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 표현하는 순서 / 윤석산

2008. 4. 23. 13:58살다보니 이런일이/시(詩)를 위하여

(시) 표현하는 순서 / 윤석산 문학의 향기

2005/05/16 22:32

http://blog.naver.com/jinguja/80012988993

                                             어떤 순서로 말할까 / 윤석산

 


1.장르에 따른 주된 모티프


흔히 모티프의 배열 순서를 결정하는 <구성(plot)>은 서사나 극에서만 필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서정에서는 그리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로 인해, 서정적 장르에서는 '기승전결(起承轉
結)' 또는 '수미상관법(首尾相關法)'과 같은 간단한 이론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태도는
서정이 상대적으로 짧은 양식을 취하고, 시인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장르라서 일정한 법칙
을 정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정 역시 일종의 담화로서 구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담화의 속성
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토마쉐프스키(B. Toma evski)는 [주제론(Thematics)]에 의한면 모
든 담화는 모티프의 집합(集合)이고, 모티프는 문장으로 이루어지며, 그것을 하나로 통일하는 기
능은 테마가 맡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모티프의 유형은 <한정 모티프>·<자유 모티프>·<
동적 모티프>·<정적 모티프>로 나눈다.

 

<한정 모티프>는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줄거리
<자유 모티프>는 생략되어도 별다른 느낌의 부분
<동적 모티프>는 정황(情況)의 변화를 묘사하는 단위
<정적 모티프>는 '그녀는 아름답다'와 같이 묘사하는 단위

 

그런데, 각 장르는 작가가 주로 전달하려는 <주된 모티프>와 그것을 밑받침하기 위한 <부차적
모티프>가 있다. 장르별로 주된 모티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서사와 극 : 과정을 이야기하거나 보여주는 장르 - <한정  모티프>과 <동적 모티프>이 주된
모티프이고,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가 밑받침하는 모티프이다.
서정 : 느낌을 이야기하는 장르 -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가 주된 모티프이고, <동
적 모티프>와 <한정 모티프>는 밑받침하는 모티프이다.
수필 : 느낌이나 주장을 하기 위한 장르 - 전체적으로는 서정과 마찬가지이지만, 수필의 유형
에 따라 <동적 모티프>와 <한정모티프>가 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차이는 장르의 특질 차를 드러내는 것일 뿐, 실제 창작에서 그 작품의 우열
은 얼마나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를 독창적으로 부각시키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2.모티프의 배열


우리가 흔히 말하는 <구성>이란 담화의 전개 전략으로서, <모티프의 배열>을 말한다. 일상적
담화에서는 화자와 청자가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상황>을 공유한 채 진행하지만, 문학적
담화는 공유하지 않은 채 진행하고 있으므로, 어느 장르이든 먼저 인물(화자)가 현재 위치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와 같은 단위는 존재체의 구성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
만 아니라, 독자로 하여금 화자가 현재 처해 있는 공간적 풍경과 상황을 상상하면서 왜 그가 그
런 생각과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를 짐작하도록 만드는 기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자가 원하는 것은 작중 인물이 처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그러므로, 어느 장르이
든 되도록 짧게 그려줘야 한다.
특히 서정적 장르는 시간과 공간은 물론 인물마저 '대명사' 형태를 취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암시적으로 그려야 한다.

 

모든 담화는 화자가 이야기하려는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
고 이를 위해서는 시간과 공간을 그린 다음, 자기가 전달하려는 주제를 앞 뒤에 놓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와 같이 주된 내용을 앞뒤에 놓으면 같은 요소(의미)가 반복되기 때문에 리
듬감이 형성되고 완결된 느낌이 든다. 전통적인 시작법에서 수미상관법이라든지, 기승전결을 주
장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수미 상관법 : <첫머리의 모티프>……<다른 모티프>……<첫머리의 모티프>
기승전결 : 화자의 주된 생각(기)-화자의 주된 생각(승)-화자의 다른 생각(전)-화자의 주된 생
각(결)

 

서정적 장르에서 화제의 지향성에 따라 배열 순서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화자 지향형:<시간과 공간 암시→ 화자의 현재 정서→그와 같은 정서를 갖게 된 동기→화자
의 현재 정서>
청자 지향형:<시간과 공간 암시→청자에 대한 요구→청자에 대한 화자의 생각→청자에 대한
요구>
화제 지향형:<시간과 공간 암시→대상의 모습이나 그에 대한 정보→대상에 대한 화자의 생각
→대상의 모습이나 그에 대한 정보> 순으로 전개한다.

 

서정적 담화라고 해도 화자가 왜 그런 정서를 지니게 되었는가를 알리기 위해서는 한정 모티프
와 동적 모티프로 이뤄지는 서사적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어느 정도 전체 줄거리는
짐작할 수 있어야 하며, 어느 한 순간의 정서를 그린다고 해도 화자의 움직임이 수반되는 경우
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정적 담화는 서사성을 완전히 제거한 것이 아니라 약화시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사성을 약화시키기 위한 구성으로는 <현재의 정서-과거의 사건-과거의 사건-과거의 사건-현
재의 정서> 방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건의 순서
꽂피는 봄 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음. 외로워서 바닷가에 나감 파도와 갈매기를 봄
더욱 그 사람 생각이 남 돌아오는 길에 포장 마차에서 술을 한 잔 함 옆자리에 앉았
던 사람도 술을 마시고 떠남 여전히 외로웠음.

 

시적 재구성의 방법
외로워서 못견디겠음.(화자의 현재 정서) 펄럭이는 포장마차 불빛 아래서 혼자 들여다 보
는 눈물처럼 투명한 술잔에는 방금 보고 온 밤바다의 파도가 일렁거리고(과거 사건의 현재
화) 갈매기가 한 마리가 혼자 끼욱끼욱 울고(과거 사건의 현재화) 꽃잎 속으로 숨은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과거 사건의 현재화) 밤이 깊어 옆 자리의 사람들도 하나 둘 일
어서고 있는데 외로워 혼자 술잔만 바라보며 앉아 있음.


이와 같은 방식을 택할 경우 결국 <사건의 순서>와 <진술의 순서>가 바뀔 수밖에 없다. 토도
로프(T. Todorov)는 이와 같은 방법을 <엇갈려 말하기(anachronies)>라고 말하고 있다. 아래
작품에서도 서정성을 강화시키기 위해 사건과 진술의 순서를 엇갈려 조직한 흔적이 발견된다.

 

ⓐ1님은 갔습니다.(님이 떠남) ⓐ2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현재-님이 떠남)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현재-님이 떠남)
ⓒ황금(黃金)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盟誓)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과거-이별 후의 내 처지에 대한 생각)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運命)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질쳐서 사라졌습니다.(과거-이별 후의 내 처지에 대한 생각)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과거-님과 함께 있었을 때의 나의 행동)
ⓕ1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과거-님과 함께 있었을 때의 나의 행동) ⓕ2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현재-님에 대한 생각으로 인한 새로운 슬픔)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배기에 들어부었습니다.(현재-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만날 것을 믿습니다.(현재-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현재-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현재-슬픔을 극복한 상태)
- 한용운, [님의 침묵]

 

<사건의 발생 순서>

 

①임과 함께 있었을 때의 화자의 행동(ⓔ·ⓕ1)
②님의 떠남(ⓐ1·ⓐ2·ⓑ)
③이별 후의 나의 처지에 대한 생각(ⓒ·ⓓ)
④그런 생각으로 인한 새로운 슬픔(ⓕ2)
⑤그 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과 자위(ⓖ·ⓗ·ⓘ)
⑥현재 자신의 상황(ⓙ)이다.

 

이들의 관계를 다시 도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①     ②     ③      ④     ⑤     ⑥
사건의 순서---------------------------------------
              ↘ ↙      ↙      ↓     ↓     ↓
               ↙  ↘  ↙        ↓     ↓     ↓
             ↙      ↙ ↘       ↓     ↓     ↓
진술의 순서---------------------------------------
            ㉮     ㉯     ㉰     ㉱     ㉲     ㉳
          (ⓐ1 ⓐ2 ⓑ) (ⓒ ⓓ)  (ⓔ ⓕ1)  (ⓕ2)   (ⓖ ⓗ ⓘ)   (ⓙ)

화자가 제일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님이 떠났다>라는 사실이기 때문에 첫머리에서 반
복적으로 제시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1을 문장의 최소 조건인 <S+P> 형식으로
진술한 것은 님이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고 당황스럽기 때문이며, ⓐ2에서 '사랑하는
나의'라는 관형구를 동원한 것은 다급한 심정을 어느 정도 해소된 뒤이기 때문이고, ⓑ에서는
일단 떠났다는 사실을 인정한 뒤라서 어디로 어떻게 갔는가를 밝혀야 한다는 생각이 작용했
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를 끝까지 되풀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와 ⓓ에서는 님이 떠남
으로 인하여 바뀌게 된 화자의 처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와 ⓕ1에서는 님과 함께 있
을 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있다.

토도로프는 과거에 대한 <회상(retrospections)>과 미래에 대한 <예측(pros-pection)> 때문에 이
와 같은 기법을 채택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 결과는 <장면화(scenery)>와 <요약(summar
y)>으로 나타난다.
서사적 담화는 인과관계가 없는 것들을 삭제하고, 관계가 있는 것끼리 한 데 모으기 때문에
장면화가 일어나고
서정적 담화는 서사성을 약화하기 위하여 장면화 시킨다고 볼 수 있음.

 

이와 같이 엇갈려 말할 경우 독서 시간의 왜곡 현상이 나타난다. 도토로프는 시간의 왜곡 유형
을 크게 <정지(pause)>·<생략(ellipsis)>·<일치(equal)>로 나누고, 정지와 일치의 중간형으로
<확대(enlargement)>, 생략과 일치의 중간형으로 <요약(summary)>을 추가시킨다. 이들을 문체
를 연관지으면, <정지>는 시간의 흐름을 정지하고 분석적으로 진술하거나 묘사하는 문체에서
얻어지며, <확대>는 어느 정도 사건을 진행시키면서 묘사하는 문체에서 얻어진다. 따라서 정지
와 확대는 묘사적 화법에서 얻어지는 것으로서, 전자는 정지태(停止態)를 묘사할 때, 후자는 <
동태(動態)>를 묘사할 때 얻어진다.


주된 화제는 <정지>·<일치>·<확대> 시키고, 밑바침하는 내용은 <요약> 또는 생략하는
게 원칙이다. 따라서, 서정적 담화에서 느낌에 대한 부분은 <정지>·<일치>·<확대> 시켜
야 하며 스토리에 관한 부분은 <요약>·<생략> 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는 다시 동일한 화제를 사건을 얼마나 자주 언급하느냐 하는 빈도(frequency)에
문제로 이어진다. 도토로프는 빈도의 유형을 ①하나의 진술이 하나의 사건만을 환기시키는 <일
회적(singulatif) 이야기>, ②여러 개의 진술이 하나의 사건을 환기시키는 <다회적(r p titif) 이야기>,
③하나의 진술이 여러 사건을 환기시키는 <반복적(it ratif) 이야기>로 나눈다. 그러나 ③의 '반복
적 진술'이란 용어는 '다회적 진술'과 같은 의미로 오해하도록 만들 수 있으므로, '암시적 진술' 또
는 '통합적 진술'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테마에 관한 것은 다회적 이야기로, 그 이외의 이야기는 일회적 이야기로, 사건의 줄거리를
나타내는 부분은 암시적 진술로 표현되어야 한다.
앞의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빈도로 화자의 정서를 나타내고 있다. 님이 떠났다는 사실(ⓐ1·
ⓐ2·ⓑ)과 슬픔을 극복하기 위한 자위(自慰)(ⓖ·ⓗ·ⓘ)는 3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다회적
진술에 해당한다. 그리고 새삼스레 떠오르는 슬픔(ⓕ2)과 그를 극복한 현재의 심정(ⓙ)은 하나
의 사건을 하나의 문장으로 이야기한 일회적 이야기에 해당한다. 이를 도표화하면 다음과 같
이 그릴 수 있다.

 

  <보기>①님이 떠남                    ②이별 후 내 처지에 대한 생각
         ③님과 함께 있을 때 나의 행동    ④생각으로 인한 새삼스런 슬픔
         ⑤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       ⑥슬픔을 극복한 상태
                                   ※영문의 원문자는 행의 표시임

 

이처럼 님이 떠났다는 사실(①)이나 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⑤)을 다회적 이야기로 한 것
은, 전자의 경우 님이 떠났다는 사실이 너무 놀랍고도 의외였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
리고, 후자의 경우 그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반면에 새
삼스레 떠오르는 슬픔(④)과 화자의 현재 상태(⑥)를 일회적으로 처리한 것은 슬픔을 억제
하기 위해서이거나, 아직도 완전히 그 슬픔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빈도는 결국 스토리의 진행 문제로 이어진다. 다시 말해, 다회적 진술은 스토리의 진
행을 정지시키거나 약화시키고, 일회적 진술은 진전시키며, 암시적 진술은 요약하거나 반전시키
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독서의 속도 면에서 볼 때, 다회적 진술과 암시적 진술은 의미
의 밀도(density)를 높여 <지연(遲延)>시키는 기능을 지니며, 일회적 진술은 밀도를 낮춰 <원활
(圓滑)>하게 만드는 기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시 리듬의 문제로 이어진다. 앞의 한용운의 작품이 산문처럼 보이면서도 리듬감을 지
니고 있는 것은 문체와 빈도 그리고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의미의 반복으로 원활과 지체를 교
차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모티프의 배열의 유형


플롯의 유형은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인과적 플롯


<A→B→C→D>로 이어지는 방식으로서 서사나 극에서는 <인과관계>에 의하여, 서정에서는
시의 주된 화제인 정서나 상상력은 계기적·인과적이라기보다 단속적·비인과적인 것이기 때
인과성은 훨씬 약화되고 정서적으로나 감각의 <연접(連接) 관계>로 이어진다.
전체 의미를 하나로 통일되고, 그로 인해 정서와 전달력이 강화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사실성을 추구하는 양식으로서, 작품 평가의 기준을 리얼리티와 인과성 여부로 잡는
다. 반면에 화자의 정서가 텍스트의 의미적 국면을 주도하기 때문에 독자의 자율적 해석이 제
약되며, 의미가 단순해진다는 게 단점이다.


다음 작품은 직선적 플롯을 택하고 있다.


내 고향 굴다리 밑 혼자 살던 거지.
햇볕에 나와 이를 잡고 문득 먼 데 산을 바라보고
누더기에 손톱 한 번 문지르고
일어서서 육자배기 흥얼흥얼
제 발자국과 함께 놀던 거지.
봄 거지.
몇 년 전 서울에서도 로마에서도
너무도 잘 보이던 고향 거지.

바랄 것도 더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은
저녁마다 제 그림자를 데리고 누울 곳으로 돌아간다.
누워서 세우는 나라를 위해 돌아간다.
- 이성부(李盛夫), [깨끗한 나라] 전문

 

이 작품은 2연으로 나누고 있다. 하지만, 1연의 의미상 단락은 <①고향에서 만난 거지>, <②
그 거지의 모습>, <③서울과 로마에서 그 거지를 떠올림>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전체의 단
락은 1연의 3단락에 2연의 <④가난한 사람들은 꿈 속에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잠>이
덧붙은 형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에피소드들은 인과관계에 의하여 연결되고
있다. 다시 말해,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졌기에 거지가 이를 잡고, 같이 놀아 줄 사람이 없
기에 혼자 놀 수밖에 없다는 논리적 연접이 이 작품의 연결 고리이다.

 

 단속적 플롯


<단속적 플롯>은 군데군데 인과관계가 없는 단락을 삽입하여 사건의 진행을 차단하는 유형
을 말한다. 따라서 단속적 플롯은 인과적인 직선적 플롯과 비인과적인 병렬적 플롯의 중간 유
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독자들은 그 사건의 결말을 가급적 빨리 알고 싶어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그리
고 다른 한편으로는 텍스트의 내용이 필연적인 것처럼 느껴지길 요구한다. 그런데, 이야기가
곧바로 결말을 향해 진행되면 단순해져 필연성이 떨어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섬세하게 묘
사하면 사건의 진행 속도가 떨어진다. 따라서 직선적 플롯의 틀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건의
진행을 방해하기 위해 군데군데 인과관계가 없는 에피소드를 끼워 넣은 이 유형은 독자의 상
반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정적 장르는 사건을 다루는 양식이 아니다. 그러므로 서사적 장르와 달리 정서의 흐
름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이질적 관념이나 풍경을 삽입하는 방법을 채택한다. 다음 작품은 단
속적 플롯을 채택한 예로서, 부분병치를 발견할 수 있다.

 

나는 왜 저 빗속에 날뛰는 바다를 언제나 바다라고만 부르는 걸까.
위태롭게 흔들리는 칸나꽃 뒤 쪽 끊임없이 밀려오는 물굽이를 박차고 조랑말 떼처럼 내닫는 빗줄기, 수평선은 번뜩이는 빗줄기에 실려 하늘로 오르고…….
그 뒤에 남는 무연한 공간을 산이나 들, 또는 죽음이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걸까. 불같이 미끄러운 칸나라고 부를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왜 빗속에 흔들리는 저 칸나를 붉다고만 말하는 걸까.
꿈 속인 듯 비 속인 듯 그대가 밤마다 남기고 간 입술 자욱처럼 선연하게 타오르는 빛깔을 사랑이나 이별 또는 불같은 미끄러움이라고 불러서는 안 되는 걸까.
누군가 이미 한 말 같다만 사물은 시간마다 달리 보이는 법, 그래도 관념은 여전히 고집을 피우고, 까닭 없는 슬픔은 온몸 가득 번져 나른한데,
다탁 위에 놓인 내 손 끝을 잡고 애써 웃는 그대를 새롭게 부르고 싶어 견딜 수가 없구나.

내가 너를 안아 준 다음에는 어떻게 변할까. 너는 너, 그리고 나는 여전히 나일까.
비를 맞으며 천연스레 흔들리는 저 칸나처럼 네가 너, 내가 나인 것도, 서로가 서로의 껍질을 벗기고 마침내 시드는 것도 두려워 망연히 앉아 있는데, 어디선가 가느다란 실내악(室內樂)이 들려 온다.
내 손을 잡고 파르르 떠는 네 손의 투명한 실핏줄에서도, 아까부터 같은 박자로 흔들리는 칸나 꽃잎에서도, 그 너머를 짓달리는 빗줄기의 희끗희끗한 갈기에서도, 오보에 소리가, 클라리넷 소리가, 섹스폰 소리가 들려 온다. 부우, 부우, 부우우, 부우, 부우, 부우우……

그대여! 아직은 대낮이다만, 태양은 먹구름 속에 들어 천지가 캄캄.
그러나 아직은 부끄러운 대낮이다만, 희미한 등불을 들고 어두운 네 층계(層階)를 내려가려 하노니, 부드럽게 부드럽게 내려가려 하노니,
왜 이렇게 자꾸만 말이 더듬어질까, 미끈덩거리는 욕망에 걸려 넘어지는 관념들, 그때마다 네 몸은 하이얀 파도가 되어 갈라지고, 얼핏얼핏 드러나는 침대. 그 위에 쓰여진 먼 나라 문자들이 신비롭구나. 나는 왜 저 빗속에 날뛰는 바다를 바다라고만 부르는 걸까.
흔들리는 칸나꽃 뒤쪽 번뜩이는 그 빗줄기에 실려 하늘로 오르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아득해 하는 이 맘을 사랑이라고만 부르는 걸까.
몸서리치도록 고운 꽃 빛깔에 걸려 넘어지는 내 관념 위로 부우우, 부우, 부우……, 섹스폰 소리가 쏟아지는데 나는 마땅한 네 이름을 생각할 수가 없어 죽음을 생각한다.
…… 부우, 부우, 부우……
- 필자, [칸나꽃 뒤로 보이는 풍경을 위하여] 전문

 

이 작품에서 화자는 연인과 함께 칸나꽃이 핀 언덕 위의 찻집에 앉아 빗속에 날뛰는 바다
를 바라보고 있다. 그런데 1연의 첫머리에서는 '나는 왜 저 빗속에 날뛰는 바다를 언제나
바다라고만 부르는 걸까'라고 당연한 현상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은
그 까닭이 곧 밝혀지리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화자는 그 해답을 제시하지 않고, '조랑말처럼
내닫는 빗줄기'와 그에 실려 올라가는 '수평선'을 보여주고, 수평선이 사라진 빈 공간을 '산
이나 들 또는 죽음', '불같이 미끄러운 칸나'로 부르면 안되는 걸까라고 새로운 의문을 제기
한다.


2연에서도 이런 의미와 정서의 흐름은 계속 차단된다. 첫째 연에서 제기한 질문을 다시 제
기하고도 답을 피하면서, '사물은 시간마다 달리 보이는 법'인데 '내 관념은 여전히 고집을'
피운다고 이야기 방향을 바꾸고, '다탁 위에 놓인 내 손 끝을 잡고 애써 웃는 그대를 새롭
게 부르고 싶어 견딜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3 연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너를 안아 준
다음에는 어떻게 변할까'라고 의문을 제기한 다음, 자기 손을 잡은 연인의 '실핏줄'과, 언덕
위에서 흔들리는 '칸나 꽃잎'과, 그 너머로 짓달리는 빗줄기의 '희끗희끗한 갈기'에서 각종
악기 소리가 들린다고 딴청을 피우고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텍스트가 진행됨에 따라 우연히 등장한 것처럼 보이는 사물들은 상호 관
련을 맺으면서 입체화된다. '칸나', '바다', '빗줄기'가 그런 것들이다. 1연의 첫행에서 '빗줄기'
와 '바다'는 그냥 외부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풍경에 불과하지만, 2 행에서는 <빗줄기→조
랑말떼>가 되어 바다를 싣고 하늘로 오르고, 3 행에서는 '산'·'들'·'죽음'·'불같이 미끄러
운 칸나'로 바뀐다. 그리고, 2 연에서는 '칸나'에서 '그대'로 바뀌고, 3 연으로 넘어가면 이들
은 건축물처럼 내부에 공간을 가지며, 그 속에서 각종 악기 소리가 울려나오고, 화자는 등
불을 잡고 '그대' 내부에 있는 층계를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처럼 단속적 플롯을 채택하면 인과적 구성의 줄거리는 배경화되고, 비인과적으로 차단한 부
분이 전경화된다. 그리고 전경과 배경이 결합하고 분열하면서 의미 폭이 확산되며, 그로 인해
리얼리티가 강화된다. 하지만 배경화를 소홀히 하면 의미의 흐름을 차단한 부분 때문에 혼란
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비인과적 플롯


소설에서 비인과적 구성은 <병렬식(竝列式)> 또는 <피카레스크(pica-resque)식 구성>이라고
불리는 것들로서, 작품을 이루는 각 단위의 에피소드들을 인과관계를 단절하고 병치시키는 유
형을 말한다. 그러나 비인과적 구성은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가 비인과적일 뿐, 같은 에피
소드 안의 스토리마저 비인과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A(ⓐ→ⓑ→ⓒ→ⓓ)/B
(ⓐ→ⓑ→ⓒ→ⓓ)/C(ⓐ→ⓑ→ⓒ→ⓓ)……> 식으로 진행되는 형식으로서, 괄호 안의 작은 에피
소드들끼리는 직선적이거나 단속적인 구성을 택한다. 그러므로 전체 구조에서 볼 때는 관계없
는 몇 개의 이야기를 모아 놓는 형식으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복수 시점을 취하는 수가 있다.


시에서 비인과적 구성은 20세기에 접어들어 등장한 큐비즘(cubism), 미래파(futurism), 다다이
즘(dadaism), 해체시(解體詩)를 비롯한 모더니즘 일파의 작품에서 발견된다. 이와 같은 유형
이 서사적 장르보다 뒤늦게 채택된 것은 시의 에피소드 단위가 서사적 단위보다 작아 자칫하
면 파편화(破片化)되고, 그로 인해 무의미한 언어나 심상의 나열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
문이었다.


서정적 장르에서 비인과적 구성은 병치은유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병치하는 자질에 따라
<이질(異質) 병치>와 <유사(類似) 병치>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유사 병치>는 독자들이
스스로 열거한 이미지들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의미를 만들기 때문에 느슨한 상태의 인과적
구성이나 단속적 구성으로 바뀌고 만다. 다음 작품은 비인과적인 이질 병치를 택하고 있다.

 

보이는 것은
피아노 같은 절망
혹은 고래
혹은 혀를 내밀고
죽은 의자

내가 기르던 새는
내가 기르던 밤은
내가 기르던 꽃은
이제 하느님 나라
하느님 나라가 된다.
- 이승훈, [의식·2]

 

이 작품은 앞의 작품과 전혀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전체의 수사 구조를 살펴보면, 각 연
은 혼합 치환은유 형식을 택하고 있다. 그리고 두 개의 연이 병치되어 있다. 따라서, ①<T
(보이는 것)=V(피아노 같은 절망/고래/죽은 의자)와 ②<T(새/밤/꽃)=V(하느님 나라)>로 짜
여져 있다. 그리하여 앞 작품과 달리 좀처럼 그 의미가 형성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구성을 택하는 시인들은 이 세상은 필연적인 인과관계에 의하여 의하여 지배된다
기보다는 비인과적 우연에 의해 지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시
인이 아무리 인과관계를 맺으면서 논리적으로 이야기해도 독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자기가 제시한 이미지들을 재구성하여 받아들이도록 요구하는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 스스로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지 않을 경우에는 무의미한 이미지의 나열로 떨어
지고 만다는 게 이 유형의 약점이다.

 

 복수 시점과 액자식 플롯


시점(point of view)은 화자의 서술 위치와 태도를 나타내기 위한 장치를 말한다. 작품의 구조
와 조직은 서술자에 의하여 조정되기 때문에, 시점을 바꾸거나 흔란이 일어나면 작품 전체에
혼란이 일어난다. 그래서 대부분의 작품들은 단일한 서술자와 단일한 시점을 택하는 것이 보
통이다.


하지만 문학 작품이 진실을 추구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생각해 보면, 모든 사건을 동일한 위치
에서 동일한 태도로 서술하는 것이 최상의 방식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같은 사건도 보는 사
람의 심리적 거리와 위치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다 완벽한 리얼리티를 확
보하기 위해서는 그 사건에 가담한 또 다른 사람들의 시점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
이 <복수 시점>을 택하는 소설로는 헤밍웨이의 [살인자들],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
재의 가벼움] 등을 꼽을 수 있다.


<액자식 구성> 역시 리얼리티를 확대하기 위한 수법으로서, <부차적 플롯(sub plot)>이 <주
된 플롯(main plot)>을 감싸고 있는 형태를 취하면서 두 개의 시점을 취한다. 부차적 플롯의
주인공은 <나>가 되고, 주플롯의 주인공은 <그>나 <나>가 될 수 있지만 <나>일 경우에는
자아가 분리되어 서술자와 피서술자로 나누어진다. 소설의 경우, 주플롯과 부차적 플롯의 주
인공이 바뀐 예로는 김동리(金東里)의 [등신불]을 들 수 있다. 그리고 두 플롯의 주인공이 같
은 경우는 자기 어린 시절을 그리는 작품들을 꼽을 수 있다. 따라서, 액자식 구성 역시 복수
시점의 한 유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1인칭 장르에 해당하는 서정시에는 아직 복수 시점을 취하는 작품이 출현되지 않은
상태이다. 병렬식 구성을 가정할 수 있으나, 그것은 화자(서술자)를 달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
술자의 의식의 흐름을 몽타주한 것으로서, 인과관계를 차단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액자식의 경우는 주 플롯의 시적 인물이 <그>로 바뀌기보다는 여전히 <나>이되 <과
거 또는 미래의 자아>와 <현재의 자아>로 분리되므로 이 역시 완전한 복수시점이라고는 보
기 어렵다.
다음 작품은 액자식 플롯을 취하고 있다.


나는 쓴다. 독일에서의 사랑.
그래 이것이 제목이다. 얼마나 쓰고 싶던 글인가,
독일에서의 사랑. 그리고 이렇게 쓴다,
독일의 가로수는 사철나무다
겨울에도 낙엽 질 줄 모르는 독일의 가로수는 사철나무다
독일의 연인들은 걸을 때 사철나무 아래를 걷고
독일의 연인들이 미소지을 때 그 입술이 푸르게 물든다.
계속해서 나는 쓴다.
밋쉘이 금발의 마르가레테를 만나러 갈 때
밋쉘은 파랗게 젖어 사철나무 아래를 걷는다.
금발의 마르가레테는 파랗게 빛나는 밋쉘에게
당신 사철나무 사람 같아요, 한다.
……<중 략>……
그리고 이렇게도 쓰자. 그때,
독일의 연인들은 사철나무 그늘 아래 있고
푸른 별 아래 속삭인다고.
<오늘 뜬 별이 푸르군>
<그래요, 오늘 뜬 별이 바다 속 청어같이 푸르러요>
그들은 자신의 그림자를 달에게 벗어 주고
얼른 지상의 별이 되어 불타오른다.
- 장정일, [독일에서의 사랑]에서

 

이 작품은 매우 특수한 예로서, 액자식 플롯으로 짜여진 <메타 포엠(meta-poem)>이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이 작품을 쓰는 과정을 직접 설명하는 부분이 부차적 플롯에 해당되며, 또
한 부차적 플롯을 통하여 독자에게 직접 창작의 동기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액자식 구성을 택하면 독자들은 부차적 플롯의 화자가 허구적 인물인 경우에도 <시인
=화자>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시적 리얼리티가 증대된다. 반면에 시인과 시적 인물을 혼동하
기 쉽고, 구성의 긴밀도가 떨어지기 쉽다는 게 약점이다.


4. 구성의 단계와 전개 방식


연시와 비연시


시의 형태는 <비연시(非聯詩)>와 <연시(聯詩)>로 나눌 수 있다. 그리고 연시는 2연에서부터
수십 개의 연으로 짜여진 경우가 있다. 하지만 비연시나 연시는 모두 형식적 단락만 그렇게
나누었을 뿐, 의미상으로는 대개 4-5개의 단락으로 나눠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 가운데 가장 우세한 유형은 <4단 구성>으로서, 흔히 발견되는 <3단 구성>이나 <5단 구
성>도 이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4단 구성>이 기본형이라는 것은 전세계의 민
요를 대상으로 삼은 에드먼슨(M. S. Edmonson)의 연구에서도 밝혀졌거니와, 전통적인 시학
에서 시의 전개 방식을 <기승전결(起承轉結)>로 논의해 온 점으로 미루어서도 짐작할 수 있
다.

 

그렇다면 4단 구성은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기에 이와 같이 각 장르에서 고루 채택되는 것일까.
이 문제를 서정적 장르를 중심으로 생각할 때, 비연시가 있으므로 <1단 구성>부터 논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유형은 논의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인간은 어떤 것을 정확히 인식하
려 할 때 몇 도막으로 분절해서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고, 그로 인해 시인이 비연시로 구성해
도 독자들은 독서 과정에서 몇 단락으로 나누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2단 구성>을 취하는 예로는 먼저 풍경을 제시하고 뒤에 자기 뜻을 펴는 '선경후정(先景後
情)'의 한시론(漢詩論)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는 4단 구성을 다시 2단으로 통합하여 받아들
인 것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전단(前段)과 후단(後段)을 대등하게 설정하면 <1 : 1
>로 대립하여 두 단락이 경쟁을 벌이기 때문에 초점을 형성하지 못하고, 그로 인해 시상의
유연한 변주(變奏)가 어려워진다. 그리고 이런 단점을 피하기 위해 어느 한 쪽을 약화시키면
앞에서 살펴본 이성부(李盛夫)의 [깨끗한 나라]처럼 강한 쪽으로 흡수되어 2단 구성의 성격을
잃고 비연시처럼 바뀌어 독자들이 다시 나누어 받아들인다.


<3단 구성>은 2단 구성보다 좀 더 흔한 양식으로서, 4단 구성과 비슷한 세력을 차지하고 있
다. 그러나 이 역시 첫째 단락과 셋째 단락을 부차적 플롯으로 삼고 둘째 단락을 주플롯으로
삼는 액자식 구성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적합한 양식이라고 보기 어렵다. 각 단락이 동
등한 의미 비중을 지닐 경우에는 <서론>·<본론>·<결론>의 논리적 성격이 강화되며, 이를
피하기 위해 어느 단락을 약화시키면 다른 단락에 흡수되어 2단 구성과 같은 성격으로 바뀌
고, 초점이 형성되지 않아 다시 나누어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5단 구성> 역시 4단 구성과 비슷한 세력을 지니고 있다. 오히려 긴장과 갈등을 극화시키는
소설이나 희곡에서는 더 자주 채택되는 양식에 속한다. 그것은 이 양식이 4단 구성의 변형으
로서, 의미상 전환점(turning point)에 해당하는 <전(轉)>을 전체의 3/4 위치에서 3/5와 4/5의
중간으로 옮겨 극적 긴장의 시간을 확장하기 위한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 이외에도 <6단 구성> 이상을 취하는 작품들이 있다. 특히 장편 연작시의 경우에는 수백
개의 연으로도 구성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구성은 그리 바람직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
다. 구성이란 원래 전체를 몇 개의 덩어리로 나누어 조직하는 것으로서, 각 단락을 동등한 비
중을 주면서 6단 이상으로 조직하면 병렬로 인식되고, 어느 부분을 강화 또는 약화시키면 다
른 단락과 합쳐져 5단 이하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4단 구성의 속성


시에서 <기(起)>나 소설의 <발단(發端)>은 문자 그대로 담화가 시작되는 곳을 의미한다. 그
리고 <승(承)>은 첫머리에서 시작한 담화를 이어받아 보다 구체화하고, <전(轉)>에서는 담화
의 방향을 바꾸고, <결(結)>에서는 그 이야기를 끝맺는다.

 

그러나 좀 더 생각해 보면 4단 구성은 단지 내용을 전개하는 방식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동양의 고전 시학에서 자주 논의되어 온 수미상관법(首尾相關法)은 <기>에서 이야기(A)를 시
작하여 <승>에서 이어받고(A'), <전>에서 다른 방향으로 바꾸며(B), <결>에서 <기>와 유사
하거나 동일한 이야기(A″)를 다시 제시하여 끝을 맺는 방식을 말한다. 따라서 4단 구성이란
<A→A→B→A>로 전개되는 구조로서, 주제를 변용·강화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장르가 이와 같은 <A→A→B→A> 양식을 취하는 이유는 예술 작품을 담화라는 입장에
서 생각해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먼저 말하
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는 대체로 주제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따라서 허구적 인
물을 내세우는 문학적 장르에서 <기>는 그 인물에 대한 정보를 비롯하여 화자의 의도를 밝
히는 곳으로서, 그 작품의 주제가 제시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화자 입장에서 보면, <기>에서 간단하게 언급한 담화 의도를 청자가 유의해서 받아들
일는지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기>의 내용이 자기 담화의 주제임을 강조하기 위
해 <승>에서 다시 한 번 반복해서 제시하게 된다. 다시 말해, <기>에서 제시한 내용(A)을 <
승>에서 보다 구체화하여 <A→A'>로 되풀이하는 양식으을 취한다.

 

하지만, 이미 되풀이한 이야기를 <전>에서 다시 반복하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같은 이야기
를 계속 되풀이하면 청자가 지루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갈등이 약화된다. 그러므로 그
다음 단계에서는 새로운 요소인 <B>를 제시하여 <A→A'→B>로 이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인 <결>에서는 다시  <A>를 제시하여 <A→A→B→A>로 끝맺는다. 새
로운 의미인 <C>를 제시하면 주제를 강화하기 위해 형성한 질서가 파괴되고, <A-A-B>의
단계에서 끝을 맺으면 <A>와 <B>는 <2 : 1>로서 주제에 해당하는 <A>가 우세하지만, 뒤
에 진술한 것이 먼저 진술한 것보다 강력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A>와 <B>가 대등해져
화자의 의도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4단 구성은 단지 의미를 네 도막으로 나누어 배
치하는 문제가 아니라 주제를 변용하고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문학적 담화에서 이런 구조는 주제를 변용하기 위해서만 채택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
려 인물의 성격과 갈등을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문학적 담화와 과학적
담화의 차이가 인물을 내세우고 갈등의 구조를 취하는 것이라고 할 때, 문학적 담화에서 인물
은 <누구(person)>가 아니라 <성격(character)>이라는 개념을 지닌다. 그리고 그 성격은 <욕
망(desire)>과 <정서(emotion)>의 복합체로서 일정한 지향성(志向性)을 지닌다.

 

이와 같은 성격은 갈등(conflict)을 겪을 때 대응하는 양식에 의하여 구체화되며, 그 갈등은 욕
망의 실현을 방해받을 때 발생한다. 하지만 갈등은 단 한번의 방해로 고조되지 않는다. 인간
은 누구나 충돌을 피하고 싶어하고, 피할 수 있다면 피한다. 그러므로 갈등의 고조는 반복적
인 방해를 거쳐 도저히 피할 수 없을 때 나타난다.

 

그런데 반동적 인물 역시 그 나름대로 의지와 욕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주동적 인물이 자기 의도를 실현하려는 것은 위협에 해당한다. 그래서, 첫 단계에서는
주동적 인물이 욕망을 실현하려는 것을 부분적으로 방해하고, 그에 저항할수록 적극적으로 방
해하면서 대결을 벌이며, 마침내 어느 한 쪽이 패배하는 것으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다시
말해, 4단 구성은 갈등을 패턴화(pat-ternize)하여 인물의 성격을 강화시키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보면, <기>는 주동적 인물의 욕망이 제시되고 반동적 인물이 암시적으로
나타나는 단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승>은 주동의 욕망이 보다 구체화되고 반동적인
세력이 등장하여 갈등이 시작되는 단락이며, <전>은 주동과 반동이 극적인 대결을 벌이고, <
결>은 어느 한 쪽의 패배로 끝나는 단락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동을 <S>, 반동을 <A
>라고 하고, 세력 차이를 대문자와 소문자로 표시할 경우, '행복한 결말(happy ending)'은 <S
→S a→s A→S>, '불행한 결말(unhappy ending)'은 <S→S a→s A→A>로 끝나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행복한 결말로 맺고 싶으면, 각 단락에서 반동적 인물의 세력을 자주
언급하여 주동이 패배할 것 같은 인상을 주고, 불행한 결말로 맺고 싶으면 주동적 인물의 성
공할 가능성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독자가 그 담화의 결말을 예측할 수 있을 경
우, 담화의 긴장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구성 방식은 모티프의 배열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작품의 모든 국면에 적용된다.

출처 : 뇌졸중의재발방지
글쓴이 : 행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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