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와 예수가 서로 유사성을 공유한다는 것은 윤청광(尹靑光)의 '불경과 성경 왜 이렇게 같을까 / 서울출판미디어"이라는 서적과 민희식교수의 "법화경과 신약성서(새롭게쓴) / 가이아씨앤디",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 라는 독일신학자 홀거 케르스텐의 서적에서 가끔씩 언급된적이 있다.
실지로 부처와 예수는 상당히 유사성을 띄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조로아스터교와 인도의 종교가 혼잡하게 뒤섞여 있던 당시의 시점을 감안하면 상당히 수긍이 간다.
사살상 미트라 숭배도 인도와 이란에서 발생되어 동서양으로 뻗어나간 것이다.
또한 도마복음서에서 보여지는 불교적인 색채는 사실은 영지주의적인 것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11장 15절에서 보여지듯이 예수가 세례요한을 기르켜 엘리야라고 말하는 대목은 부활이라기 보다는 불교의 환생설로써만 해석이 가능하다.
이것은 미트라가 인도와 중근동의 신화를 가져왔고, 후에 등장한 초대기독교가 미트라를 표절했다는 것으로서 해석될 수가 있다.
불경 가운데 [현우경]의 [바파리품]에는 석가모니가 아니라 미륵의 탄생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가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미륵(彌勒)이란 산스크리트어의 마이트레야(Maitreya)라는 말을 소리글로 옮긴 것인데 불교에서는 이 미륵부처님을 미래불(未來佛-앞으로 나타나실 부처님)로 모시고 있다.
미륵의 산스크리스어의 원어인 마이트레야라는 단어는 '계약','약속'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미트라가 '계약','약속'을 의미한다는 점은 위에서 언급한적이 있다.
또한 불교의 미륵사상은 종말론적인 사상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는 '미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를 내린다.
"특히 말세사상과의 연관은 정치사회적으로 소외된 민중들에게 부각되어 사회 모순을 해결
짓는 구세주로서의 미륵을 갈구하는 사회개혁 이념으로서의 역할도 하였다."
또한 부처의 제자중에서는 배화교(拜火敎)를 믿다가 부처의 제자가 된자도 있었다고 한다.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이 이미 인도에까지 미쳤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
이미 수많은 고고학자들은 미륵이라는 이 단어가 미트라의 변형이라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부처와 예수의 유사성을 검토해 보기를 바란다.
첫째, 불경의 본생경[本生經]의 멀지 않은 인연 이야기에서는 석가모니의 어머니 마야부인은 흰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태몽을 꾸고 석가모니를 잉태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천사의 계시를 받고 그 남편될 요셉의 꿈에는 주의 사자(使者)가 나타나 예수의 잉태를 현몽을 통해 알려준다.
마야부인이 꿈을 꾸고 잉태하는 것이나 마리아와 요셉이 계시를 받고 현몽을 통해 잉태하는 것이나 탄생 이야기의 첫대목은 똑같이 태몽으로 시작된다.
둘째, 마야부인이 여덟 가지 계행을 지키느라고 그의 남편과 동침하지 않은 채 석가모니를 잉태했다고 불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마리아 또한 요셉과 약혼만 하고 동거하지 않은 채 성령으로 예수를 잉태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셋째,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아시타 선인(仙人)이 왕궁에 나타났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가 탄생했을때도 동방박사가 마굿간에 나타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시타 선인이 왕궁에 서린 서광(瑞光)을 보고 찾아왔듯이 동방박사는 별의 인도를 받아 찾아왔다.
불경의 [과거 현재 인과경]에는 슛도오다나왕은 나이 마흔이 되도록 한 명의 왕자도 얻지 못하여 늘 근심에 차 있다가 마야부인이 코끼리 꿈을 꾸고 잉태하여 과연 태자를 낳게 되자 성 안은 온통 기쁨에 들뜨게 되었다.
왕은 먼저 나라 안에서 이름 높은 예언자 아시타 선인(仙人)을 불러 태자의 상(相)을 보이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이시타 선인이 스스로 먼저 알고 찾아왔다고한다.
넷째, 갓 태어난 석가모니를 보고 아시타 선인이 "장차 부처가 되리라"고 예언했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는데, 성경에서도 아기 예수를 본 예언자 시메옹이 "주의 구원을 보았다"고 예언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다섯째, 불경 가운데 [현우경 바파리품<賢愚經 波婆離品]에는 미륵의 탄생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 나라 왕이 미륵의 탄생을 두려워하여 없애고자 하였으나 도피하여 생명을 구하는 대목이 있다.
비슷한 서술방법은 예수의 탄생시기에 자행되었다는 헤롯대왕의 유아학살등이 있다.
이 밖에도 누가복음 2장 36절에는 아기 예수를 보고 노부인이 예수를 찬탄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데, 불경의 [불소행찬/佛所行讚]에도 노부인이 어린 석가모니를 보고 찬탄하는 대목이 똑같이 실려있다.
그럼 이제부터 불경에 기록된 석가모니의 탄생과 바이블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을 대목 대목 자세히 비교해 보자.
30세 즈음에 (29세), 즉 성서의 그리스도와 비슷한 나이에 붓다는 그의 영적 활동을 시작한다.
단식을 하며 고행을 하는동안, 예수가 40일 동안 행했던 <낮과 밤> 금식 이후에 악마로 부터 유혹을 받은 것처럼, 그도 악마로 부터 유혹을 받는다.
이러한 원형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불경의 [과거 현재 인과경]에서는 석가모니는 나이 열 살 되던 해 봄 강가아 강가에 나가 모리에 물을 뿌리는 의식을 통한 태자 책봉식을 거행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때 하늘에서 '좋도다! 좋도다!'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하늘로부터 청작(靑雀) 5백 마리가 날아 내려왔다고 한다.
예수는 갈릴리 요단강에서 요한에 의해 물로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하늘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오고 성령이 비둘기 형태가 되어 내려왔다고 한다.
불경의 태자 책봉식과 성경의 세례식 장면은 때와 장소만 달리 하고 있을 뿐 너무나도 비슷하게 묘사되고 있다.
세례요한 역시 비슷한 모티브가 불경에서도 발견된다.
[과거 현재 인과경]에서는 석가모니가 세상에서 부처님으로 인정받기 이전에는 마가다국에는 '카아샤파'라는 이름의 선인(仙人) 삼형제가 살고 있었다.
본명을 '우루빌바아 카아샤파'라고 하는 이 선인은 오랫동안 선도(仙道)를 닦아 마가다국왕과 백성들의 전경과 신망을 받으며 매우 총명하고 덕행이 높았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부처님으로 인정받기 이전에는 카아샤파 선인 삼형제가 제자 천 명을 거느릴 정도로 선인으로서 백성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으며 요한 또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기 전까지 선지자로서 심지어는 사람들이 <요한을 그리스로신가 심중에 의논>할 정도로 무리들의 추앙을 받고 있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서 인정받기 이전에 요한이 요단간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무리들이 세례를 받고자 모여들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카아샤파는 석가모니를 보고 "바로 이 분이 부처님"이라고 사람들에게 증명하고, 요한 또한 예수를 가리켜 "그는 성령으로써 너희에게 세례를 주시리라"고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해 주는 똑같은 역할을 맡고 있다.
불경이 석가모니가 부처임을 증명해주고 강조해주기 위해 카아샤파라는 선인을 등장시켰듯이 성경 또한 예수의 존재를 증명해 주고 강조해 주기 위해 요한을 등장시키고 있다.
더 큰 성인이 나타나기 전에 먼저 온 선지자가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있다.
드디어 성인이 나타나시자 선지자는 머리를 조아리며 바로 이 분이 성인이라고 만인에게 선언한다.
미리 준비된 선지자, 그리고 그 후에 나타나는 성인, 많은 사람 앞에서 행해지는 선언. 장소와 이름만 다를 뿐 전개되는 이야기의 구성은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다.
석가모니는 정각(正覺)을 이루어 부처님이 된 뒤에 다섯 비구와 카아샤파 등의 제도한 후 제자들을 이끌고 고향인 카필라성으로 돌아갔다고 불경은 기록하고 있다.
예수 또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후 자라난 곳 나사렛이라는 옛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불경과 성경에서 똑같이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두 성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본생경]에는 석가모니가 부처님이 되어 고향에 들어가자 석가족들은 석가모니를 부처님으로 얼른 인정하려들지 않은 채 "저 싯달타 태자는 나보다 나이가 어리다, 조카벌이다, 손자벌이다, 동생벌이다"하면서 경배하려 하지 않았다고 불경에 묘사되어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예수가 고향에 돌아가자 고향 사람들이 예수를 구세주로 인정하려 하지 않고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수없이 따지자 예수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하고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석가모니도 예수도 똑같이 성인이 된 후에 고향으로 돌아갔고, 똑같이 고향 사람들에게 괄시를 받은 점에서 그 발상과 전개가 똑같다 할 것이다.
여기서 다른 점이 있다면 석가모니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친족들의 인정을 받고 경배 받지만, 예수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는 자가 없느니라"고 탄식하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 능력을 행치아니했다고 한다.
붓다의 첫 추종자는 두형제로, 예수의 첫 추종자들과 비슷하다.
붓다의 첫번째 동료들은 붓다의 부름을 받았을때 무화과 나무(불교의 상징) 밑에 앉아 있었으며, 요한복음 1장에서 예수는 첫번째 제자들중의 한명을 무화가 나무 밑에서 만났다.
붓다와 성서의 그리스도 둘 다, 남보다 총애하는 제자를 각각 한명씩 두었으며 역시 제자중에는 배반자도 있었다.
붓다의 배반자는 데바닷따로, 부처님께 바쳐진 10만금의 값어치를 가진 옷감으로 자기 맘대로 옷을 해입는등의 행위를 하고, 세 차례나 부처를 살해려고 음모를 꾸몄지만 비참한 최후를 맞게된다.
예수가 토라에서 율법책의 정통을 믿는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는것처럼 붓다는 지나치게 형식적인 제의식에 치중하는 베다의 정통성을 믿는 브라흐만들을 비난한다.
또, 붓다는 예수처럼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 일컬었고, 사람들은 그를 '예언자','완성자','여래'라 불렀다.
그리고 부처에게서도 이상스럽게도 3신(三身)사상이 나타난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는 부처의 불신(佛身)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불신관(觀)에 의하여 이신설(二身說) ·삼신설(三身說) 또는 십신설(十身說) 등의 불신론이 전개되었으나 이 가운데서 삼신설이 통례로 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부처의 몸은 세 가지로 설명되는데, 그것이 바로 법신 ·보신(報身:應身) ·화신(化身)이다. 법신은 빛깔도 형상도 없는 우주만유의 이법(理法), 즉 불타의 본체신(本體身)을 의미하고, 보신은 중생으로 하여금 우상으로서 직접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게 하는 몸이며, 화신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갖가지 모습으로 나타나는 몸을 말한다.
화신과 보신은 법신에 근원하여 나타나는데, 특히 화신은 보신의 묘용(妙用)에 의하여 나타나는 몸이다. 이러한 삼신론은 대승 경전 가운데 《금광명경(金光明經)》 《입능가경(入楞伽經)》의 2경과 《섭대승론(攝大乘論)》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의 논서에서 특히 발전된 이론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3신사상은 이미 사라진 중근동의 수많은 종교에서도 나타나는 공통적인 사상이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이런 삼신사상의 근원은 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우주의 본체를 규정지은 사상이 아닐까 한다.(우리나라에도 중국의 음양론에서 발전한 삼태극(三太極)사상이 있다.)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힘을 3가지로 분류한 것을, 신(神)의 삼신론으로 발전한 것이 아닐까 필자는 생각해 본다.
그러나 예수와 부처가 어떻게 죽었는가는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드러낸다.
부처는 마치 불꽃이 스러지듯 고요히 열반(涅槃)에 들었지만,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혀 고통에 몸부림쳐야 했던것만은 확실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인도의 경전에는 신약성서와 비슷한 '과부의 두 푼'일화가 있다.
부자들은 절에 막대한 재물들을 사주하지만, 가난한 과부는 가진것이라곤 두 푼밖에 없었고,그녀는 그것을 기꺼이 시주했다.
승려는 그녀의 고귀한 행동을 보고 다른 사람들의 시주는 아랑곳하지 않은채 그녀를 칭찬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마가복음 12장 41~44절에 나오는 '과부의 헌금'이야기와 너무도 유사하다.
게다가 부처의 일대기가 이미 서양에 펴져있었고, 기독교에 수용되기도 한적이 있었다.
[티벳 死者의 書]를 보면 로마카톨릭이 부처를 기독교 성인의 반열에 끼워넣기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로마 카톨릭이 붓다를 중세 시대의 성 여호사밧의 성격으로 성인의 반열에 올린 것은 동양적인 것이 어떻게 서양적인 것으로 변화해 갔는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보기다. 중세기독교에 미친 불교의 영향을 잘 말해 주는 이 유명한 사례는 카톨릭 성자인 발라암과 여호사밧(라틴명은 요아삽 또는 요사팟)의 이야기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한 왕자가 어떤 인도 왕국의 승계자로 태어났다. 왕자가 탄생하자 나라안의 예언자들이 왕위 계승자로서의 그의 위대한 미래를 예언했다. 그런데 문득 한 현자가 나타나서, 그왕자는 위대해지긴 하지만 통치자로서가 아니라 기독교개종자로서 위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왕자를 보호하고, 또 왕자가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을 막기위해 그의 부친은 그를 왕궁안에 가뒀다. 어느날 잠시 왕궁밖을 나갔다가 왕자는 절름발이와 장님을 목격하고는 인생의 어두운면을 알았다. 그런데 그 나라에는 발라암이라는 이름의 수도자가 있었다. 어느날 이 수도자가 변장을 한 채 왕자 여호사밧을 찾아와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켰다. 부친은 귀신쫓는 마술이나 미녀들을 이용해 왕자를 세속의 삶으로 되돌아오게 하려고 애썼지만 헛수고 였다. 성장한 여호사밧은 왕궁을 떠나 수도자 발라암과 함께 광야에서 수행을 했으며,마침내 성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 여호사밧의 이야기가 고타마 붓다의 생애를 각색한 것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일이다. 이 이야기를 지은 사람은 붓다의 탄생,유년지, 그리고 출가에 맞춰 이야기의 뼈대를 맞추었다. 또 네장면의 목격,여러가지 유혹들, 광야에서의 고행 기간 등 모두가 붓다의 이야기의 한토막이다. 또한 '여호사밧(Jehoshaphat)'이라는 이름 자체가 붓다에게 붙여졌던 보살(菩薩)이라는 뜻의 '보디사트마Bodhisattva'가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은 이미 오래전에 종교학자 쿤E.Khun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파드마삼바바/ 티벳 死者의 書 / 류시화 편역 / 정신세계사 /p.52]
불교의 사상이 힌두교의 카트스 제도와 껄끄러운 관계를 맺긴 했지만, 힌두교에서 부처를 자신들의 종교로 끌여들여 부처를 힌두신의 환생중 하나로 받아들이고, 이슬람에서 기독교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자신들의 종교로 수용한것과 같이, 중세 카톨릭도 부처를 자신들의 종교에 끌어들이려 했던것이다.
부처와 예수의 유사성을 대략 열거해 보았다.
상당히 비슷하다고 놀랄필요는 없다.
이것은 어디가지나 조로아스터교와 인도의 종교가 혼잡하게 뒤섞여 있던 고대 중근동의 영향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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