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가루받이
麗尾박인태행정사
2013. 7. 5. 11:43
가루받이
麗尾박인태
배꽃은 자웅이 동체(同體)지만
자가 가루받이는 엄격히 배제된다.
가족이니까.
암술 주위를 무수한 꽃가루가 유혹하나
가장 유리한 유전인자를 갖춘
자신과 닮지 않은 개체만 선택한다.
꽃가루의 가루받이는
서로 우수한 종자라 속삭이기도 전에
암술로 자석처럼 순식간 빨려들고
마법의 끈적끈적한 애액(愛液)에 취해
자신을 녹이며 사랑이라 생각한다.
애간장 녹는 가루받이
동거하며 수분도 못하는 수술 꽃가루는
관심에서 멀어져 정처없는 길을 떠난다.
바람 가득한 풍선처럼,
부단히 새로운 꽃을 탐하며 헤매지만
씨 맺지 못하는 허망한 영혼은 잊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