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몰랐다면
만약에 몰랐다면
麗尾 박인태
오십이 넘자
나이를 헤아리기 싫어졌다
거울도 보기 싫다
어쩌다
지나친 거울 속
낯선 이와 친해지기 싫다
만약에
시간을 몰랐다면
늙고 있다고 조바심을 내랴
이렇게 빨리 늙어간다
곧 죽을 거라 두려워할까
왜 어두운 밤길은
그토록 무서우며
새파란 물속은 그리 두려운가?
만약에
공간을 지각하지 못했다면
아름다움이 무엇이며
더러움이 또 무어며
끝없는 공포와 두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기쁨과 탐욕의 기운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죄를 내가 몰랐다면
두려움과 기쁨을 알까
죄는 무엇인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왜 알게 되었으며
그로인한 죄를
꼭 알 필요가 무엇인가
만약에 몰랐다면
내게 죄가 없는 것 인가
죄를 모르는데 선은 무엇이며
악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러면 무엇을 택할 것인가
무언가를 알게 되면서
시간에 쫒기고 공간에 얽매이고
죄에서 헤매며
영리하지만 교활하게 살다
공포의 시달림 끝
죽음에 이르리니
만약에 몰랐다면
나름 좋은 점도 많으련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느 순간 다 알아버린 운명이여
벗어나기를 원하는 가
그렇다면
나를 깨우쳐주신 스승을
만나지 말았어야 한다.
그러나 스승은 이미 내 곁에 없다
나의 모든 불필요한 깨우침을 주신
그 스승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도록 하면 될 것이다
결과로
만약에 몰랐다면
나의 고통은 없을 것이다
그 고통의 원천은 스승이다
그 스승은 지혜다
지혜의 결과는
죽음이므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면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만약에 몰랐다면”
이라는 세계에서......,
20100124 마법에 빠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