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인 멸시역사

2007. 8. 17. 17:32아름다운 세상(펌)/고운글(펌)

제   목
  ☎1000년넘게 차별받아온 전라도와 선조들의 평가 !

 

- 고려태조 왕건의 호남 차별 유언 - 훈요10조
후백제군과의 싸움에서 수차례 목숨을 잃을뻔 하였던 왕건은 후백제 영토였던 호남인을 증오하여 벼슬길을 막아 반역의 뿌리를 뽑기 위해 훈요10조 중 제8조에서 후손들에게 호남차별을 지시하였고 이에 의하여 호남인은 곡물이나 생산하여 나라에 바치는 농노로 전락하여 대외적으로는 평등한 국토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착취의 대상인 "내부식민지" 가 되어 1천년간 본격적인 멸시를 받게 됨.

* 훈요 제8조 : 차현(차령산맥) 이남과 공주강(금강) 밖은 산형과 지세가 함께 배역으로 달리고 인심도 또한 그러하니, 차현 이남사람이 왕정에 참여하여 왕후, 국척과 혼인하여 국정을 잡게 되면 국가를 변란케 하거나 통합된 원한을 품고 난을 일으킬 것이다. (중략) 그러므로 비록 양민이라 할지라도 마땅히 벼슬자리에 두어 일을 보게 하지 말라. (이 차별은 조선시대까지 계속됨)
(73. 6. 25. 아세아문화사 발행 영인본 "고려사절요" 30면에 원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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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조 지식인들의 호남 멸시

# 실학자 이중환 : 저서 택리지의 팔도총론 전라도 편에서,
"습속이 노래와 계집을 좋아하고 사치를 즐겨하며, 사람이 경박하고 간사하여..." 라고 하였는가 하면, "지역이 멀고 풍속이 더러워 살만한 곳이 못된다. 그러한 까닭에 고경명, 기대승, 윤선도 세사람 이외에는 인물이 없다." 라고 호남을 멸시하였으며, 같은 저서 복거총론 편에서는,
"전라도는 오로지 간사함을 숭상하여 나쁜데에 쉽게 움직인다" 라고 멸시함.
# 거의 성현의 반열에 올려놓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라는 자는 위 이중환의 택리지를 칭찬하여 끝에 발문(跋文)(현대의 추천사 정도?)을 지어 붙였는데 그 내용 중에,
"호남 풍속은 호협하기만 하고 질박한 기질이 적다" 즉, 호남인들은 허세를 부리기만 좋아하고 순박하지 않다는 뜻의 악평을 함.

# 실학자 이익 : 저서 성호새설 천지편(하) 지리문 - 양남수세(兩南水勢)에서,
"경상도는 모든 물이 하나로 합쳐져 김해와 동래사이(낙동강)에서 바다로 흘러간다. 따라서 그 풍습은 굳게 뭉쳐 흐트러짐이 없다. 순후한 옛풍송은 변함없이 남아 명현을 배출하니 나라안의 으뜸가는 고장이요,(중략)
전라도는 산발사하(散發四下) 형국(금강, 만경강은 서해로, 영산강은 서남해로, 섬진강은 남해로 갈갈이 찢어져 흐른다는 뜻)이어서 재덕있는 사람의 출현이 드물고 인품이 거칠고 교활하여 사대부가 귀의할 수 없는 땅이며, 차령 이북에 대하여 배반의 지세를 가졌다." 라고 호남을 멸시하였는가 하면 전북 장수에서 발원하여 충남을 거쳐 전북 군산에서 바다로 들어가는 금강이 서울을 향하여 활시위를 힘껏 당겨 겨누고 있는 반궁수(反弓水)의 지세라 호남인이 배반을 잘한다고 멸시함.

# 실학자 안정복 : 저서 임관정요 풍속장에서,
호남의 풍속은 기교를 부리고 거짓 성실한체 하므로 마땅하 엄격과 성신으로써 교화해야 하며 ...." 라고 멸시함.

# 흥선대원군 이하응 : 팔도총평에서 타도는 칭찬하되 유독 전라도를 가리켜,
풍전세류(風前細柳) - 바람앞에 흔들리는 가느다란 버드나무,
청산미호(靑山美弧) - 청산속에서 사람을 홀리는 여우.
라 하여 교활하고 간사하다는 뜻의 멸시를 함.

>>> 조선조 중후기 시대 최고의 엘리트지식인 계층이라고 역사책에 입에 침이마르도록 칭찬하고 있는 실학자 이중환, 정약용, 이익, 안정복 등등 휼륭한분들까지 이상과 같이 호남 멸시 저주를 ?대었으니 그 나머지 비호남인간들이야 어떠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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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지식인들의 호남 멸시, 저주, 차별

# 작가 조영암 : 잡지 "야담과 실화" 1959년 7월호에 기고한 "하와이 근성시비"에서,
"전라도놈이라면 따로 떼어논 섬처럼, 그래서 이른바 하와이라는 별칭이 붙는성 싶다. 우선 인류권에서 제외해야겠고, 또 동포권에서 제외해야겠고 친구에서 제명해야겠기에 아마 이러한 대명사가 붙는성 싶다." 라고 멸시함.

# 작가 오영수 : 잡지 "문학사상" 79년 1월호에 기고한 "특질고"에서,
전라도인을 "표리부동하고 신의가 없다. 입속 것을 옮겨줄 듯 사귀다가도 헤어질때는 배신을 한다." 라고 멸시함.

# 호남인을 교활 간사한 사기꾼이라고 비하하는 현대의 호칭 : 하와이, 훌라(하와이 원주민의 춤을 빗대어), 와이치(하와이놈이라는 뜻의 하와이치가 줄어든말), 따불빽, 니쿠사쿠, 호남선 등등 무수히 많이 발전함.

사례를 열거하자면 책으로 몇권이 될 것이므로 이정도로 해 둡니다.
이상과 같이 호남인은 1300년동안 호남평야 곡창에서 곡물이나 생산하여 비호남을 먹여살리면서, 멸시 저주를 당한 내부식민지의 농노였던 것입니다.

조선조 시대에 8도감사중 최고 노른자위가 전라감사요 그 다음이 평양감사였다 합니다. 전라도는 곡창에서 곡물이 대량생산되니 잡아다 볼기 몇대씩만 치면 재물을 풍족하고 쉽게 수탈할 수 있었고, 평안도는 산간 특산물, 광산, 중국과의 밀무역 등에서 많은 재물 수탈이 가능하였던 까닭이지요.

이렇게 부임해오는 지방관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전라도는 음식문화, 음률문화, 화류계 기생문화가 발달하고, 평안도도 평양냉면이니 평양기생이니 하여 음식문화와 화류계문화가 발달하였다 합니다. 수령방백들의 비위를 맞추어주기 위하여 알아서 기던 호남의 음률문화는 동편제, 서편제로까지 발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음식문화, 음률문화, 화류계문화는 수탈당하던 내부식민지 농노들의 피눈물의 문화였습니다.
(사족을 달자면 8도감사중 기피지역은 경상, 경기, 황해감사였다 합니다. 영남은 안동김씨, 안동권씨, 풍산유씨 등 호족들이 중앙정부의 세도를 장악하고 있어 관리들의 토색질이 어려웠고, 경기도와 황해도는 왕족과 비빈, 후궁, 공신들이 하사받은 궁토나 공신전이 대부분이어서 토색질이 어려웠기 때문이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