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등 이야기

2013. 8. 13. 19:12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손전등 이야기

                                麗尾 박인태

지금부터 약 사오십여 년 전

전라도 진도 바다 건너

상조도 섬 여미라는 동네의

호롱불 켜고 살던 시절 이야기다.

큰 아들을 군대 보내려고

그 엄니는 밤새 잠을 설치고 일어나

훌쩍훌쩍 울면서 새벽밥을 지어 먹이고

꾸불꾸불한 산길을 따라

하루에 한 번 출항하는 여객선을

태워 보내려고 컴컴한 산길을 가게 됬는디.

횃불을 켜고 다니던 시절이라

마침, 동네 이장이 귀한 손전등을 빌려주어

훤하게 밝히고 참 잘 다녀왔단다.

아들을 떠나보내고 돌아온 노모가

마음도 서럽고 애가 타지만

당장 더 큰 문제가 생겼다.

요놈의 횃불을 어떻게 해야 되나…….

입이 터져라 후우 불어도 안 꺼지고

답답해서 이불 속에 넣어도 안 꺼지고

이대로 놔두면 불이 날 것 같아

할 수 없이

빈 항아리에 넣어두고 밭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뚜껑을 열어보니

붙은 아직도 타고 있더라네…….

옳다구나! 불은 물로 꺼야지

양동이 찬물 한바가지를 퍼 부어도

횃불은 그대로 꼼짝하지 않았다.

오메 미치것네 또 한밤 보내고

 

이튿날 새벽 마을이장을 찾아갔다.

젊은 이장! 젊은 이장!

이만 저만 고민을 털어 놓으니

이장이 웃으며 손가락으로

톡! 하니

그 횃불이 꺼지더란다.

이장! 참으로 재주가 좋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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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울 아부지가

재미나게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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