품성이 수준이하라 하여 자체 비판이 혹독한 편이지만 우리 시조부문 또한 이러한 지적에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다. 아니 시조부문에서는 아예 그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언론에 거론조차 하는 사람이 없다. 겁이 나서일까. 문제점이 하나도 없어서일까. 금년의 경우 한 지면에 발표되는 동시부문보다 못하다는 쑥떡 공론을 듣는 현실에서 어떻게 시조의 대중화를 기대할 것인가. 시조의 대중화란 무슨 새마을운동 같이 생활시조를 쓰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시조의 높은 품격을 공시하여 시조가 만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문학장르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신춘문예가 누구의 독점물이 되어서도 안되며 무풍지대로 비평의 적(的)에서 비켜서 있어도 안 된다. 시조는 민족 고유의 정형시니 보호 육성해야 한다는 말들을 하는데 ('보호'라는 말에 모욕을 느끼지만) 실제로 '보호'해 주는 이도 별로 없고 '육성'해 주는 이는 더욱 없다. 오히려 근래 신춘문예부문에서 한국일보, 세계일보, 경향신문, 서울신문, 문화일보 등 중앙지에서 시조는 폐지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고 그나마 남은 일간 중앙지 3-4개 신문에서 심사위원을 한사람이 독점하거나 과점(그것도 수년간이나)함으로써 당선예상문제집이 나올 정도로 심사방향이나 작품내용과 형식이 누설되어(?) 심사위원의 아류나 본적지 불명의 사설시조류가 판을 치는 현실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시조가 비대중적이고, 소외되고, 한물 간(?) 문학으로 자리매김 당하고 있음을 개탄하기 전에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침묵, 방관하거나 심지어 동조, 흠모하는 세력들을 (아직 있다면) 먼저 지탄해야할 것이다.
시조단은 기다린다 이제 우리는 문학의 바다에서 숫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우리 시조단에 분열과 작당, 상경상멸(相輕相蔑)의 풍조를 배격하고 참으로 시조다운 시조를 쓰거나 쓰게 하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를 철저히 고민해야 한다. 혹자는 시조단에 시조시인이 많으니 등단을 제한해야 한다는 소아병자를 본다. 시나, 시조는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며 그 작품의 호오(好惡)는 오직 독자들이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리 잡초가 무성해도 난초는 눈에 뜨이는 것이며 군계 속에서도 일학은 뭇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이다. 무슨 특권층이나 된 양 "열린 시"나, "열린 시조"를 주장하면서도 실제로는 문을 닫아걸고 등단의 밥그릇이나 따지고 평 아닌 평을 하며 어른행세를 하거나 친소에 따라 뒷전에서 비아냥거리는 풍조를 우리는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21세기 새 천년은 누가 누구를 뽑고 달고 할 시기도 아니요 끼리끼리 추어주고 나눠먹고 할 시대는 더욱 아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이 땅에 시조의 꽃을 피워줄 누군가의 출현을 기다린다. 그의 등장을 위하여 우리는 부지런히 무대를 쓸고 닦아야 한다. 그 누군가를 위하여 우리는 스스로 짐이 되고 발목 잡는 멍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시조의 미학과 위상을 제대로 세우고 지키지 못한 우리는 할 말이 없어야 한다. 무얼 잘했다고 떠드는가. 작품을 못 쓰면 시조단에 기금이라도 한번 내 보았는가. 말 보시, 몸 보시라도 한번 제대로 해보았는가. 우리는 묵묵히 밭을 갈고 길을 닦을 뿐 제 스스로 열매를 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