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신원증명서’족도(族圖)란?
횡적 자녀.내외손 계보 정리
족도는 족보 이전의 가계기록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단선적인 세계도(世系圖)에다가 본인 또는 자(子), 여(女) 또는 사위(서·壻), 내외손까지 포함한 횡적 계보까지 대상으로 포함됐다.
세계도(世系圖)가 본인을 기준으로 종적인 조상 세계를 계보화한 반면, 족도(族圖)는 횡적인 자녀 및 내외손의 계보를 정리한 것이다.
이러한 족도가 족보의 초기 형태로 15∼16세기 지속적으로 제작된 것은 사문서인 동시에 국가적으로 개인의 가계와 혈통을 말해주는 공적인 신원증명서와 같은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안동권씨성화보’(1476)와 ‘문화류씨가정보’(1562) 등 조선전기 족보는 종래의 족도를 보다 종적, 횡적으로 소급하거나 확대해 계보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기록상 알려진 최고의 족도는 고려 말 ‘강릉김씨족도’이나 전하지 않고 1401년 제작된 ‘해주오씨족도’가 현존 최고의 족도다. 세로 115㎝, 가로 112㎝ 크기의 장지 한 장으로 작성된 이 족도에는 해주오씨를 중심으로 장흥임씨, 경주김씨, 수원최씨, 여흥민씨, 행주기씨 등의 가계가 기록돼 있다.
이밖에 16세기 초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여주이씨 독락당 소장 ‘여주이씨세계’와 ‘경주이씨족도’, ‘경주손씨족도’, 또다른 ‘안동권씨족도’ 등이 전한다.
최영창 기자 ycchoi@munhwa.com
동성동본 결혼 빈번했던 15세기 조선 명문가
국립민속박물관, 단종의 외가 '안동 권씨 族圖' 공개
15세기 중반의‘안동권씨족도’일부. 문종 왕비인 현덕왕후(①)와 단종(②)의 자리가 비어 있다. 단종 폐위와 관련된 정치적 상황 때문으로 보인다.
조선 전기 왕비를 배출한 명문(名門) 안동 권씨 가문에서 동성동본 혼인이 자유롭게 이뤄지고, 외손자와 친손녀가 결혼하는 등 지금 시각으로 보면 혁명적인 혼인 관습과 가족 관계를 밝혀주는 자료가 공개됐다. 국립민속박물관은 7일 단종 어머니 현덕왕후가 속한 안동 권씨 가계를 밝힌 15세기 중반 족도(族圖)를 공개했다. 이 족도는 현존 최고(最古) 족보로 알려진 '안동권씨성화보(成化譜)'(1476)보다 약 20년 앞선다. 현덕왕후의 3대조인 권여온(權呂溫)의 자손 340여명의 관계를 표시한 '안동권씨족도'는 단종 즉위 직후인 1450년대 중반 왕실의 외가 혈통을 밝히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동성동본 사례만 7건
최순권 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은 "안동권씨족도엔 동성혼(同姓婚)은 물론, 동성동본 결혼 사례가 7건이나 기록돼 있다"고 했다. 5대에 걸쳐 동성혼이 이뤄진 경우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파(派)만 다르면 동성동본 혼인이 자유롭게 이뤄진 것. 최순권 학예관은 "'고려사'에 이미 동성혼을 금지하는 규정이 나오지만, 조선 전기까지는 동성동본 혼인이 많이 이뤄졌다"면서 "17세기 이후 성리학이 뿌리내리면서 동성동본은 물론 동성혼도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외손자와 친손녀 결혼, 자매가 시댁 숙질지간
안동 권씨는 안동 지방 명문인 예안(선성) 김씨, 진성 이씨, 영천 이씨 등과 겹으로 혼인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외할아버지 입장에선 외손자가 친손녀와 결혼을 한 경우도 생겼다. 이조참판을 지낸 권수익은 외삼촌 김홍의 딸과 결혼했다. 권수익의 여동생들이 각각 영천 이씨 집안의 며느리와 손자며느리가 되면서 자매가 시댁의 숙질지간이 된 경우도 있었다.
◇딸 아들 모두 출생 순서 따라 기재
'안동김씨족도'엔 자녀를 출생 순으로 기재하고 외손도 본손(本孫)과 같이 전부 기재했다. 즉, 딸이라도 먼저 태어났으면 아들보다 먼저 올렸다. '해주오씨족도' 같은 조선 초기 가계 기록이 적서(嫡庶) 구분 없이 자(子)·녀(女)로만 쓴 데 반해, 안동권씨족도엔 '첩자(妾子)' '첩녀(妾女)'라는 표현이 보이는 게 특징이다. 조선 초기에도 '선원록' 같은 왕실 족보에선 적서를 구분했는데, 안동권씨족도는 왕실과 관련됐기 때문에 적서를 구분한 것으로 보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16일 박물관 강당에서 '안동권씨족도'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고, 이달 26일까지 '안동권씨족도'를 전시한다. 박물관 측은 "안동권씨족도는 족보사에 한 획을 긋는 조선 초기 고문서이자 동성동본 불혼이나 적서 차별의 통념을 뒤엎는 1차 사료"라고 했다.
☞족도(族圖)
족보의 초기 형태로 이름과 대표 관직만 기재한 일종의 가계도. ‘안동권씨족도’보다 시대가 이른 조선 전기 족도는 ‘해주오씨족도’(1401년) 정도만 남아 있다.
김기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