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신현림 - 신경정신과 병원으로부터
2008. 10. 16. 13:14ㆍ아름다운 세상(펌)/고운시
신경정신과 병원으로부터
1
여행 예매 차표를 손에 넣듯이 알약을 들고
안개 속에 떠 있는 호텔로 간다
불면의 마술을 푸는 알약
램브란트 그림 같은 어둠속에 눕힐 알약
소름끼치도록 희망차게
끝내 화합할 수 없는 알약들과
오래도록 연애를 했었다
알약들은 둥근 소파처럼 부풀어 나를 애무했다
그건 사는 게 아니었다 너무나 긴 장례식이었다
이쁘고 발랄한 이십대에 죄수만 같다니
치욕스러워라 더이상 시간을 잃고 싶지 않아라
모래구름 속에 발이 떠다니며 경련하는 병
어리석고 부질없는 병 아닌 병
2
실패로 가는 완벽한 그림은 영구차로 변해
밤마다 나를 태우고 달린다
누군가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
열렬해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내가 그린 녹색 창문은 번번이 깨져갔다
무리를 지어 화목한 노래를 합창하는 세계
저 환한 세계가 보이는 창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눈보라에 파묻힌 천사처럼 물감도 붓도 굳어간다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날 마땅한 곳이 있으면
보잘것없는 몸 숨길 짙푸른 나무가 있으면
어서 성당 종소리가 울려퍼지는
나무 속으로 들어가 잠에 빠지고 싶다
출처 : 碧 空 無 限
글쓴이 : 언덕에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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