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글 쓰기전에

2009. 2. 1. 11:09살다보니 이런일이/시(詩)를 위하여

1) 맞춤법, 띄어쓰기, 오타 등등은 무조건 거쳐야 할 과정이다.

이것은 높고 낮음을 떠나서 글을 대하고 접목하고 습작하는 모든 이에게 있어

가장 기본 중에 기본이라 생각한다.

평을 받던지 혹은 독자에게 제공을 하던지 혹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반드시 지키는 에티켓이 필요하다.

습작과 작품은 전혀 다른 과정이라 할 수 있음이다.

습작은 홀로 자신의 목적에 국한시켜 홀로의 길을 걷는 다고 하면,

작품은 세상에 "아무개" 라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내거는 것이다.

수많은 다수 독자에게 자신의 글을 보이는 자가

최소한 문학의 기초는 당연히 확보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수작 선정과 수정, 퇴고 과정을 함께 거치면서

나 또한 저 기본적 원칙을 일일이 설명해 주지 않은 것은 잘못으로 생각 된다.

그러나,

평소의 내 가치관이라면 응당,

내 글을 올릴 시에 기본적으로 꼼꼼히 체크하는 습관이 길들여진 탓에

무심코 넘겼음을 뉘우치고 있다.

문인이라는 것은 결국

한국의 글과 아름다움과 한글의 우수성과 바른 사용을 알려야 하는 길라잡이라 생각 되는 바,

원칙이기에 앞서, 책임감이라 동기부여를 해 본다.

 

2)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알아라.

흔히,

내가 쓴 글이 스스로 못마땅 하여, 용기를 잃고, 자신감을 잃어, 혹은 여타의 다른 이의 글을 보며

주눅이 들어 움츠려 드는 경우가 많은데 옳지 않다.

자부심/긍지/용기와<-->자만심/독선 과 구별을 하여야 한다.

타인의 생각을 귀를 열지 못하고, 홀로 독야청청 잘났다는 이는 결코 앞을 나설 수 없다. 이것이 독선이고 자만심.

그러나,

스스로 자신의 글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독자 또한 자신의 글을 인정하지 아니한다.

문인에게 있어 자부심과 긍지는!!

글을 써야 하는 큰 하나의 까닭이자 동기부여라 볼 수 있다.

스스로 글을 지나치던지, 소홀히 하던지, 독자의 눈이 무서워 멀어지는 이는

자부심과 긍지가 없기에 금방 무너지고, 펜을 쉽게 놓아 버린다.

허나, 내가 최선을 다한다...라고 생각하는 이는 결코 물러서지도, 굴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오기로써 더 일어서기 마련이다.

원래, 자신의 글에 만족하는 이는 극히 소수, 아니 없을 경우가 많음을 인식하라.

 

3) 타인의 의견을 존중할 줄 아는 관용과 이해심의 양념을 지녀라.

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때때로 그릇될 수 있으며,

다양한 생각과 배움/ 사관/ 가치관의 차이로 인해 수 없이 많은 문맥이 뿌리에서 가지를 뻗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에서 스스로에 맞는, 와 닿을 수 있는 쓴 약들을 잘 뽑아서 제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 하여..."저것은 틀렸어!" 라고 하기에 앞서,

왜 상대방은 나에게 이런 조언을 했는가...먼저 반문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제 아무리 객관적 시야로 글을 대한다 할지라도 그 중 다수는 자신도 모르게 주관성을 띄게 된다.

그것을 바로잡아 주는 것이 독자, 제 3자의 냉철한 객관적 시야인 것이다.

통상적 경험으로 비춰 봤을 때,

이 사람에게는 독보다는 약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사람의 경우도 한 때... 선배들의 조언을 고깝게 여긴 적도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는 반복적 경험을 말해주는 데도 무시하고 고집을 꺾지 않았었다.

그것을 뉘우치기 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으며, 그 만큼 발전은 더딜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은 마음은 모두 같은 바, 나쁜 설명을 하는데 기분 좋은 이는 없을 것이다.

허나, 발전하고자 한다면

생고집으로 지킬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수긍하고 바꿀 자세가 되어야 진정한 미래가 있다 하겠다.

 

4) 함께 공존하는 어깨동무의 포용성을 길러라.

얼마전... 이곳에서의 한 선배님께서도 그런 말씀이 있으셨지만

수많은 문학 공간에서 자유로이 활보하는 우리들은

남의 글에 대해서 너무나도 관심이 인색한 것이 사실이다.

제 글만 올려, 봐주기를 바라고, 아니봐주면 댓글 달라고 아우성이다.

글이란??

제 홀로 관심 받자고 쓰는 것이 아니라 학문이다.

서로 견제도 하고 , 도움도 받고, 또 타인의 글에서 배울 점은 배우며 커야 한다.

일반적으로, "문인은 고독의 길을 걷는다." 라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은

스스로의 몫에 해당하는 끈기와 인내, 파고드는 생각을 말함이지

널리 바라보는 인식을 고독하게 보라는 뜻이 아니다.

정 시간이 없거나, 혹은 댓글 달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읽기라도 하여라.

나 홀로 독야청청 해서는, 스스로의 글이 무엇이 잘못인지 고칠 수 없으며,

의견의 공유가 없어, 발전을 기대할 수 없음이다.

흔히, 책을 많이 읽어라/ 혹은 권유를 하라 하면

유명한 책/ 유명한 시인의 책/ 고리타분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조차 안가는 시학 모시기 이런 것만 권한다.

그런데 생각해 보라.

그것을 내것으로 소화하지 못한다면...백 번을 읽는들...천번을 읽는들 무슨 득이 되리오,

오히려

나와 가장 인식이 비슷하고/ 생각이 같고/ 존재감이나 사관/ 가치관이 유사한

또래 문우들의 글에서 많은 정보를 구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더 좋은 방법은,

그들의 글을 꼼꼼히 읽고서, 짚어 주거나, 의견을 달아보라.

그것은 그 상대방 뿐만이 아니라, 내 자신의 잠들었던 지식까지 깨우주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사실, 이 사람도 이 점에 대해서는... 평소 실천력이 낮아 부끄럽기는 마찬가지다.

 

5) 다작보다 꼼꼼한 최선을 한 편에 최선을 다하라.

수많은 문학 사이트들에서 예를 보면, 날마다

개개인이 한 편 이상, 혹은

수없이 많은 글들이 날마다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양의 글 들 중에서 문학작품으로 진정 뽑을 글을 찾으라 한다면

고민하거나, 고개부터 갸웃거리는 경우가 아주 많다.

글을 너무 즐겨서인지, 아니면 너무 사랑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되,

기본적인 것조차 소홀히 하고, 뻔한 이야기나, 사랑이니 연정이니 어쩌니 등등의

그런 글들이 무수하다.

과연, 이렇게 쓰고서 문학이라,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글은 곧 작가 자신인 것이다.

올곧게 최선에 최선을 다하는/ 뼈를 깍듯 인고의 생각과 사고를 거치지 않고서/ 무의미하게 띄우는 글은

곧 내 자신을 하찮게 여기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다작을 많이 하라는 의미는??

최선을 다하면서, 귀찮다고 무엇하다고 핑계거리를 대지 말고, 가급적 펜을 잡아라는 말이지,

양으로 승부를 걸라는 소리가 결코 아님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한 달에/ 일 년에 한 편을 쓰더라도 질적 승부를 다해야 한다.

이런 말이 있다.

일년 사이에 정말 詩다운/ 작품다운 작품을 10편 쓰는 이가 있다면 그는 詩仙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 의미를 새겨 보길 빈다.

 

6) 문학을 편하게 대하고 써라.

詩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너무 어렵다/ 배우기 힘들다/ 이런 하소연이 줄줄 이어진다.

맞다, 시는 어렵고 힘들다.

그러나, 그 가치관은 틀렸다.

여러분들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진실로 어려운 詩의 본질이 아니라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오도의 생각적 편견 때문에 어려운 것이라 본다.

꾸미다/미사여구/시어/시상/함축/비유...

그냥 보면 말만 들어도 오금이 저리고 한숨부터 흐른다.

그러나 가볍게 생각하면 한 없이 가벼운 것이 또한 이들이다.

이 사람은,

늘 강조한다, 초고를 쉽게 써라/편하게 써라/ 마치 일기쓰듯 물 흐르듯이 써라/ 꾸미지 마라/철학을 논하지 마라/

아주 가벼운 마음 상태에서 편하게 사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쓰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수정, 퇴고를 거치는 과정에서...필요한 시어 조금 넣고, 문장과 문맥이 바르도록 고치고, 불필요한 내용 빼고 하면

詩가 탄생되는 것인데,

여러분들의 습작 과정을 꾸준히 지켜보면

첫 시작부터 너무 어렵게/너무 철학적으로/ 너무 심도있게/ 꾸미고 치장하고/ 맞지도 않는 시어와 시상, 내용을

 덕지덕지 마구 칠하고 있다.

초고를 그렇게 해서는 결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이런 잘못된 인식으로 글을 접하니, 당연히 어렵고 무거울 수 밖에 없음이다.

결코 꾸미려 머리 쥐어짤 필요도 없으며, 아름답게 이쁘게 치장할 필요도 없다. 巳足인 것이다.

 

7) 시선과 시야의 폭을 넓혀라.

흔히,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소재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선택하고 찾아야 하는지를.

그 답을 말할 가치조차 없다.

둘러 보라. 내가 숨쉬는 것, 내가 지니고 다니는 것, 내가 바라보고 마주치는 사람들, 풍경들,

십원 짜리 동전 하나까지 모두 소재이고 제재이고 주제인 것이다.

소재를 찾지 못해 헤매이는 까닭은??

자꾸 큰 무언가를 멍하니 먼 산 바라보듯 애써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글의 내용도 신선놀음 하듯이

먼 산이 어떻고,구름이 어떻고, 이런 넋두리만 놓게 된다.

제재는 멀리 있는 것도 아니며, 큰 뜻이 아니며, 큰 무슨 가치가 아니다.

수수하고/소소하고/냄새 나고/보잘 것 없는/그러나 땀내가 물씬 풍기는 바로 오늘의 삶, 걸음, 풍경,

이것이 곧 글이고 주제이고 소재인 것이다.

나 자신을 가장 잘 파헤치는 이가 글도 잘 쓴다고 한다.

모든 것의 출발점을, 가장 작은 것에서 시작하라.

 

8) 문학을 즐겨라.

이따금 이런 말을 하면 그 의미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데,

즐기라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고정적인... 생각의 틀에 얽매이지 말고 마음껏 써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기본/기초에는 충실해야 한다.

무조건 해야할 자세에서는 최선을 다하되, 쓰는 그 몸가짐을 편하게 하라는 것이다.

쉽게 대비의 예를 든다면,

즐기다/막 쓰다...의 차이는 자유/방종...의 차이가 같다.

자유에는 책임이 동등하게 따른다.

문학에서의 "책임" 이 바로 , 꼭 해야만 될 공부와 기본기의 충실한 바탕 이루기다.

이처럼 글은 편하게 쓰고, 기본기만 잘 접목하면 아무 무리가 없을 진데,

보통,

편하게 써야 할 흐름은 비유다/함축이다/짜임이다/ 하여 말도 안되게 배배 꼬면서

얼토당토 않게 쓰고,

정작 배움을 총 막라하여 퇴고해야 할 기본기 과정에서는

맞춤법 하나 올곧게 고치지 않는게 현실이다.

다소, 어려운 헤아림이라고도 생각되나,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9) 마지막으로, 묘사 위주로 내용을 많이 이뤄라.

추상적/관념적/ 뭉뚱그레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어휘/시어/한자어를 남발하지 말고,

관찰로써 구체적 묘사에 중점을 두어야 하겠다.

이미지로써 승부를 거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섬세하고 세밀하고 맛깔스러운

구체적인 묘사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마치 독자가

작가가 바라보는 풍경이나 흐름을 그대로 읽고 보는듯한

그렇게 깔끔하고 확실한 묘사로써 살려야 한다.

그래서 이 사람은 가끔

글은 "작가가 글로 원고지에 그리는 풍경화" 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한다.

먼 산을 뒷짐 지고 겉 윤곽만 잡아서는 풍경화가 될 수 없듯이

그 숲 속의 나무 하나 하나, 돌 하나 하나, 이파리 하나가 드러나야 한다.

출처 : 도솔문학
글쓴이 : 國峯 김종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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