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19. 16:56ㆍ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거울아 거울아
麗尾박인태
흑단목 창틀에 흰 눈 소복이 쌓이던 겨울 날
심심한 왕비의 서툰 바느질 덕분에
까만 머릿결 눈 같은 피부, 피처럼 붉은 입술의 공주가 태어났지
얼마 후 바늘에 찔린 어미는 놀란 꽃처럼 떨어졌다
새로 맞은 계모 왕비는 이 아이가 늘 못마땅했지
궁전은 손거울에서 전신 거울까지 점점 가득 차고
은밀한 행위와 꼴불견도 보여주는 CCTV와 SNS를 구축했다
늘 궁금했거든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새 왕비님이십니다.
거울이 반사하는 모양은 단 한 번도 마음을 채우지 못했다.
좌우를 바꾸고, 안팎을 뒤집는 참이 아닌 닮음의 왜곡 때문.
다시 묻겠다.
거울아, 거울아 이 나라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
일곱 살 된 백설 공주가 더 예쁩니다.
언제부터인지 그 왜곡이 참인지 거짓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자
마녀는 자신보다 예쁜 거울 속의 그녀를 죽이고 싶었다.
사냥터에서 실패하면 허리띠를 졸라 숨을 끊어야지.
독 빗을 꽂지 못하면 독 사과를 먹여서라도 죽일 거야.
거울아 거울아!
아직도 내가 제일 예쁘지 않다고?
뭐, 결혼식 드레스를 입은 백설 공주가 더 예쁠 거라고?
불에 달군 쇠 구두를 신고 멈출 수 없는 고통의 춤을 추더라도
다 태워 버릴 것이다.
거울아 거울아 누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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