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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도방언의 특수어휘에 대한 고찰(펌)

麗尾박인태행정사 2014. 10. 28. 15:12
조도방언의 특수어휘에 대한고찰, 진도군, 하조도, 역사/문화, 인물, 기타인물, 참고:도서문화 제 2 집(조도) 조도방언의 특수어휘에 대한고찰 , 진도군, 하조도, 역사/문화, 인물, 기타인물, 참고:도서문화 제 2 집(조도)

조도방언의 특수어휘에 대한 고찰

김 웅 배*

Ⅰ. 서 론

Ⅱ. 본 론

1. 국어계통연구의 현황과 지명 및

방언연구의 필요성

2. 조도지명의 한 고찰

3. 조도방언의 특수어휘

Ⅲ. 결 론

Ⅰ. 서 론

본고는 1983. 7. 10일부터 일주일간 조도지방에 가서 채집한 1,500여 어휘 중에서 조도지방에서만 쓰이거나 국어사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어휘 몇 개를 선정하여 그 연원이나 변천에 대하여 논급하고자 한다.

조도는 목포에서 여객선으로 약 5시간이 소요되며 진도의 남쪽끝 팽목 기미에서도 약 1시간이 걸리는 진도 남서에 새떼처럼 펼쳐진 150여 유무인도로 이루어진 군도(群島)다. 100여개의 유인도 중에서 우리가 답사했던 곳은 하조도, 상조도, 관매도, 나배도 등 몇 개의 섬에 불과했지만 이런 몇 개의 섬들의 언어가 음운, 형태, 문법 면에서 개별적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여 하조도 창유리에서 숙박하면서 창유리의 이 백호씨(남, 82)와 박 전심씨(여, 71) 등으로부터 일차 조사를 끝내고 관매도와 나배도 등에 가서 김 호암씨(남, 71)최 낙간씨(남, 71), 조 충심씨(여, 62) 등의 제보로 확인·조사했다.

서남도서지방의 언어는 얼른 보기에는 서로 상충된 양면성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고어의 저층을 많이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음운면에서는 매우 발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면성의 이유와 조도방어의 서남해도서방언으로서의 위치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조도에 사람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불확실하나 서남해도서지방은 대체적으로 임란때 공도(空島)정책 등으로 인하여 섬주민들은 육지로 나가고 임란 이후 섬에 다시 들어온 사람들의 후손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섬들에는 선사시대의 유물, 유적이 많이 있으면서도 입도조(入島祖)가 15대를 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데 있다. 조도의 최초의 입도조는 상조도 명성리의 순창 설씨(薛氏)인 것으로 조사되었는데 확실한 연대는 추정하기 어려우나 17세기초로 보인다. 장산면의 경우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왕릉만큼 큰 고분이 있는데도 입도조는 15대를 넘지 않는다. 따라서 현주민들의 선조를 16세기 이전까지 소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또 서남해도서지방의 입도조가 어디에서 왔는지는 방언권 연구에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되는데 필자가 조사한 조도, 하의도, 장산도, 보기도, 노화도, 소안도 등의 입도조는 전부 해남에서 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섬언어가 바다라는 언어장벽이 있는데도 인접하고 있는 육지 언어와 대차가 없는 것은 교류의 빈번함에 있다기보다 입도의 역사가 오래지 않다는 것과 해남 등의 육지에서 입도했다는 것 등이 그 중심 요인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서남해도서지방의 언어는 입도 이후 그 동안의 육지와의 단절로 인해 고어의 저층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조도지방의 인칭접미사 ∼바나 ∼수 같은 것이 그 대표적 예이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이유에서인지는 불확실하나 간이화경향이나 강화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음운면에서는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보인다. 전라남도 서부도

서인 임자도 암태도 등에서는 자음의 어두강화현상이 적으나 남부인 하의, 장산, 조도, 보길도는 점점 심하게 나타나고 있고 간이화경향인 축약·탈락 등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주머니, 어머니가 주마이 어마이로 막대기(막대), 작대기가 막대이와 짝대이로 실현되고 있고, 어린아이가 얼라로 실현되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강화나 간이화현상이 서부도서방언(예 임자도)에서는 비교적 적게 나타나는데 완도 쪽으로 내려가면서 점점 강하여진다. 그래서 진도와 조도의 접경지역인 하의도와 장산도가 암태도보다 더 심하고 조도의 경우는 하의 장산보다 더 심하게 나타나다가 조도의 동남쪽인 보길도, 노화도, 소완도와 남쪽인 추자도에 이르면 거의 모든 어휘가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 극을 이룬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조도방언은 전남의 서부도서방언과 남부도서방언을 이어 주면서 양방언권의 중간 위치에 다소 남부쪽에 치우친 것으로 보인다.

끝으로 조도방언의 수집에 협조해 주신 제보자 어르신들과 수집·정리하는데 도와 준 박 경선군과 고 옥례, 정 점숙양에게 다시 한번 사의를 표한다.

Ⅱ. 본 론

1. 국어계통연구의 현황과 지명 및 방언연구의 필요성

국어의 계통연구는 국내의 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연구되고 있으나 아직 미흡하고 초보적 단게에 불과하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를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국어, 일본어, 몽고어, 만주어, 터기어 등이 하나의 어족을 형성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① 한 어족으로 보는 견해

② 가능성은 인정되나 한 어족으로 확정하기에는 시기상조로 보는 견해

③ 친근성이 없다고 보는 견해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알타이어의 계통연구가 아직 미흡하여 확정단계에 이르지 못함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언어의 유사성이나 친근성을 논의할 때 음운대응을 중요시한다. 예를 들어 범어의 p음(pitan)이 영어의 f(father)에 대응된다. 이는 1 : 1의 대응이 아니라 체계상의 대응을 뜻한다. 만주어의 f는 국어의 p, 에벤키어의 h, 몽고어의 ø에 대응된다.

어휘면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낱말들의 단순한 유사성이 아니다. 이것들은 차용어일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어휘대응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기초어휘(친족관계 명칭, 신체부분 명칭, 동식물의 명칭, 기본동작을 나타내는 동사, 대명사, 수사 등)의 유사성이다. 국어와 일본어의 신체부분 특징을 몇 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② Korean Japanese

눈 ― me (목(目))

코 ― hana (비(鼻))

귀 ― mimi (이(耳))

입 ― Kuchi (구(口))

② Korean Japanese

눈 ― X (miru 견(見)る)

코 ― Kagu (후(嗅))

귀 ― Kowe (성(聲)), Kiku (문(聞))

입 ― iu (언(言)ろ)

①로 보아서는 양국어는 전혀 대응하지 않는다. 이는 양국어가 동계어가 아니거나(이 하나로 속단할 수는 없으나) 이 어휘들의 생성 및 발달계통이 다르거나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②로 보아서는 매우 깊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들을 동계어의 분화로 쉽게 속단할 수는 없다. 단순한 차용어일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국어의 "읊다"와 일본어의 'iu'(언(言)ろ)는 입과 유관하고, 국어의 '골다'와 일본어의 'Kagu(비(搒))'는 코와 유관함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문법면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단순한 어순의 공통성이 아니라 문법소 배열의 공통성이다. 곡용이나 활용의 형태와 유형을 중요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런 여러 방면의 연구가 심화·진척되었을 때 국어의 계통은 밝혀질 것이요 현단계로서는 국어를 알타이어족이라고도 비알타이어계라고도 단정할 수 없다. Ramstedt와 poppe의 업적을 보완·심화하여 한국어와 알타이제어 사이의 음운, 어휘, 문법 등의 대응을 토대로 국어의 계통과 알타이어학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Poppe의 Altaic unity를 소개한다.

Altaic unity











Chuvash Turkic-Mongol-Manchu_ungus unity


Proto-

Korean













Chuvash Turkic unity


Mongolian-Manchu-Tungus unity














Droto

Turkie


Proto-

Chuyash


Common

Mongolian


Common

Manchu-Tungus














Turkie

languages


Cauash

language


Monglian

languages


Manchu-Tungus

languages


Korean

languaea


국어의 계통연구에 가장 큰 문제점은 알타이어적 요소와 비알타이어적 요소의 혼효이다. 어순, 교착성, 어두자음조직의 제약, 모음조화, 관계대명사의 부재, 문법소의 배열, 어휘 등에서 그 유사성와 친근성 및 공통점을 찾을 수 있으면서도 곡용어미의 상당한 차이, 동사어미 —다의 문제, 형용사와 명사의 구별, 파열음에 유무성의 대립이 없는 것 등 비알타이어적 요소도 많이 가지고 있다.

국어는 알타이어적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또 거기 못지않게 비알타이어적 요소가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국어에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언어가 기층(基層)(subsratum), 혹은 상층(上層)(superstratum), 방층(傍層)(Adstratum)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많다. 이 중에서 기층설이 가장 유력하게 작용된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국어의 기층어를 김 방한(1980)은 원시한반도어라 부르고 있다. 이 원시한반도어에 알타이어적 요소가 더 접합된 것이 국어이고 이 원시한반도는 킬야크어나 아이누에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이다. 그 예를 몇 개만 들어본다.

∘ Gilyak Korean

ask (제매(弟妹)) ― asi (제(弟), 매(妹))

Kes (취(娶)) ― Kas (처(妻), 부(婦))

havaf (폐(肺)) ― hǝp'a (폐(肺))

mari (남(南)) ― ma (남(南))

hu (그) ― Kï (그)

ye (이) ― yo (이)

ni- (관(冠), 축(蓄) ― ni(대(戴), 개(蓋))

∘ Ainu Korean

pene (세우(細雨)) ― pi (우(雨))

moi (평지(平地)) ― mЋ (ꏡ 평야(平野))

ru (변소(便所)) ― nu- (용변(用便))

obosore (무(無)) ― Љps- (무(無))

akači (소녀(小女)) ― agas'i (약녀(若女))

ai-ai (유아(乳兒)) ― ai (아(兒))

časi (성(城)) ― čas(성(城))

이상으로 보아 길야크어나 아이누어가 한국어와 매우 흡사함을 알 수 있다. 알타이제어를 연구하는 데에 가장 큰 문제점으로 등장한 것은 고대언어자료의 미흡이다. 대부분의 언어들이 1000년 이전의 언어실태를 파악하기가 거의 어려운 실정이다. 국어의 경우만 하더라도 고려 이전의 언어는 극히 작은 부분적 편린밖에 볼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자료의 결여를 보충해 주는 방법이 지명 및 방언연구다. 방언은 고어의 저층을 많이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고어의 내적 재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특히 원시 한반도어의 같은 상고시대의 언어를 찾기 위해서는 지명의 조사·연구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니 지명은 그 지역에 화석처럼 굳어져 내려 와 옛시대의 언어실태를 가장 정확히 알려 주고 있다. 신라시대 경덕왕의 한자식 지명개칭은 그런 의미에서 국어사에 한 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옛지명과 개칭된 지명이 다행히 〈삼국사기〉에 병기되어 남아 있어 그 당시의 언어실태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오늘날 방언 및 지명 연구의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고 있는 이유도 이러한 데에 있으며 이 방면의 연구는 반드시 비교언어학적인 방법을 도입하여야 하는이유로 다 그러한 데에 있다.

국어의 계통에 관한 지금까지의 연구는 먼저 Ramstedt와 Poppe의 업적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전자는 국어를 알타이어족으로의 귀속(歸屬)을 확신(確信)하고 있고 Poppe 역시 Ramstedt의 국어어원연구에 대한 서평(書評)에서 국어의 알타이어족에의 귀속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의 견해가 근래에 와서 자꾸 후퇴하고 있는 것은 국어에, 앞에서도 말햇듯이 알타이어적 요소와 비알타이어적 요소가 혼효되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학자들의 최근의 연구에는 한국어가 길리약어나 에벤키어, 아이누어 등과 매우 관계가 깊은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김 방한은 〈한국어(韓國語)의 계통(系統)〉(1983)에서 한국어는 알타이제어 특히 퉁구스제어와 음운, 형태 어휘면에서 많은 공통적 요소가 있음을 밝히면서도 알타이제어와의 친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증거가 보강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 조도지명의 한 고찰

—꼴기미와 동구지의 ∼기미와 ∼구지에 대하여

조도지방에 가면 여느 도서와 마찬가지로 고유지명어를 많이 들을 수 있다. 곤추미, 꼴기미, 당길, 육골, 동구지, 여끝, 누룩이섬, 갈매기섬, 가사섬, 닥섬, 나부섬, 진매기, 활목섬, 볼매섬 등이 그것이다.

이 글에서는 꼴기미와 동구지의 ∼기미와 ∼구지에 대하여 그 연원을 캐어 보고 어떤 지형을 호칭한 말인지를 규명해 보고자 한다. 꼴기미와 동구지에 대하여 진도군지(珍島郡誌)(1976, 853)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읍구리(邑口里): 꼴구미, 꼴기미 등(等)으로 불리우던 바 음와(音訛)하에 한명(漢名)으로 읍구(邑口)라 명명(命名) 고정(固定)하였으며 유토리(柳吐里)에서 높은 상(峠)를 넘으면 상하(峠下)에 남향(南向)하여 해변(海邊)에 위치(位置)한 부락(部落)으로 신검산(神劍山) 동측(東側)이 되며 일제시(日帝時)에는 톳가공공장(加工工場)이 설립(設立)되어 부녀자(婦女子)의 취업(就業)의 보람이 있었다.

동구리(洞口里): 동구지라 함은 동리(洞里) 앞까지 해수(海水)가 만입(灣入)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傳)하는 바 지금(只今)은 언(堰)을 막아서 평원(平垣)하나 동명(洞名)은 여전(如前)하다."

실제로 꼴기미를 답사하여 보면 위에서 인용한 것과 같이 꼴기미는 거의 남향이어서 매우 따뜻하고 포구(浦口)가 좋아 입도조(入島祖)가 여기에 정착했을 가능성이 많고 지금은 창유리에 둑을 막아 농지가 많이 생겨서 그곳이 쇠퇴하였지만 옛날에는 가장 번성하였던 마을로 보였다. 그래서 꼴(읍(邑))기미가 된 것이다.

그런데, 동구지에 대하여 '동리 앞까지 해수(海水)가 만입(灣入)하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傳)하는 바' 운운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꼴기미는 그야말로 해수(海水)가 만입(灣入)하고 있어도 꼴구지라고는 명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미계와 ∼구지계의 진도지명은 다음과 같은 예를 찾을 수 있다.

∘∼가미계

가마구미(加馬仇味)(마매미)—군내면(郡內面) 북동해안(北東海岸)

군직구미(軍直仇味)(군직기미)—고군면(古郡面) 동해안(東海岸)

천구미(泉仇味)(샘기미)—고군면(古郡面) 마산리(馬山里) 동북해변(東北海邊)

향목구미(香木仇味)(향목기미)—고군면(古郡面) 남해안(南海岸)

초상구미(草上仇味)(초전구미(草田仇味))—의신면(義新面) 남해안(南海岸)

송천구미(松川仇味)(두목구미(杜木仇味))—의신면(義新面) 남해안(南海岸)

마막구미(馬幕仇味)(말막기미)—의신면(義新面) 남해안(南海岸)

팽목구미(彭木仇味)(팽목기미)—임회면(臨淮面) 서남해안(西南海岸)

한구미(寒仇味)(한기미)—임회면(臨淮面) 서남해안(西南海岸)

심구미(深仇味)(깊은기미)—지산면(智山面) 서남해안(西南海岸)

항기미—지산면(智山面) 서남해안(西南海岸)

어유구미(漁遊仇味)(어류기미)—조도면(鳥島面) 하조도(下鳥島)의 동북해안(東北海岸)

읍구미(邑口味)(꼴기미)—조도면(鳥島面) 하조도(下鳥島)의 남해안(南海岸)

∘∼구지계

나리곶(羅里串)(나리구지, 나루구지)—군내면(郡內面) 북단(北端)

다사읍곶(大沙邑串)(대구지)—군내면(郡內面) 북단(北端)

검산곶(劍山串)(검사곶, 검사골, 검사굴)—고군면(古郡面) 동북(東北)해안

사월곶(沙月串)(살구지)—고군면(古郡面) 원포리(遠浦里) 너머

요곶(蓼串)(요곶, 요굴)—의신면(義新面) 남해안(南海岸)

동구리(洞口里)(동구지)—조도면(鳥島面) 상조도(上鳥島) 서쪽

진도군지에서는 이 ∼기미계가 '피풍양지지지(避風陽地之地)'라 하여 좌향(坐向)과 매우 관계 깊은 것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신안군 암태도의 샘기미는 북향이며 진도군 조도면 어유구미(漁遊仇味)는 동북향(東北向)이라기보다 북향(北向)이며 완도군 보길도의 선창기미는 서향(西向)이요, 진도군 지산면의 행기미는 북향에 가깝다. ∼기미는 뒤에 자세히 논하겠지만 지형과 관계된 어형이지 방위하고는 관계가 없다. 다만 항포구적(港浦口的) 여건이 일반적으로 남동향이 많은 것과 우연히 일치될 뿐이다. ∼구지 또한 좌향보다는 지형과 관계가 깊다. 이 양자의 지형적 상관성에 대하여는 뒤에서 논하겠다. 진도지명에 ∼구지가 ∼곶, ∼굴/골과 넘나들 수 있다는 것은 ∼구지의 연원 규명에 커다란 열쇠가 되고 있다.

필자는 1982년 서남해지역의 방언조사의 일환으로 암태도를 갔었는데 이 지역의 지명어에도 조도(진도)의 경우와 같이 ∼기미계와 ∼구지계가 함께 분포되어 있는 것을 보고 그 구체적 지명을 조사해 본 결과 ∼기미와 ∼구지는 아무렇게나 붙어진 지명접미사가 아니고 그 지역의 형상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어사들을 옛기록과 대비하고 일본어와 대비하여 현대어에서 그 잔영을 추적하여 그 연원을 밝혀 보고자 한다.

조도지역의 ∼기미와 ∼구지는 꼴기미, 어류기미, 동구지 정도이나 신안군 암태도 지역의 ∼구지와 ∼기미의 분포는 상당히 많이 나타난다.

∘∼구지

∙안날구지

∙날고지

∙진구지

∙노동구지

∙아랫구지

∘∼기미

∙샘기미

∙살기미

∙한기미

"이 돈주(1966. 237)는 ∼구지를 고구려계 지면인 -구(口)계와 연결시키고 있다.

∘장항구현(獐項口縣)—운고사야홀차(云古斯也忽次)

∘천정구현(泉井口縣)—운어을매곶(云於乙買串)

∘장항현(獐項縣)−운고사야홀(云古斯也忽)

∘차혈구현(次穴口縣)−운갑비고차(云甲比古次)

∘양구현(楊口縣)−운요은홀차(云要隱忽次)

∘율구(栗口)−요천(要川) 〈삼국사기〉권 37.

위의 지명예를 따른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응(對應)을 발견한다.

구이흘차(口二忽次), 고차(古次), 중(中), 천(川).

홀차(忽次)나 고차(古次)는 모두 {곶}/koč/의 음차(音借)이며, 곶(串) 역시 다음에 알게 되겠지만 /koč/의 훈차자(訓借字)이니, 고구려어를 구(口)를 */koč/이라 하였음을 추지(推知)할 수 있다. 또한 일본어의 /kuchi/와 비교(比較)된다."

위의 견해는 대단한 탁견이며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다만 구(口)의 고형(古形)으로 */koč 뿐만 아니라 */kot/를 더 추정(推定)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첨기하고 싶다. 국어의 ∼곶과 ∼구지, 일본어의 kuci는 그 고형을 */koč/으로 보아야 하겠지만, 국어의 证鿁샤韡나 证로韡 그리고 일본어의 kataru나 koto는 */kot/에 직결되고 있다. */kot/은 */koč/보다 더 고형으로 생각된다. */kot/의 'ㄷ'이 'ㅈ'이나 'ㄹ'로 변천된 것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진도군 고군면의 검산곶(劍山串)을 검사곶이라 하는데 이를 또 검사골/검사굴이라고 하는 것과 의신면의 요곶(蓼串)을 요곶 혹은 요굴이라고 하는 것은 ∼구지의 고형이 'ㄷ'유지형이었음을 입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여기의 ∼골/굴은 곡(谷)의 뜻으로 쓰인 것은 지형으로 보아 아닌 듯하다.

홀차(忽次)의 홀(忽)은 구루(溝庬)에 대응되고 있다. 〈삼국지(三國志)〉의 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고구려조(高句麗條)에 「구루자구려명성야(溝庬者句麗名城也)」란 기록으로 보아 이를 알 수 있다. 따라서 구루(溝庬)는

*kuru 혹은 *kure정도로 읽을 수 있고 이는 에벤키어의 kure 만주어의 kuran과 연결된다. 또 홀(忽)이 성(城)에 대응됨은 지명어(地名語)에로 잘 나타나고 있다.

∘무자홀(蕪子忽): 절성(節城)

∘비달홀(非達忽): 대두산성(大豆山城)

∘감물이홀(甘勿伊忽): 감물주성(甘勿主城)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37.

이상으로 보아 홀(忽)은 */kor/로 읽을 수 있다. 그리고 홀차(忽次)의 차(次)는 ㅈ이나 ㅊ의 표기임을 알 수 있다.

∘제니(薺媒): 장의가차(獐矣加次)

∘길경(吉梗): 도(刀)꿁차(次), 도나차(道羅次)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

따라서 홀차(忽次)는 *koč/kuč 혹은 더 고형으로 */kot/, */korc/ 정도로 읽을 수 있다. 지명어 곶(串)과 대응하고 있는 구(口)는 곧 현대어 곶과 연결되며 이 곶의 방어형이 진도지역에는 ∼곶, ∼구지, ∼골/굴로 나타나고 암태로 지방에서는 ∼구지나 ∼고지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한다. 이 돈주(1966, 239)는 구지를 해구(海口) 및 철지형(凸地形)을 특징으로 한 지역(地域)에 명명(命名)되었던 것인데 그 의미(意味)의 확대(擴大)로 리(里), 동(洞), 촌(村)을 일컫는 한 개의 지명접미사(地名接尾辭)로 분포(分布)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실제 지명과 결부된 견해다. 필자가 조사한 진도와 암태도 지역의 ∼구지계 지명은 전부 돌출부분이었다. 이는 입이 들어간 것만이 아니고 짐승의 주둥이처럼 돌출한 데서 온 듯하다.

다음은 ∼기미에 대해서 고찰해 보자. 전남지역의 지명어에는 ∼기미계와 유사한 것으로 ∼구미계가 있다. 이 둘은 동계로 볼 것이냐 별개의 발달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은 ∼기미의 연원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또 ∼기미를 ∼기와 ∼미의 결합으로 볼 것이냐 단일한 접미사로 볼 것이냐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선 ∼기미를 ∼기와 ∼미의 결합으로 가정하고 ∼기와 ∼미에 대한 몇 개의 예를 들어 본다.

∘달애기(광산 임곡)

∘매대기(광산 서창)

∘귀생기(고흥, 고흥)

∘다실기(충남)

∘하신기 (경북)

∘누에기 (경남)

윗예의 ∼기를 김 방한(1982, 20)은 성(城)과 관계시켜 *kuru와 동계어로 보고 있다. 즉 ki<*kui<*kuji<*kuri<*kuru로 기술하여 백제어 〈지(只), 기(己), 지(支)〉는 고구려어 구루(溝庬)와 동계로서 이것의 변천으로 보고 있으며 이 돈주(1971, 366∼367)도 「지(只), 기(己), 지(支)」는 고구려의 말 홀(忽)에 비교되는 성(城)의 뜻을 가진 백제와 신라의 말로 국어음은 /kr, či/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김 주원(1982, 109∼111)은 {ki}가 성의 뜻으로 쓰인 것은 2, 3 예밖에 없다. 또 고구려어의 kulu는 고대일본어의 kï와 의미면에서 유사하지 않다. 이것은 마을, 산, 들, 고개, 골 등의 뜻으로 쓰인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김 지원의 견해에 동조하고 있다.

∼기미의 ∼미는 산(뫼), 들(ꏡ), 물(買) 등에 대비시켜 볼 수 있으나 견강부회인 듯하다.

∘남천(南川): 남매(南買)

∘천정구(泉井口): 어을매곶(於乙買串)

∘내을매(內乙買): 사천(沙川) 〈삼국사기(三國史記)〉권 35.

필자는 ∼기미를 ∼기⁢∼미의 형성으로 보지 않고 ∼기미와 ∼구미를 별개의 발달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기미는 ∼기와 ∼미의 결합되기 이전의 어원적 의미와는 전혀 별개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② ∼기미와 ∼구미는 의미상으로 같다.

③ ∼기미와 ∼구미는 그 분포상으로 보아 수의변이태이다.

④ 초도지명어는 ∼금형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구미의 축약형으로 보인다.

⑤ ∼기미와 ∼구미는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이거나 아니거나 포구형(浦口形)을 나타내는 지명접미사로 쓰인다.

⑥ ∼기미(∼구미)는 ∼구지(∼곶, ∼고지)에 상대적인 지명어로서 ∼곶이 돌출부(철(凸)를 ∼기미는 해안선의 휘어 굽어 들어간 곶 즉 '요(凹)' 부분을 나타낸다.

⑦ ∼기미는 해안선 일대에만 분포된 지명어이므로 내륙지방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⑧ ∼기미가 〈삼국사기〉지리지에 하나도 나타나지 않는 것은 〈삼국사기〉지리지의 지명이 큰 고을 위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북구미(北仇未), 호삼구미(蒿三仇未), 마구미(馬仇未), 구며(仇恊), 구미(仇彌) 등이 나타나고 홍양호(洪良浩)(1724∼1802)의 〈이계외집(耳溪外集)〉권(卷)12 목북새기략중(目北塞紀略中) 해로고(海路考)에는 구미(仇未)계가 수없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 구미(仇未)계가 해안선 일대의 지명과 관계되고 특히 배를 정박시킬 수 있었던 포구형(浦口形)의 지명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위의 해로고(海路考)에 나타난 구미(仇未)를 몇 개만 들어본다.

어구미(於仇未), 선구미(船仇未), 기도구미(基道仇未), 노적구미(露績仇未), 운선구미(運船仇未), 색구미(色仇未), 마구미(馬仇未), 대구미(大仇未)…….

이상으로 보아 ∼기미와 ∼구미는 별개의 발달이거나 ∼기미가 ∼기와 ∼미의 결합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기미계의 잔영으로 현대어에서 남아 있는 가장 확실한 어형은 후미(물가의 휘어서 굽어진 곳)와 후미지다(방언형 휘미지다. 물가의 굽어 들어간 곳이 매우 깊다. 무서우리만큼 호젓하고 깊숙하다.)이다. 이런 것들로 미루어 보아 ∼기미계는 다음과 같은 발달과정을 밟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① huimi> hymi

humi

*kuimi (구미(仇未))> ② kumi/kimi, cimi

③ kïm.

위의 도표에서 cimi는 kimi의 구개음화된 어형이고 kïm는 kumi의축약형으로 보인다. 여천군 삼산면의 초도(草島)에는 ∼기미/구미 대신에 금이 쓰이고 있다(홍 순탁, 1968, 59).

정 감 금 진 막 금 이 성 금 대 풍 금

파 장 금 고 려 금 정 창 금 건 금

위의 지명들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갯가가 포함되어 있다.

∼기미를 후미(후미지다)와 연결시켜 놓고 보면 '구무, 우묵다(우묵폁다), 우ꎁ다, 우ꎁ여들다 등과 동계어인 듯하며 혹은 굽다와도 관계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본어에 요(凹)를 타나내는 말로 くばむ가 있는데 이것과 ∼기미계는 동계어로 보인다. 홍(洪) 순탁(淳鐸)(1963. 10)은 ∼구미의 어원에 대하여 흑산도 방언에서 '숨다'의 방언형에 '꿈다'가 있는데 이 말이 어두경음화되기 이전의 '굼'에 접미사 '∼이'가 붙어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필자는 위에 제시한 후미, 우묵하다(혹은 굽다) 등과 연관시키고자 한다.

Ⅲ. 조도방언의 특수어휘

필자가 채집한 1,500여 조도방언의 어휘 중에는 특이한 것들이 꾀 많으나 그 중에서 몇 개만 골라 논구할 예정이다. 인칭접미사 ∼바와 ∼수, 소鷕(솔밭), 뜬물과 싼물, 하난 등이 그것이다.

1. 인칭접미사 ∼바와 ∼수

조도방언(鳥島方言)의 특수(特殊) 인칭접미사(人稱接尾辭)에 ∼바와 ∼수가 있다. 육지지방의 어형에도 이와 같은 것을 찾을 수는 있지만 그 쓰임이 매우 다름을 알 수 있다. 육지의 경우는 이미 일반화된 어형에 쓰이지만 조도의 경우에는 특수한 어형과 용례로만 나타남으로 고어(古語)의 저층(底層)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바와 ∼수의 연원(淵源)을 고구(考究)하고 현대어에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고찰(考察)하는 데 그 목적(目的)이 있다.

◎ 인칭접미사(人稱接尾辭) ∼바

지도(珍島)와 조도(鳥島) 방언(方言)에서 남성지칭어(指稱語)로 ∼바를 찾을 수 있다. 육지어의 둘쨋놈, 셋쨋놈…의 ∼놈에 해당된 어사로 두바, 시바, 니바, 오바…등에서 ∼바를 찾을 수 있다. 이는 여성지칭에 —단 혹은 ∼시미와 대비되는 어형으로서 또 다른 남성지칭어 ∼수와 좋은 대비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이 ∼바의 연원을 고대어(古代語)의 표기(表記)를 통해 고구해 보기로 한다.

∘거칠부(居柒夫) 혹운황종(或云荒宗)

이사부(異斯夫) 혹운태종(或云苔宗)

노리부(弩里夫), 차조부(此助夫) 〈삼국사기(三國史記)〉

∘기파(耆婆)(랑(郞)) 〈삼국유사(三國遺事)〉

∘놀보(婁甫), 점보(點甫) 〈동국신속삼강행가도(東國新績三綱行家圖), 기타〉

위의 인례(引例)에서 우리는 인칭접미사(人稱接尾辭) ∼부(夫), ∼파(婆), ∼보(甫)를 찾을 수 있는데 이는 동어(同語)의 이자표기(異字表記)에 불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부(夫)와 ∼파(婆)가 후대에 −보(甫)로 이끌림은 발음상(發音)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한자어(漢字語)에 있어서의 남자미칭(男子美稱)으로 쓰인 보(甫)와 혼태(混態)된 듯하다. 이런 경우는 국어의 고유어 ∼수가 한자어 목수(木手), 선수(選手), 기수(旗手) 등의 −수(手)에 이끌린 것과 같다.

위의 인례를 통해 ∼부(夫)와 ∼파(婆)의 의미(意味)를 추정해 낼 수 있다는 것과 이것들이 고대어에는 매우 생산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부(夫)·파(婆)는 종(宗)과 의미(意味)상으로 대응됨을 찾을 수 있다. 종(宗)는 15세기 국어에 ꏁ鿁로 나타나며 현대어에도 산마루 마루종(宗) 용마루 등에 자주 쓰이고 있고 이는 머리(두(頭))와 동계적(同系的)인 것으로 보인다. 또 종(宗)은 지(旨)로도 나타나니(죽지랑역작죽만(竹旨郞亦作竹曼) 이것들은 석독자(釋讀字)로서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한편 이 종(宗)은 수(首)·두(頭)와도 같이 쓰임을 강수명우두(强首名牛頭)〈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엿볼 수 있다. 강수(强首)는 *긡ꏉ 정도로 읽어 봄 직하기 때문이다. 수로(首露)를 남신(男神)을 나타내던 ∼수와 연결시키면 *수鿁정도가 가능하겠지만 수(首)를 두(頭)와 직결시키면 ꏁ鿁가 되고 만다. 이 'ꏁ鿁'는 신라의 왕호(王號)와 매우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듯하다.

〈삼국사기〉에 고구려나 백제의 왕호는 전부 ∼왕(王)으로만 표기되어 있지만 신라의 경우는 다음의 5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 신라(新羅)의 왕호(王號)

① 혁거세거서간(赫居世居西干)…거슬한혹작거서간(居瑟邯或作居西干) 〈삼국사기(三國史記)〉

…일월청명(日月淸明) 인명혁거세왕(因名赫居世王)(개향활야(盖鄕活也) 혹작불구내왕(或作弗矩內王) 언광명리세야(言光明理世也))

〈〈삼국유사(三國遺事)

② 남해차차웅(南解次次雄)(혹운자충(或云慈充) 김대문운방언위무야(金大問云方言謂巫也)

③ 유리니사금(儒理尼師今)∼실성니사령(實聖尼師令)(16대간)

④ 눌지마립간(訥祗痲立干),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 지증마립간(智證麻立干)(4대간)

⑤ 법흥왕(法興王)∼경순왕(敬順王)

〈삼국사기(三國史記)〉

경덕왕(景德王) 때 고유어로 된 지명을 한자(漢字)로 개명(改名)한 작업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한자가 일반화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간(干(한(邯)), 웅(雄), 니사금(尼師今) 마립간(麻立干) 등이 왕(王)으로 개칭되었음은 조금도 이상할 리 없다. 이 글에는 위의 왕호(王號) 중에서 차차웅(次次雄)과 마립간(麻立干)에 대해서만 언급하고자 한다.

김대문(金大問)은 차차웅(次次雄)을 무(巫)와 관계시키고 있다(혹운자충(或云慈充) 김대문운방언위무야(金大問云方言謂巫也). 이는 환웅(桓雄)이나 단군(檀君)과 연결시켜 보았을 때 무(巫)를 나타냈다는 점에서 무리가 없다. 문제는 차차웅(次次雄)을 자충(慈充)이라 읽은 것이다. 자충(慈充)은 음독임에 틀림없는데 자충(慈充)이 무(巫)와 연결되려면 현대어의 '중'과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차차웅(次次雄)을 자충(慈充)으로 읽은 데에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 그 하나는 ∼웅(雄)을 남신(男神)을 나타내던 환웅(桓雄), 신웅(神雄) 등과 별개의 것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과 또 하나는, 차차웅(次次雄): 자충(慈充)의 등식이 성립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다. 위의 신라의 왕호에서 거서간(居西干) 혹은 거슬한(居瑟邯)을 *试간·试한 정도로 읽어 본다면 시조(始祖)임을 강조했다면 두 번째 임금 또한 이대왕(二代王)임을 나타내려는 의도(意圖)가 없었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차차웅(次次雄)에 차(次)가 두 번이나 쓰이면서도 전부 음독되었다면 차(次)자를 썼던 본래의 의도와 멀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필자는 차차웅(次次雄)을 자충(慈充)으로 재표기한 것을 당시의 언어실태를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차웅(次雄): 자충(慈充)' 정도의 대응으로 보고 처음의 차(次)는 이대왕(二代王)임을 나타낸 것으로 보고자 한다. 따라서 첫음절의 차(次)는 중세어의 버굼(알쿵 법(法) 위(爲)폁야 진(瞋)폁며 희(喜)한 버구물 드듸샤〈도하삼지(圖下三之)−56〉, 버근부인(夫人)(양믡 마야부인(摩耶夫人)만 ꆨ폁실돡 버근 부인(夫人)이 韁외시니라〈석육(六)1〉), 버금, 버금아韉(버금 쟝꼡 되어시니〈삼역오(三譯五)3〉)등을 통해 내적(內的) 재구(再構)해 낼 수 있는 *버글다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또 한편, '차웅(次雄): 자충(慈充)'의 동음(同音)(유음(類音))이자표기(異字表記)자체를 의심한다면, 그리고 여기의 ∼웅(雄)을 환웅(桓雄), 신웅(神雄)의 웅(雄)과 연관시킨다면 ∼웅(雄)은 *—수에 소급되는 어형이 될 것이다. ∼웅(雄)이 '중'과 관계된 어형인지 아니면 ∼수에 더 관계된 어형인지는 속단을 피하고자 한다. 다만 차차웅(次次雄)의 첫음절 차(次)는 *버글다와 관계된 것임을 조심스럽게 제기해 보고자 한다.

만약 차차웅(次次雄)의 ∼웅(雄)을 신(神), 무(巫), 웅(雄)와 관계된 ∼수로 보고 현대어의 박수나 판수와 연결시키면 차차웅(次次雄)을 *버귿긡(버귿수) 정도로 읽음 직하다.

우리는 위에서 부(夫)·파(婆)·보(甫)로 표기되었던 것이 ꏁ鿁와 의미면에서 유사함을 보았는데 그것이 현대어에 어떠한 잔영(殘影)으로 남아 있는가를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산마루의 마루가 맏딸 맏백(伯)의 맏과 동계어이듯이 들보(대들보)의 보는 부(夫)·파(婆)·보(甫)의 잔영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았을 때 보와 마루의 의미상의 유사성을 쉽게 인정할 수 있게 된다. 또 현대어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눈보, 코보, 먹보, 욕보, 뚱보 등의 ∼보도 '대(大)·선(善)'의 뜻을 지녔으므로 의미상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훈몽자회(訓蒙字會)에 노鿕바치우(優), 공쟝바치공(工) 등이 보이는데 여기의 ∼바치는 ∼바⁢∼치로 분서되며 이 ∼치는 이치 저치 등에 쓰이는 접미사며(혹은 불완전명사) ∼바는 조도방언의 ∼바와 같은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어형은 현대어에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갖바치, 활바치, 점바치, 성냥바치, 흥정바치 등, 그리고 동냥아치, 벼슬아치 등도 ∼바치의변천형으로 보인다. 한편 앉음뱅이, 게으름뱅이, 잘돌뱅이, 놈팽이 등에서도 ∼바를 찾을 수 있다. 서동방(薯童房)의 방(房)도 이 ∼바와 관계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박(朴) 은용(恩用)(1970. 24)은 이 ∼바(∼보)는 일본어에서도 매우 많이 나타난 것으로 보고 있다.

◎ 인칭접미사(人稱接尾辭) ∼수

조도방언(鳥島方言)의 특수한 인칭어에 ∼수와 ∼단을 찾을 수 있다.

볼메수납씨, 볼메수넘씨, 볼메수, 볼메다납씨, 볼메다넘씨,

볼메단(볼메다니).

위의 예에서 볼메는 관매도(觀梅島)의 고유명칭이며 ∼수는 남성지칭어, ∼단은 여성지칭어이다. 여기에 압씨와 엄씨가 결합되어 형성된 어형이 볼메수납씨(볼메다납씨)와 볼메수넘씨(볼메다넘씨)이다. 볼메는 여자가 시집온 곳을 가리키는데 이는 언어사회학적 측면에서 고찰해 볼 만한 매우 흥미 있는 언어자료이다. 볼메에서 시집온 여자가 첫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를 볼메수라 하고 그 어머니를 볼메수넘씨, 그 아버지를 볼메수납씨라고 부른다. 한편 첫딸을 낳으면 그 아이를 볼메단이라고 부르고 그 부모를 볼메다넘씨와 볼메다납씨라 부른다.

진도방언에서 찾을 수 있었던 ∼바(큰놈, 두바, 시바, 니바…)는 조도에서 그대로 나타나 있으나 시다니(셋째딸), 니다니(넷째딸), 오다니(다섯째딸) 등의 ∼단을 찾을 수 없었는데 여기에 단의 잔영이 나타난다.

우리는 위의 예를 통해 조도지방의 특색 있는 새로운 인칭접미사로 ∼수를 하나 더 찾았는데 이에 대해서 좀더 상세히 고찰해 보고자 한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경주이가소전호구단자(慶州李家所傳乎口單子)〉, 최범훈(崔範勳)(1977) 등을 참조하여 이 ∼수와 유관한 어형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그 표기유형별로 나누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모진금(毛眞金), 자근금(者斤金), 어둔금(於屯金), 건금이(建金伊)(건쇠), 무기질금(無其叱金)(무적쇠)

② 엇쇠(樮衰)

③ 억수(億壽)(억꼡)

④ 손말질세(孫末叱世)(손귿셰), 묵세(墨世)(먹셰)

⑤ 마당쇠(馬堂釗), 부엌쇠(夫億釗), 고도쇠(古道釗), 조왕쇠(造王釗), 노쇠방울쇠(老釗方鬱釗)

⑥ 곡목중(谷沐中)

⑦ 쇠동(釗東), 쇠동(釗童), 쇠불(釗弗)

⑧ 마당례(馬堂禮), 두문이(斗問伊), 발이덕(勃伊德)

①∼⑦은 남성명이고 ⑧은 여성의 이름이다. 남녀가 쉽게 식별되는 것은 인칭접미사의 유형에 의한 것이므로 더 많은 예를 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①∼⑦에서 남성접미사로서 ∼쇠, ∼새, ∼꼡, ∼셰, ∼긡 등을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을 별개의 뜻을 지닌 어형으로 각각 보는 것보다 동음(同音)(유음(類音))이자표기(異字表記)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최범훈(崔範勳)(1977. 146)은 '남성접미사(男性接尾辭)'에 —금(金)이 있다. '쇠'는 물론 수명(壽命)이 '쇠'같이 견고(堅固)하라는 기원(祈願)이 담긴 작명법(作名法)이다!라고 말하고 있으나 ⑦과 같이 어두(語頭)에 쇠(釗)(금(金))이 쓰인 경우는 강(强)이나 철(鐵)과 관계시켜 생각할 수 있으나 접미사로 쓰인 것들까지강(强)이나 철(鐵)과 연결시키려는 것은 점패방지진(點貝房之進)(잡고(雜攷), 1937. 144) 이후 일반적 견해이지만 수긍하기 어렵다.

이는 방언형에 나타나는 길수(게으름보), 삔들수(빈들빈들한 녀석), 묵수(혹은 묵세, 묵쇠), 백세·백쇠(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 등과 동계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양(梁) 주동(柱東)(1942. 8∼11)은 「모(母), 자(雌), 아(芽), 아(牙), 무(拇))의 암·엄을 여신(女神)을 나내던 「译」과 연결시키고 남신(男神)은 「수」와 관계시키고 있다. 고기록(古記錄)에서 ∼수가 남신(男神)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는 기록들을 몇 개만 들어 본다.

∘수신(隧神), 영수신(迎隧神) 〈삼국지(三國誌)〉

∘상제환인유서자왈웅(上帝桓因有庶子曰雄)∼시위단웅천왕야(是謂檀雄天王也) 〈제왕운기(帝王韻紀)〉

∘석유환인서자환웅(昔有桓因庶子桓雄)∼상기우신웅원화위인(常祈于神雄願化爲人) 〈삼국유사(三國遺事)〉

∘국호북부여(國號北扶餘) 자칭명해모수(自稱名解慕漱) 〈삼국유사(三國遺事)〉

∘수로(首露)( ? )

∘봉(峰): 수리봉

∘소도(蘇塗): 수태껏(제물(祭物), 보길도)

∘박수, 판수

위의 예에서 웅(雄)은 수(漱)와 연결시켜 *긡로 읽어 본다면 환웅(桓雄)·단웅(檀雄)은 'ꟊ다'와 연결시켜 *ꟊ수(ꟊ긡) 정도로 읽을 수 있다. 오늘날 무당을 지칭하는 말에 박수가 있으니 이 두 어사는 어형과 의미면에서 직결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마당쇠의 ∼쇠 묵세·백세의 —세(—쇠) 길수·묵수의 ∼수, 볼메수의 ∼수는 남신(男神), 남(男), 무(巫), 웅(雄)과 관련된 동계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2. 소鷕 고(考)

∘소鷕이 질 씨원하제라우. (솔밭이 제일 시원하지요)

∘소鷕 속에 학계가 있는디…(솔밭 속에 학교가 있는데…)

위의 소鷕은 소나무숲 즉 솔밭을 가리키는 말이니 이것은 육지어의 솔밭에 대응되는 어형이다. 이것은 '솔밭>솔>솔뗛>소鷕'의 통시적 변천과정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중세국어의 대, 대, 글, 도톨(도톨왐), 말(말왐), 비다 등의 어행이나 그 변천과정과 관계 있는 어형들이다. 따라서 솔밭의 밭이 '뗛'으로 된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있으나 문제는 '왓' 혹은 '鷕'의 'ㅅ'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이다.

전남서부방언에서 쓰인 종성 ㅈㅊㅌ은 주격, 대격, 조격 등의 앞에서는 'ㅅ'으로 중화되어 나타난다.

낮, 젖

낯, 돛 ⁢∼이, ∼을, ∼으로의 경우는 ㅅ으로 실현되고 처격 ∼에 앞

밭, 팥

에서는 중화되는 경우와 중화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 중 ㅈ과 ㅊ이 ㅅ으로 중화되고 있는 것은 중세국어에서 이들이 같은 서열이었으므로 파찰음의 마찰음화 혹은 순간음의 지속음화로 설명할 수 있으나 ㅌ이 ㅅ으로 된 것은 그리 쉽게 설명할 수가 없다. 즉 'ㅌ→ㅅ'은 공시적 변동으로 규명하기는 매우 힘들다. 따라서 이는 통시적 변천과정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다.

17세기 이전에는 구개음화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고되어 있으나 그 진원지었던 서남부방언에서는 그 이전에 구개음화가 이미 실현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위의 어형들 '밭, 팥(쿛)' 등이 즉격 ∼이와 결합되어 나타날 때 구개음화되어 '바치, 쿁치'가 되었을 것이니 어떻게 해서 형성된 'ㅊ'은 다른 격으로 확산되어 갔을 것이고 결국은 Absolute form 자체도 'ꑹ, 쿙'으로 되고 말았을 것이다.

∘무협(巫峽)안햇 바쯁로 두(杜)초칠(七) 17〉

∘꿁래긴 밧츨(청(靑), p.50)

∘블근 쿁쏉(적소두(赤小頭))〈분(分)온 4〉

이 'ꑹ, 쿙'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밧과 쿕'으로 되어 intervocalic 파찰음이 마찰음화됨으로써 발음의 간편성을 지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형성된 어형으로 빗(債)을 하나 더 들 수 있다. 중세어의 Ꞩ이 빚으로 된 것은 Ꞩ이 주격과 결합되어 구개음화된 것이고 이 ㅈ이 순간음의 마찰음화(지속음화)로 전남서부방언형인 '빗'이 형성된 것이다. 광양을 중심으로 한 전남동부방언은 아직도 '밭; ꑹ', '춻: 춹'형이 격에 따라 선택되고 있다. 이는 전남방언의 'ㅅ, ㅈ, ㅊ, ㅌ'받침어형을 전부 조사함으로써 구개음화시기의 연대재고와 간이화현상에 대한 상고(詳考)가 요구되고 있는 사례들이다.

3. 뜬물과 싼물

∘뜬물에 나가먼 배질하기가 쉽제

∘물발이 쌍께 배가잘 안 시게진다.

∘싼물이라 배질하기가 에럽다.

위의 예와 같이 조도방언이 뜬물과 싼술이 있다. 이는 보길도방언과 일치함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바닷물과 관계돈 특수어휘로 '가샌물과 참바지'가 있어 매우 흥미롭다. 전자는 간조(干潮)를, 후자는 만조(滿潮)를 가리키고 고유어이나 이에 대한 논의는 다음 기회로 미루겠다.

위의 예에서 '뜬과 싼'은 '뜨다와 싸다'와 관계된 어형으로 보인다. 중앙어에 '동작이 느리다. 천천히 움직이다'의 뜻으로 '뜨다'라는 동사가 있다.

∘왜 동작이 그렇게 뜨지?

또 의태어 뜸숙뜸숙도 뜨다와 동계어인 듯하다.

한편 싸다는 '빠르다'의 뜻이다. 잽싸다에 싸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남방언형에는 이 싸다가 매우 생산적이다.

∘싸게 싸게 헤라. (빨리 빨리 해라.)

∘일을 싸게만 하먼 잘 한데냐?

그리고, 위의 용례에서 '시게진다'는 시기다(시키다)의 수동형이다. 조도방언에서는 일을 시키거나 배를 일정한 방향으로 유지할 때 '시기다'를 쓰고 있다. 이는 중세국어와 직결된다.

∘鏁ꏉ 시겨 폁야도 〈석십삼(十三) 52〉

∘시길 명(命) 〈유합하(類合下) 2〉

∘녀鿑ꟁ람 뎡평소냐 가鏅대로 ꟡시겨라 〈어부하(漁父夏) 3〉

4. 하 난

∘하난: 믹 어떻게 다 파까잉. (많은 미역을 어떻게 다 팔까 응)

∘하난 사람 중에 외 그런 숨칙한 사람을 만났다요?(많은 사람 중에 왜 그런 흉측한 사람을 만났답디까?)

위의 예에서 볼 수 있는 '하난'은 '많은'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어형으로 비단 조도지방에 국한된 어형은 아니지만(대체적으로 서남부방언에는 거의 쓰인 듯하다. 완도, 해남, 영암, 강진, 장흥 등), 이 말은 활용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관형사로 굳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 믹이 하나다.

* 사람이 하나다.

이 말은 고대어 하다(다(多))와 연결시켜 생각해 봄 직하나 ∼나 ∼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상서(祥瑞)하거늘 〈곡(曲) 17〉

∘여름 하鏁니 〈용 2〉

따라서 이 말은 흔하다(흔폁다)의 Ablant형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구스리 흔커鏅 〈내삼(內三) 36〉

∘证장 흔폁다 〈두(杜)초상(上) 17〉

위의 '흔폁다'의 어형성을 '∼흔 ⁢폁다'로 가정하였을 때 '한(대(大), 다(多)) ⁢폁다'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와 같은 조어법으로 형성된 어형들로 诈폁다(证쯁다), 만폁다 등을 찾을 수 있다. 鏊다: 늙다, 암: 엄: 움, 압: 옵 등이 Ablaut에 의한 어형의 분화이듯이 *한폁다: 흔폁다도 이에 의한 어형의 분화로 볼 수 있고 그 잔영이 조도가 포함된 전남남부방언에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상으로 조도방언의 특수어휘 몇 가지를 고찰해 보았다. 견강부회가 되지 않았나 두렵다. 위의 몇 예 중에서도 인칭접미사 ∼바와 ∼수는 국어의 인칭어 발달 및 변천 연구에 큰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소鷕'은 방언형의 받침, 구개음희의 연대 추정, 간이화의 과정 이해에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Ⅲ. 결 론

지금까지 논구한 바를 요약하여 그 중요한 것들을 제시함으로써 결론에 대하고자 한다.

∘국어는 알타이어적 요소와 비알타이어적 요소가 혼효되어 있지 때문에 계통연구에 문제점이 많다.

∘국어를 알타이제어와 친근관계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증거가 보강되어야 한다.

∘원시 원시한반도어와 같은 상고시대의 언어를 찾기 위해서는 지명연구가 필요하다.

∘방언연구는 고어자료의 미비점을 보완해 준다.

∘지명접미사 ∼구지는 해안선의 돌출부를 ∼기미는 해안선의 만곡부(彎曲部)를 나타낸다.

∘∼구지는 일본어의 kuchi kataru, koto 국어의 ∼곶, 证로韡 등과 동계어로 보이며 ∼기미는 후미(후미지다), 우묵하다, くばむ 등과 동계어로 보인다.

∘인칭접미사 ∼바는 부(夫), 파(婆), 보(甫), 코보의 ∼보 등과 관계된 남성지칭어였다.

∘인칭접미사 ∼수는 남신(男神)을 나타냈던 고대어 웅(雄), 마당쇠의 ∼쇠, 묵수의 ∼수와 관계된 것으로 보인다.

∘조도방언에서는 받침 ㅈㅊㅌ이 대체적으로 ㅅ으로 중화된다.

∘이것은 밭 쿛 등이 주격 ∼이와 결합되어 바치 쿁치로 구개음화되고 이렇게 형성된 'ㅊ'이 ㅅ으로 간이화(파찰음의 마찰음화)된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현상은 17세기 이전에 구개음화현상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뜬물과 싼물은 느린 물과 빠른 물을 나타내고 있다.

∘'하난'은 흔하다와 모음교체형인 *한폁다에서 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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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여미리를 아시나요
글쓴이 : 윗새섬사랑(인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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