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네장터 순국 영령께 고함
아우네 장터 순국 영령께 고함. / 麗尾박인태
먼저 부끄러워 머리 숙여 용서를 빕니다.
기미년 양력 4월 1일 병천 장날
항거의 장터에 무명(無名)이도 옆에 있었습니다.
장터 후미진 곳에 바쳐놓은
지게에 실린 쌀 한 말, 암탉 한 마리,
고무신 두 켤레를 걱정하면서.
덩달아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외쳤지요.
아우네의 함성에 조국이 해방되고 내일이라도
일본 놈이 줄행랑을 칠 것 같았습니다.
처음엔 일본 순사 놈들의 허둥대며
당황하는 모습에 통쾌하기도 했답니다.
어느 순간 일본 놈들이 장터를 에워싸자
여기저기서 요란한 총소리와 화약 냄새
앞에 선 이웃들이 하나 둘 쓰러졌습니다.
죽음의 신음과 울부짖음에 천지에 요란할 때
누군가 외쳤습니다.
“일본 놈들 물러가라.”
“대한 독립 만세”
총칼에 희생당한 스무 명 남짓과 부상으로
쓰러진 많은 사람들의 피가 철철 흘러
장터는 도살장의 핏물 도랑 같았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밀려와서
살겠다고 장터 뒤 상봉산 나무숲에 숨었다가
기어서 은석산으로 또 도망 했습니다.
등 뒤에서 왜놈이 총을 쏘며 쫒아오려니
나 살자 정신없이 도망한 것입니다.
귓전에 울부짖는 당신들의 울분의 함성과
비릿한 사람 피 냄새가 묻어나는 만세 소리
왜놈들 물러가라는 피 끓는 외침을 뒤로했으나
심장은 터질 것 같고 귀가 먹먹하여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분간이 안 되었습니다.
산에 엎드려 병천 장터를 내려 다 보니
일본 순사 놈들이 하얀 무명 저고리에
검은색 치마를 입은 앳된 소녀와 많은 이웃을
오랏줄에 묶어 끌고 가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살아있다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울 수 없어
소리도 못 내고 땅을 치고 울었습니다.
한참을 울고 나니 장날에 만났던 삼뱅이 친구와
수신 아제와 병천 누님이 걱정되었고, 도망칠 때
장에 두고 온 아버님의 지게가 생각났습니다.
이 와중에 그런 걱정을 하는 오줌싸개 무명이가
너무 한심해서 해질녘까지 은석산을 헤매다
어슷해지자 도둑처럼 집에 숨어들었습니다.
기억 말자 애를 써도 떠오르는 그날의 항거(抗拒)
국밥 한 그릇에 막걸리 몇 잔이 마시고 싶어
장터에 갔었노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오래 병천 장날 이야기는 입에 담지 않았습니다.
아! 우리 님은
부모님을 그 자리에서 잃으시고
왜놈에게 모진 고문 중에도 옥중에서 만세 부르다
죽임을 당했다는 소문은 바람처럼 흘려들었지만
그 곳에 간 적이 없는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남의 이야기처럼 여기고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긴 세월 괴로운 밤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비겁하게 살아 온 삶을 반성했습니다.
여린 당신은 식민의 총칼을 어떻게 막으셨나요.
구국의 화신이 되신 임들의 영전에
엎드려 감사하며 부끄러운 눈물로 참회합니다.
구국의 꽃이여!
그 날 산화하신 애국의 혼령들이시여
임들은 나라와 민족의 수호신이오니
하늘 고은 자리에서 영면하시며
무명(無名)에게 지혜를 주시고
나라사랑 일꾼으로 이름을 갖게 하소서.
-기미년 3월 1일 아우네장터 만세 기념-
2015.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