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대표민요 "아리랑의 유래" 주장 모음
□ 아리랑의 유래
아리랑의 유래는 고대로부터 구전에 의해 전래되어 우리 민족이 고난을 극복하는 민요로서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지고 변형되어 불려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얼이랑 얼이랑 어라리요
얼이랑 고개를 넘어간다
울이랑 울이랑 우라리요
울이랑 고개를 넘어간다.
○ 해석
아리랑은 순수한 우리말이다. 순수한 우리말을 해석한다는 것이 참으로 우수운 일이지만 사람들이 그만큼 세상을 바쁘게 살고 우리 것에 대한 관찰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것이니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백성 하나 하나가 함께 하나가 되어
한 마음 한 뜻으로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
백성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생활권을 벗어나지도 못하고 고난이나 죽음이 온다.
조상의 얼과 함께 하나가 되어
조상의 얼로써 민족의 저력을 발휘하여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
전국 방방곡곡의 백성이 함께 하나가 되어
모든 지방의 힘을 모아서 고난을 극복해야 한다.
아리랑(알+이랑): 알은 새알(조류의 알) 난생설화의 알/조류가 알을 낳고 그 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데 무한한 생명과 가능성을 간직한 민초 즉 백성 하나 하나를 의미한다.
이랑: 너랑 너랑, 순이랑,돌이랑 등등의 이랑 즉 함께라는 의미이다.
아라리(알+아리): 아리는 항아리, 동아리,또아리 등의 아리 즉 하나가 됨을 의미한다. 하나로 뭉치다. 똘똘 뭉친 덩어리
고개: 백성/민초/민족이 극복하고져하는 대상을 의미한다.
십리: 옛날 시골에서는 주위 십리가 생활권이다. 십리밖은 생활권을 떠나는 것이고 백리 천리는 멀리 떠나는 것이다. 십리도 못 간다는 것은 결국 홀로 삶을 구하는 것이고 그래봐야 생활권을 벗어나기 전에 고난이나 죽음을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얼: 시간/역사, 조상대대로 내려온 민족의 마음,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좋은 것들(자산)을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고 또 후손들이 그것을 바탕으로 발전하고 번영해 가기를 바라는 마음
울: 공간/우리/울타리//가족/고향/소사회/중사회/대사회/지방/국가
인간교육의 기본은 역사와 도덕 그리고 국어입니다. 수학,과학,외국어,기타 등등은 그 다음의 항목입니다. 그러한데 현실은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역사와 도덕을 선택과목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 인간적인 교육보다는 잘 먹고 잘 사는 경쟁을 위한 과목들이 우선적인 과목으로 교육되고 있다.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 그러하다 하더라도, 역사와 도덕 국어는 최우선 과목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출처]아리랑의 유래와 의미|작성자곤륜선인
우리 한민족의 대표적인 민요 아리랑
아리랑의 유래는 정확한 학설이나 정설이없다고보는것이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여러 학자들은 아리랑에 담긴 뜻을 찾아서 여러방면으로 고증하고 연구하고 있슴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리랑에 담긴 뜻과 의미는 무엇일까요
아리랑의 아리는 ,고운,이라는 뜻의 옜말이고 랑은 님을 가르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리가 예전 국어에서 아름답다, 곱다,아름다운의 뜻으로 쓰인 흔적은 현대의 한국어에서 아리따운(아리+다운)
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뿐 아니고 몽골에서는 지금도 아리는 고운,곱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때 아리랑의 첫번째의 뜻은 고운님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쓰리랑은 마음이 쓰리다 즉 마음이 아리다와 유사어라고 할수있습니다 다시말을 하면 쓰리랑은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그리운 님이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아리랑의 랑은 삼국시대에는 한자어로 낭(郎)자를 써서 젊은 남녀를 모두 표현하였습니다. 통일신라이후 조선시대에는 남녀를 구별하여 남자는 주로 낭(郎)자를 여자는 낭(娘)자로 구분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발음은 모두 랑으로 발음되며 뜻은 모두가 님을 의미하는 사내와 아가씨를 가르킵니다 신라 향가(鄕歌)에 죽지랑(竹旨郞) 기파랑(耆婆郞)등이 좋은예입니다
아라리는 근 현대에 뜻을 몰라 잃어버린 말로 이는 상사병의 고대 우리말로 판단됩니다. 근대 한국어에는 상사병을 나타내는 말로 가슴아리(가슴앓이)
에서 어렴풋이나마 그 흔적을 엿볼수 있습니다
스리다를 강조할 때 쓰라리다 라는 강조어를 넣는 것 처럼 가슴아리에 강조사를 가슴아라리가 된 것으로 보이며 가슴아리ㅡ 가슴아라리ㅡ 아라리와 같은 뜻입니다.
아리랑 쓰리랑 아라리요 마음이 아리고 쓰리도록 고운님을 노래한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 아리랑의 유래(다른주장)
슬픔과 기쁨을 같이하며 역사(歷史)의 질곡(桎梏)을 지켜보고, 우리들의 마음속에서 호흡하고 있는 아리랑. 한민족의 모습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아리랑은 약 30여종 1,500수가 넘는다. 그 중에서도 정선 아라리, 순창 아리랑, 안주 아리랑 등은 우리의 가슴 깊숙이 다가오는, 한(恨)이 맺힌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한(恨)은, 한(恨)이라고 해서 가슴속에 시퍼런 서슬을 가진 한(恨)이 아니다. 풀려고 해도 금방 끝을 맺지 못하는 여운(餘韻)으로 남는 그런 한(恨)이다. 정선 아라리(정선에서는 아리랑을 아라리라 일컬음)의 기원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시대 배경에 얽힌 거칠현(居七賢)의 시원(始原)이 유력하다. 정선 지게춤 물박 장단놀이 정선아리랑이 이 고장에서 처음 불리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백여년 전인 조선초기라 전한다.
당시 고려왕조를 섬기고 벼슬하던 선비들 중에 불사이군(不事二君)으로 충성(忠誠)을 다짐하며 송도(松都)에서 은신(隱身)하던 충신(忠臣)들이 정선(지금의 거칠현동)으로 은거지를 옮겼다. 일생동안 산나물을 뜯어먹고 살면서 임금님을 사모(思慕)하고 충절을 지키며 지난날의 회상(回想)과 가족 그리고 고향의 그리움에 고난을 겪어야 하는 심정을 읊은 것이 정선아리랑의 시원(始原)이다. 그때의 선비들이 이러한 비통한 심정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으로 부르던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漢詩)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감정을 살려 부른 것이 오늘에 전하여 지고있는 아리라의 가락이다. 그 후 사화(士禍)로 낙향한 선비들과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애창(愛唱)하였다. 전란(戰亂)과 평온(平溫)치 못한 시절에는 고달픈 민성(民聲)을 푸념하며 내려오다가, 아리랑 아리랑 하는 음율을 부쳐 부르게 된 것은 조선후기라 한다. 한일 합방 후부터 일제강점(日帝强占)기 말엽까지에는 나라 없는 민족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실어 스스로를 달래 왔었다. 일제를 거치는 동안 사상(思想)이 담긴 노래는 강압(强壓)됨에 따라 애정(愛情)과 남녀관계의 정한(情恨)을 소재로 한 새로운 노래가 많이 불이어 왔으며 예로부터 전하여지는 노래와 함께 오늘날 우리나라의 독특한 가락을 지닌 민요(民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정선아리랑이 이러한 유래(由來)에 의해 생겨났다고는 하지만 결코 어느 특정인의 점유물(占有物)은 아니었다. 그렇게 하여 생겨난 정선 아리랑은 곧 민중(民衆)들 사이에 퍼지게 되었고 차츰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 지금껏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맥(太白山脈) 서쪽의 산중(山中)에서 어느 곳의 노래와도 바꿀 수 없는 정선사람들 자신의 독특한 삶을 대변(代辯)한다. 그것은 정선의 삶이며 역사인 것이다.
정선아리랑 기능보유자인 김병하(57)씨는 정선아리랑이 이 지방 사람들의 삶 이였다는 것을 단적(端的)으로 얘기해 준다. 그가 어렸을 적 살았던 곳은 외진 곳 이였는데 그때 안팎으로 들렸던 소리가 정선아리랑 이였다고 한다. 이 지방 사람들은 누구나 다 생활하는 일부로서 정선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그만큼 정선아리랑은 이 지방 사람들의 생활상을 드러내고 있다.
정선아리랑 비문(碑文)
예도 옛적 고을 이름은 무릉도원이더라, 산이 높고 울울청청하여 머루랑 다래랑 먹고 살고 철따라 복사꽃, 진달래꽃, 철쭉꽃 강산을 불태웠다. 네휘도는 골짜기에 굽이치는 강물은 흥건한 젖줄기 되어 물방아 돌고 철철 콸콸 청렬하게 흘러 욕소하면 마음은 등선하고 아우라지 뱃사공에게 떠나가는 님을 근심하던 아낙네의 그윽한 정한이 그립던 터전이었노라.
자연따라 인심 또한 정결하고도 의연하매 우국충절의 기개도 산세처럼 峻烈(준열) 하던 고장이 여기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삶의 애환이 구성진 선율을 타고 넘나들고 나라사랑의 애정과 불의에 항거하던 의기가 그칠줄 모르게 이어지는 유장한 가락속에 스며 있는 정선아리랑은 우리 선조들의 얼과 멋이 승화된 빛난 이고장의 문화재이러니 아득한 옛날부터 토착민의 생활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표출되어 불려오던 이 토속적 풍류가락은 고려말엽에 이르러 不事二君(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켜 지금의 남면 거칠현동에 낙향 은거하였다는 선비들의 애틋한 戀君(연군)과 망향의 정한이 더하여져 더욱 다감한 노래가 되었으리라,
본래는「아라리」라고 일컫던 것이 세월이 흘러감에 어느새 보편적인「아리랑」으로 그 이름이 바뀌었으니 아리랑이란 누가 나의 처지와 심정을「알리」에서 연유된 듯하더라, 이에 무형문화재 정선아리랑은 정녕 우리들의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화유산의 전통속에서 내일을 살 아름답고 풍요한 꿈을 가꾸고 향토애와 민족혼을 불사를 슬기와 용기를 키울진저 이를 기려 자자 손손 만대에 전하고자 향토민의 뜻을 모아 여기 아로새겨 기념하노라.
아리랑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아래 내용이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신라 건국 이전 B.C 69년, 서라벌의 촌장들이 모여 장차 나라를 세울 것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알속에서 태어난 사내아이와 같은 날 알영정이라는 샘가에 나타난 용이 왼쪽 갈비뼈 밑으로 낳은 계집아이가 있어, 촌장들이 기뻐하며 양지바른 기슭에 궁실을 짓고 받들어 키웠다 합니다.이 두 아이가 13세 되는 해 사내아이를 왕으로 추대하고, 계집아이를 그의 왕비로 삼으니 그들이 바로 박혁거세와 알령 이었습니다. 온 백성들은 왕비인 알령의 수려한 용모와 영특함을 추앙하여 ‘알령’ ‘알령’을 외쳤고 이후 알령이 ‘아리랑’이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는 '아리다', '쓰리다'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경기도 , 경상도, 강원도 쪽 아리랑에는 전혀 어울리는 해석이 안된다.
내가 정답을 말해주마. 이건 진짜 천기누설이다.
아리랑과 쓰리랑은 의태어로 아리랑은 알딸딸하게 취하는 취기를 표현한 것이고 쓰리랑은 취했을 때 비척거리며 흔들리는 모양-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면 어느 지역 아리랑이든 딱 맞아 떨어진다.
이건 우리나라 건전한 음주문화와 맞아 떨어진다.
적당히 마시고 즐기는 문화가 아리랑 속에 스며들어 있다.
내가 장담하는데, 머잖아 국어교과서에 실릴 것이다.^^
□ 진도아리랑
역시 진도의 가치는 뭍에서 오신 분들이 더 알아주는군요. <진도아리랑>을 처음 만든 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거리지만,
가사에 있는 '문경새재 ==> 문전세재' 논란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상태인 것 같습니다. "문전세재(태어나는 첫 번째 고개,
인생살이 두 번째 고개, 북망산으로 가는 세 번째 고개)는 왠 고갠고" 악보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진도사람의 진도아리랑을 들어
보면,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 들어 있죠.
또 서양 가락보로는 표현할 수 없는 농두렁 밭두렁 같은 우리 가락들....그래서 더욱 문경새재는 문전세재여야 할 이유가 충분
하고요. "진도에서 한양 땅 가는 일이 인생을 걸 만큼 고되고 벅찬 일이었다"
"진도가 귀향지이기도 했고, 가사를 지을 만큼 학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양과 지방의 경계가 되는 문경새재에 대한 애환을
표현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진도아리랑을 흔한 신세한탄조의 노래로 치부해 버리는 것 같아요.
또 <진도아리랑>에 대해 구전되는 자료를 봐도 진도사람들은 '문전세재'로 불렀다는 걸 알 수 있죠.
하지만, 문전세재를 문경새재로 바꿔치기한 원인을 해석할 때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건 또 하나의 잘못이라고 봅니다.
군사정부가 의도적이거나 실수로 문전세재를 문경새재로 만들었다는 정서적 주장은 빛나는 학문적 성과마저도 퇴색시킬 수
있으니까요. 가사 표기의 오류 문제는 여러 가지 고증을 거쳐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겠죠. 여하튼 잊고 있었던
문제인데, 다시 생각할거리를 주셔서 고맙습니다.
(덧붙여, 귀성리 아리랑마을은 관광지는 될지언정 진도의 원형은 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전통'이라도 진도아리랑에
서양가락보를 붙이는 모습이라고 봅니다.
여귀산에 올라보면, 귀성과 월평이 형님 아우처럼 사이좋게 앉아 있는 모습인데요, 오봉산 자락을 깎아 전통마을을 만들게 되면
귀성리의 두 형제는 들러리가 될 것 같은 예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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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전~세재로 불러야 한다” 진도아리랑 가사 왜곡 지적 광주 정강중학교 김상유교사 논문에서 주장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첫 소리로 알려진 ‘문경세재는 왠 고갠고~’가 왜곡되었다는 사실이 제기되고 있어 진도군 및 문화예술단체, 국립국악원,
군민등이 사실조사에 착수해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첫소리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광주정강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김상유 교사는 ‘민요의 생성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에서 중학교 교과서와 인터넷등 진도
아리랑의 대표적인 노랫말로 알려진 ‘문경 세재는 왠 고갠고 구부야 구부야 눈물이 난다’는 소리는 왜곡됐다고 자신의 논문을
인용해 지적했다.
김교사는 진도아리랑은 순수한 서민들의 삶으로 희노애락의 노래인데 하필이면 수백여수의 가사중 특정지역의 이름이 게재된
‘문경새재(경상북도 문경새재)는~’라는 가사를 진도아리랑을 대표하는 첫마디로 교과서에 게재해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한
것은 특정목적에 의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각종 인터넷 자료검색에서도 진도아리랑의 대표적인 가사로 ‘문경새재~’가 입력되어 있다는 것. 김 교사는 현행 중학교
음악교과서에서 30년이상 지도되어 오고 있는 이 진도아리랑의 "문경 새재(경상북도 문경새재)는 왠 고갠고" 의 가사는
"문전 세재(인생살이 세 고개)는 왠 고갠고" 라는 본래의 가사에서 왜곡된채 지도되었다고 지적했다.
김교사는 ‘문경’이 아닌 ‘문전’이 본래 가사였다는 내용을 뒷받침할수 있는 몇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동부지방 사람들은 동부지역에 위치한 지역이름을 넣은 가사를 언어의 특성상 남도민요 가락에 얹어 부를 수가 없고, 남도
사람들은 남도민요 가락에 남도에서 500백리, 진도에서는 1,000리나 멀리 위치한 동부지역 고개이름의 가사를 붙여 노래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500여수가 되는 진도아리랑의 가사 중에서 "문경" 이라는 지역이름을 빼고는 어느 가사에도 지명 이름이 없으며 모두가
인생의 희노애락에 대한 내용 뿐이라고 ‘문경’이 왜곡된 가사임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직도 진도지역 60세에서 90세가량의 진도 아리랑 보존회원들은 "문경"이 아닌 "문전세재(태어나는 첫번째 고개, 인생살이
두번째 고개, 북망산으로 가는 세번째 고개)는 왠 고갠고" 라고 노래하고 있다는 것. 민요란 오랜세월을 거쳐 내려오는 노래임
에도 군사정권이 시작되기 이전(1961년) 어느곳에서도 "문경 새재는 왠고갠고" 라는 문헌의 자료가 없다. 특히 진도아리랑은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가사를 붙여 부를수 있는 민요이기 때문에 특정지명을 붙여 1회성 여흥으로 끝났다면 문제가 없으나
수백 수가 넘는 가사 중 그것도 1절에 나타내어 교과서까지 게재하여 지도하게 하는 것은 민요가 발생한 지역의 고유한 음악을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김교사는 “누군가에 의하여 고유하게 전래되는 민요가 왜곡되었다면 순수하게 발전해야 하는 예술을 훼손하는 것이며 이를
지역문화의 침탈 행위로도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음악인이나 이 지역에 살고있는 사람들이 좌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김교사는 17일 본지와 인터뷰에서 “진도아리랑은 서민들에 의해 불려져 한국에 가장 널리 알려진 민요라는 점을 이용해 누군
가가 의도적으로 문경이라는 지명을 넣은 것으로 판단이 된다”며“이제는 잘못된 가사를 즉각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진도가 고향인 김교사는 대학에서 서양음악을 전공한 후 현재 광주 정강중학교 음악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석사과정으로는
국악작곡을 마쳤다.
한편 최근 진도군이 군과 기관단체장간에 협의회자리에서 제작중인 관광홍보영상물을 시연, 참석자들 중 일부는 첫배경과 함께
진도아리랑 첫 가사가 왜 하필 ‘문경새재’가 나왔느냐며 개선을 요구하기도해 진도지역에서는 이미 '문경새재'가사에 대한
거부반응이 널리 퍼져 있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편집위원 =
해외여행 중에 거리에서 외국인을 만났다 치자. 그리고 그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치자."어느 나라 사람입니까?"당신은 경제대국 12위 국민으로서 자랑스럽게 대답할 것이다."한국사람입니다."외국인은 이어 묻는다."한국 민족을 대표하는 노래는 무엇입니까?"
당신은 역시 자신있게 대답할 것이다. 두 어깨를 으쓱거리기까지 하면서 말이다."아리랑이지요."그러자 호기심 많은 외국인은 또 이렇게 묻는다."'아리랑'이 무슨 뜻입니까?""……"갑자기 머쓱해지는 당신. 엉거주춤 얼렁뚱땅 둘러대며 위기를 잠시 모면할 수 있다. 그런데 상황은 점입가경이다."아리랑은 언제, 어디서, 왜 생겼나요?"이젠 얼굴이 굳어지며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질지 모른다. 별 까다로운 사람 다 봤다는듯이 속으로 투덜대면서. 그러다가 얼른 손목시계를 보는 척하더니 약속시간이 늦었다며 줄행랑치듯 자리를 뜰지 모른다.그날 밤, 당신은 숙소에서 상처받은 자부심을 치유코자 낮에 있었던 해프닝을 곰곰 되씹을지 모른다. 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이렇게 중얼거릴 수도 있다."그래, 우리 민족의 대표 노래라고 자부해왔지만 막상 아는 게 별로 없네. 건성이었어. 그러고 보니 진도아리랑에 난데없이 문경새재는 왜 나올까? 전라도 남쪽 섬에서 먼 경상도 문경새재가 말이야."뉴욕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아리랑 연주가 화제가 되고 있다. 뉴욕필은 26일 역사적인 평양 공연을 가진 데 이어 28일에는 서울에서 매혹적인 선율을 선보였다. '싱-송 외교' '화해의 선율'과 같은 용어를 총동원해 국내외 언론들이 그 의미를 높이 평가한 것은 충분히 이유가 있다.특히 우리 눈길은 끈 것은 아리랑 연주였다. 한반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미국의 대표 오케스트라가 남북의 수도를 오가며 피날레곡으로 공연한 음악이라 더욱 가슴 뭉클했다. 남북한의 애국가는 서로 달라도 아리랑은 이들을 하나로 묶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뉴욕필 지휘자 로린 마젤도 아리랑과 관객반응에 깊이 감명받은 듯하다. 평양 공연 후 "아리랑을 연주했을 때 그들도, 우리도 모두 마음이 움직였다는 걸 느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었다"고 한 그의 소회는 겉치레 수사만은 아닐 것이다. 뉴욕필의 아리랑 연주를 감상하는 객석 표정은 북의 동평양극장이나 남의 예술의전당이나 매한가지였다.이토록 소중한 아리랑이건만 우리가 얼마나 알고 사랑하는가는 또다른 이야기인 것 같다. 막상 이 노래를 잘 모를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이를 귀하게 전승하려는 현실적 노력을 제대로 기울이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아리랑의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의외로 낮다.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리랑의 본향이 강원도 정선이며 이곳 아리랑이 조선조 말 경복궁 중수를 계기로 전국에 퍼져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 등이 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경복궁 중수를 위해 문경의 박달나무가 베어져 사용됐고, 당시 공사를 위해 전국에서 인부가 동원됐음을 상기하면 진도아리랑에 왜 문경새재가 나오는지 의문이 쉽게 풀린다. 인부들의 귀향은 각지에서 여러 형태의 아리랑을 낳았던 것이다.아리랑이 민족의 노래로 승화된 데는 망국의 역사가 있었다. 나라를 떠난 해외동포들이 망국의 한을 달래고 공동체 회복을 꿈꾸며 눈물의 아리랑을 불렀고, 해방 후에는 민족의 노래로 탄탄히 자리잡았다. 남북공연이 되든, 국제경기가 되든 남북이 '단가'처럼 함께 부르는 노래는 늘 아리랑인 것은 이런 연원을 갖고 있다.정작 우리는 잘 모를지라도 외국에선 아리랑의 가치를 높이 평가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유네스코가 '아리랑상'을 제정해 시행 중이고, 세계 147개국 동포사회와 한국전쟁 참전 19개국에서 애창되는 한민족의 노래가 바로 아리랑이다. 2002년 독일에서 열린 한 음악인대회에서 아리랑이 '세계 100대 노래' 중 으뜸을 차지했다는 사실도 우리의 어깨를 펴준다.각종 남북행사는 물론 2011년 대구세계육상경기대회,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2014아시안게임 등에서도 아리랑은 불려질 것이다. 그러나 '아리랑의 세계화'라는 다소 막연한 구호만 있을 뿐 '아리랑문화센터'나 '아리랑박물관'처럼 이를 뒷받침할 공적 기구가 없는 건 안타깝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한국의 상징으로써 그 활용도가 무척 높음에도 이를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랄까.아리랑은 단순한 소통의 도구에 그치지 않는다. 아리랑 연구가 이정면(미국 유타대 명예교수) 박사가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우리 민족에게 어머니와 같다"라고 한 말은 깊이 새겨야 한다. 한민족은 그 품에서 아픔을 덜고, 상처를 치유하고, 위안을 얻고, 새 희망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뉴욕필의 아리랑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는가.id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