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가는 상여를 매고 갈 때 부르는 민요의 일종인 「상여소리」다. 진도의 만가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부자나 유지택(有志宅)의 상례에는 신청의 예인들을 초청하여 만가를 부르게 하는 경우와 또다른 하나는 일반적으로 근방에서 상여소리를 잘하는 사람을 불러 상여소리를 메기게 하는 경우이다. 전자는 무업(巫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출상시 북·장구 ·꽹과리·피리 등을 치고 불면서 만가를 부르므로 노래와 가락이 다양한데 어떤 노래는 무가에서 직접 차용하기도 하 고 또 어떤 노래가락은 무가에 거의 가깝다. 그러나 후자 즉 일반인의 출상시의 만가는 극히 단순하여 「애-소리」나 「 가난보살소리」만을 하면서 묘지를 향하는 것이 통례이다.
「진도만가」는 지산면에서 불리어지는 신청 예인들의 만가로 전문화된 상여소리다. 때문에 그 종류도 다양하여 ①긴 염불(念佛) ③애소리 ④재화소리 ⑤타적소리 ⑥다리천근 ⑦다구질 소리로 되어 있고, 이 노래들은 북, 장구, 꽹과리, 피리의 반주를 뒷받침으로 노래하면서 간다. 진도의 출상(出喪)은 육지나 다른 도서지 방과는 달라서 여자들이 상여 앞에 늘어뜨린 긴 배를 잡고 묘지까지 가고, 또 봉분을 쓸때는 다구질을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그러므로 특이한 상속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상속은 민요학적 내지는 음악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진도만가」는 1982년 춘천에서 열린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전남대표로 출연하여 민요부문 우수상인 문공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고, 이후 전국에서가장 세련된 음악미를 간직하고 있는 만가로 지목되고 있다.
이 만가는 인지리 단골이었던 김소심(박병천의 모친)에 의해 전승되다 중년에 들어 일반화되었다. 김소심의 만가를 이어 받은 사람은 김항규와 설재복(薛在福. 1920년생), 그리고 조공례였다. 그러나 설재복과 조공례는 사망하고 현재 김항규와 설재복의 뒤를 잇는 설재림이 진도 만가를 전승하고 있다. 김항규는 지산면 인지리 출신이다. 인지리는 진도에서도 노래고을로 알려질 만큼 노래가 발달한 곳으로 만가뿐만 아니라 진도 들노래도 전승되고 있는 지역이다. 김항규는 어려서부터 인지리의 민요를 익혔는데, 들노래를 부를 때도 모북을 치며 소리를 했고 또 김소심으로부터 만가를 익혀 진도 만가를 전승하고 있다. 설재림은 설재복이 사망한 후 그의 뒤를 이어 만가를 전승하고 있다. 설재림은 설재복과 김항규에게서 만가를 익혔으며 상여의 꾸밈도 숙지하고 있다.
진도 만가는 무속음악과 민요가 교접한다는 점에서 볼 때는 음악학의 측면에서, 그리고 호상이 따르는 장례풍속의 독특한 점을 볼 때 민속학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문화적 자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