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의 세월
모정의 세월
우리가 우리 조상을 생각할 때 실로 많은 의문을 갖게 한다.
나는 왜 이곳에 있는가?
나의 조상은 과연 언제 이곳으로 오게 되었으며. 무엇 때문에 그 많고 많은 땅을 나두고 이 척박한 땅을 선택했을까?
그 의문은 끝없이 꼬리를 물고 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고작 우리에게 들려주는 유일한 이야기는 너덜너덜한 기름먹인 족보 책 몇 권 그리고 띄엄띄엄 전해지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공갈같은 이야기들…….
족보……. 이 믿음직한 자료.
우리의 뿌리를 적은 기름종이는 우리 조도 인을 어떻게 위로 할 것이란 말인가?
군데군데 끊어져 희미한 역사를 억지로 꿰어 보는 것이 무슨 위로가 된다는 것인가.
모든 것이 다 필요 없다. 오직 내 눈에는 가난에 찌든 나의 어머니의 굽은 허리와 거친 손바닥이 가슴 아프고. 보잘 것 없는 내 처지가 서글프고 심통이 날 뿐이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름은 어머니 어머니다.
그 위로는 우리 조상 가난 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르는 단어 모정의 세월 들…….
실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 곁을 스쳐가고 있다.
그들 중의 대부분은 우리가 잠시 마실 나온 사이에. 아니면 한 잠자고 나서 일어나 보니 우리 동네에 없어진 사람들이고 더러는 오랜 세월을 살 부대끼며 지내온 사람들인데도 잠시 떨어져 있다 보니 기억도 희미해지고 그 이름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지만 우리는 그 흔적을 잊어서는 안 되지 않은가?
이 조그만 섬 조도에 지친 몸을 쉬어갔던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한의 노래 아리랑타령 한 가락 속에 그 한의 흔적처럼 생겨난 부모에게 왠수같은 우리 새끼들 자식을 향한 끝없는 자랑과 따져보지 못한 무한한 기대를 안고 우리 부모님들은 이 땅에 아직도 살고 있다.
“ 아리 아리롱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안갈미 바갈미 사람 살기는 좋아도 등너머 물 길어 먹기는 내 원통 일세... ”
그래도 시집오기 전에 살던 친정 안갈미와 바갈미 섬을 그리워했다. 그곳이 우리동네 여미리 보담 더 살기 좋아서 그런 것이 아니고 시집살이와 살림살이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서 친정이 보고싶다 그 이야기다.
짐승도 고향을 그리워한다 했는데 내 고향 내 암태를 묻은 곳…….
어쩌면 배냇저고리가 시렁 위 쾌쾌묵은 낡은 괘짝 속에 차곡차곡 보관되어 있을 것 같은 우리 어머니 집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새벽 미명 암탉의 첫 번째 울음을 듣고 부스스 졸리고 허기진 몸을 기우뚱 거리며 보리 씻어 무쇠 솥에 앉혀 소시개로 첫불을 피우고, 황망히 어슴푸레한 동네 길을 나서 구수골 샘에 가서 물 한 동이 길어다 물 항아리에 채워두고, 마당 한번 휘 휘 쓸고 나면 아무 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이제야 따뜻해진 아랫목에 서로 발을 쑤셔 넣으며 꿀잠을 잣던가.
보리밥은 어째서 한 불도 두 불도 아니고 꼭 세 불을 피워야 밥이 되었던고. 부사케(아궁이)서 꾸벅 꾸벅 졸던 우리 엄메……. 새벽에 잠이 깨면 어른이나 아이나 새벽 허기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
눈이 채 벌어지지도 않았지만 베개머리 위쪽 댐댕이 소쿠리에 담겨있는 차갑게 식은 고구마를 찾기 위해 손을 휘졌어 댔던 기억 어디 쓸 만한 것이 아침까지 남아 있겠어.
엄메는 정재 부사케서 김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가마솥 소뎅이 뚜껑을 열어젖히고 커다란 주걱으로 퍽퍽 보리밥을 뒤집을 때면 배고픔이 절정에 달한다.
이걸 못함은 막내가 한 숟가락 떠먹다가 쏘시개 비땅(부지깽이)으로 어께쭉지를 맞을라 치면 징징 울면서도 보리밥을 묵고. 그래도 불쌍하다고 엄메 쪼빡(바가지)에서 밥 한 숟갈 더 주면 헤..헤 웃고 있어.
“애라. 속 창아지 없는 놈의 새끼…….”
밥 묵고나서 자연스럽게 바라 봐야되는 바다!
출렁인다. 쪽빛의 출렁임…….
아니 질퍽거리는 내 마음을 닮은 갱변(바다가) 밉기가 씨엄씨(시어머니) 낯 판대기 같어라.
씨엄씨 낯판대기?
그러면 못쓰지……. 싫어도 봐야댕게 저 놈의 갱변 같아…….
안보면 아쉽고……. 봐야댕께 속 터지구.
밭너머 갱번, 목너머 갱변, 목섬. 만녀 갱변, 구수골 갱변, 안골. 등드래미갱변, 장골. 도리산갱변, 섯동굴갱변, 모레짱골갱변, 유금섬갱변, 시끝에갱변.
누가 선출했는지 아니면 전에부터 세습되어 내려온 일인지 아니면 돌려가며 하는 것인지는 잘 몰라도.
암튼 갱변을 지키고 감시하는 갯강구 영감이 정해져 있어 “갱변나오시요……. 갱변나오시요…….! ”
외침이 온 동네를 쩌렁 쩌렁하게 울려 퍼질라치면,
그 당당함. 이집 저집서 엄메들이 쏟아져 갱변이 채워진다.
그런데.
갱변 가는 날도 아닌데 남몰래…….
서울 올라가는 딸내미한테 싸줄라고 고동 한 주먹 그리고 삐들 삐들 마른 돌김 쬐금, 둔북이 한주먹 미역 한타래. 뜯어갔구 오다가 갯강구인 작은집 씨압씨(작은댁 시아버지)한테 들켜, 눈감아 줄 것을 믿었건만 야속하고 매정하게 빼앗기고 흩어지고 내동댕이쳐지는 조락(대바구니)속에서 미역쪼가리와 삐들 삐들 말려진 돌김 몇 줄을 바라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던 우리 엄메 우리 매씨들의 눈물을 떠올린다.
갱변갔다 왔응께 푹 한숨 잤으면 좋것지만, 점심으로 고구마 삶으려면 뒷 까끔(산)가서 솔까시 한 동우는 긁어서 이고 와야 된다.
솔꺼시 한동 이고 내려 옴시로 내려다 본께 쩌그 오두막집에는 어째서 기뚝(굴뚝)에 냉구(연기)가 안 날까…….
워메. 지난번에 얼핏 들으니까 감재가 폭 썩어 부럿다는디 쩌먹을 감재가 없는 거 아니여…….
끌 끌끌. 어째야 쓰까…….
썩은 거 깍아서 모아둔거 한바구니 보내줘야 쓰것는디.
혹시 썩은 거 보냈다고 어기장이라도 놓으면 으짜까…….
성가서야 성가서.
우리 어머니들은 이렇게 그 어려운 춘궁의 시절을 견디셨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