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사형 선고' 판결문 전문-1981년(펌)
기록은 참 무서운 작업입니다. 특히 글쓴이가 누구인지 밝히며 기록하는 일은 그렇습니다. 수십년, 수백년이 흘러도, 글쓴이가 이 세상을 떠나도, 그 기록은 살아 숨쉬기 때문입니다.
김대전 전 대통령에게 사형 선고를 내렸던 대법원과 육군계엄부의 고등군법회의 판결문을 읽으며 그런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특히 ‘김대중 사형’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문에 맨 마지막 ‘바이라인’에 주목해 주십시오. ‘이 판결에는 관여 법관들의 견해가 일치되다.’라는 문장 밑에 대법관 13명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영섭(재판장) 주재황 한환진 안병수 이일규 라길조 김용철 유태흥 정태원 김태현 김기홍 김중서 윤운영.’ 1980년 전두환 등 신군부가 저지른 ‘헌정질서 파괴 범죄’를 묵인 또는 동조했던 대한민국 최고의 법률가들입니다.
히틀러가 지배한 독일 나치 정권도, 이를 묵인 또는 동조하는 법률가가 없었다면 그 힘을 발휘할 수 없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형 판결문은 그날, 그들의 행적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신헌법(1972.12.27 개정공포된 헌법)을 무효라 볼 근거가 없고,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경우 그 계엄선포가 합당한지, 부당한지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대법관 13명이 한목소리로 합의하는 부분을 읽으면서는 그 비겁함에 제 얼굴이 다 불거집니다.
반면, 죽음을 벗삼아 ‘갇힌 시대’를 쉼없이 걸어온 김대중 전 대통령과 그의 동지들 덕에 ‘열린 시대’가 도래했음을 판결문을 정리하며 깨닫습니다. 2004년 1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심 재판을 통해 무죄 판결을 받은 것도, 민주 정권이 10년간 쌓은 변화의 힘일 것입니다. 김 전 대통령만큼 삶을 치열하게 살 능력도, 용기도 없습니다. 다만 그의 발자취를 기록하는 것으로 존경을 표하려 합니다. 그리고 사형을 확정한 법률가의 이름을 공개하는 것으로 법원의 반성을 촉구하려 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등 신군부가 비상계엄령을 확대할 무렵인 1980년 5월17일 밤 11시30분 집으로 들이닥친 중앙정보부 수사관에 의해 남산 중정 대공수사국으로 끌려갔습니다. 옷을 벗겨 모욕감을 주고, 며칠씩 잠을 안재우고 같은 질문은 반복하는 고문이 같은 해 7월9일까지 계속됩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배후·조종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김 전 대통령은 구속돼 육군교도소에 갇혔습니다. 고문에서 벗어났지만 9월17일 육군계엄부의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11월3일 육군계엄부의 고등군법회의에서 항소가 기각됐습니다. 김 전 대통령이 “대법원에서는 (사형 판결이 안 나기를) 조금 기대했”음에도 1981년 1월23일 대법원은 사형을 그대로 확정합니다. ‘사형수 김대중’은 수형번호 9번을 달고 청주교도소에서 949일간 복역하다 1982년 12월22일 형 집행정지로 풀려나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당시 사형을 선고한 대법원과 고등군법회의 판결문 핵심 내용을 정리하고 전문을 덧붙입니다. 무죄를 선고한 재심 판결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무죄 선고' 판결문 전문-2004년 (http://ejung.blog.seoul.co.kr/87)에 싣습니다.
김대중 사형 판결문 핵심 내용
대법원 판결문 1981.1.23 선고 80도2756 판결
[내란음모, 계엄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피고 사건]
피고인 김대중 외 11인
1.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이하 한민통) 일본본부는 북한과 반국가단체인 조총련의 지령과 자금을 받아 활동하는 반국가단체이다.
2. 내란음모죄는 내란을 범하려고 2인 이상이 모여 음모하면 족하고, 범행의 일시, 장소, 주체, 수단,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계획할 필요는 없다.
3. 유신헌법(1972.12.27 개정공포된 헌법)을 무효라 볼 근거가 없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경우 그 계엄선포가 합당한지, 부당한지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
4. ‘모든 실내의 집회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계엄법 제13조 규정은 집회를 주최하거나 소집하는 행위뿐 아니라 허가를 받지 않은 집회에 참여하는 것까지 금지한다는 의미다.
5. 허가받지 않은 집회를 열고 사전 검열없이 출판하는 행위는 사회상규에 어긋난다.
6. 법무사가 받은 증인신문을 법원이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
7.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역에서는 군인·군속뿐 아니라 일반 국민도 군법회의에서 재판을 받을 수 있다.
8. 재판관을 바꿔달라는 신청을 냈는데도 재판 진행을 중단하지 않고 판결을 곧바로 선고한 것은 신속한 재판을 위해 필요한 조치였다.
사형을 확정한 대법원의 판결문 전문을 첨부합니다.
대법원 80도2756.hwp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 1980.11.3 선고 80고군형항176 판결
[내란음모, 계엄법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반공법 위반, 외국환관리법 위반 등 피고 사건]
1. 피고인 김대중은 반국가단체인 한민통 의장에 취임한 후 그 직책을 보유하며 그 구성원과 연락했다.
2. 피고인은 단순히 정치이념을 같이 하는 지식인, 종교인들끼리 만나 학생운동을 통해 국민여론을 반영하도록 시도한 것이며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음모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다.
3. 내란음모죄의 행위라고 인정한 학생시위의 규모와 숫자 등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았고, 내란의 수단, 방법, 시기 등도 막연히 기재돼 있다고 피고인은 주장하지만, 내란음모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기에 그 정도면 충분하다.
4. 피고인은 계엄 당국의 허가없이 회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민주회복을 위한 인권운동이나 선교활동, 사제간 모임, 사회단체 사교모임에 불과하다고 말하지만, 당시 집회 내용이나 목적 등에 미뤄보면 단순히 업무수행이라 보기 어렵다. 계엄법과 포고령이 내려진 터라 피고인은 집회가 불법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5. 포고령을 위반한 모든 집회 및 시위는 그 목적이 정치적인 것인지 여부를 불문하고 모두 처벌의 대상이 된다. 집회 주최자뿐 아니라 그 집회·시위에 참가한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6. 피고인은 이번 계엄령이 헌법과 계엄법에 규정된 계엄선포요건을 갖추지 못해 무효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은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지닌 행위라 헌법이나 법률에 명백히 위반되지 않는 한 유효로 봐야 한다.
7. 고문, 폭행, 협박이 가해지고 신체를 장기간 부당하게 구속한 상태에서 피의자신문조서를 작성했다고 주장하지만, 재판기록을 살펴보면 그런 잘못이 없다.
8. 모든 집회를 금지한 것은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배되고, 군사상 필요가 없는 행위를 계엄법 위반죄로 처벌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피고인(한승헌)의 주장은 독단적인 견해에 불과하다.
사형을 선고한 육군계엄부의 고등군법회의 판결문 전문을 첨부합니다.
육군계엄고등군법회의 80고군형항176.hwp
수형번호 9번을 가슴에 달고 청주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