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이런일이/시(詩)를 위하여

나도 원고료를 지급하는 편집장이고 싶다(펌)

麗尾박인태행정사 2009. 8. 10. 14:37

참고] 나도 원고료를 지급하는 편집장이고 싶다.

http://cafe.daum.net/changgam/6UVN/1052
나도 원고료를 지급하는 편집장이고 싶다. | 문학칼럼 2005/11/03 14:22 
  http://wnetwork.hani.co.kr/jlee5059/64  

나도 원고료를 지급하는 편집장이고 싶다.
                 이승훈

 

 얼마 전 모 공인문인협회 홈페이지에 원고를 공개청탁하는 글을 올렸다가 그 회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심한 면박을 당하고 올렸던 글을 삭제한 일이 있다. ‘문예지의 운영 형편상 원고료를 지급해드리지 못해 송구하오나 해당 작품이 실린 문예지는 반드시 몇 권 보내드리겠다’는 나름대로 정중한 예의를 갖춘 요지의 글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작가의 피를 빨아먹는 이런 문예지가 있느냐는 둥 낯뜨거울 정도의 댓 글이 달렸다. 마치 원고를 구걸하는 꼴이 되어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채, 씁쓸한 마음으로 글을 내리면서 과연 그가 당당히 원고료를 요구할 만큼의 수준 높은 작품을 쓰는 사람일까…, 그래서 그의 작품 게재가 해당 문예지의 질적 향상에 도움을 줄 정도일까 생각해본 것이다. 잠시 부언하자면, 등단하기 전 펜을 도구로 사용하는‘작가’에 대한 나의 인식은, 모두 지성과 예를 갖추고 일반인보다는 다른 인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위 댓 글 사건은, 작가에게 작품발표의 장을 제공한다는 소극적 측면만 우선 시 해온 나에게 소홀히 해온 부분을 일깨워 준 일이기도 하다.
 
 요즘 심심찮게 문예지 창간 소식을 접한다. 문예지와 그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의 단체가 결별을 하고 별도의 문예지를 창간하는 경우도 있고, 어느 정도 연륜 있는 문인들 몇 몇이 의기 투합하여 문예지를 만들었다가 금세 의견충돌을 일으켜 또 다른 문예지를 창간하기도 한다. 등단한 지 불과 몇 년 안된 문인도 문예지 창간에 뛰어드는 것을 보았고, 경영난으로 무너진 문예지를 인수하여 제2창간 형식을 취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문예지가 양상된다는 것은 작가들에게나 독자들에게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우선 작가들에게는 작품을 발표할 매체가 그만큼 많아지는 일이고 독자들에게는 선택과 참여의 폭이 넓어지며 문학인구 확장에도 긍정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예지 창간 소식을 접하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희망보다는 염려가 앞서는 까닭은, 문예지의 경영상 어려움을 절절히 경험해오기 때문이다.
 문예지를 운영하려면, 우선 사무실이 필요하고 편집디자이너를 포함한 최소한의 직원도 있어야 한다. 몇 부를 발행하느냐에 따라 편집비·종이대금·필름출력비·표지인쇄비·내지인쇄비·제본비·배송비·인건비·기타 잡비 등 발간 비용도 만만치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문예지를 정기 구독하는 일반 독자들이 많은 것도 아니며 서점에 배포한 문예지가 전부 판매되어 이익을 창출해주는 것도 아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작가들에게 무엇으로 원고료를 지급하겠는가. 직원 인건비 챙겨주기도 힘겨운 상황이 대부분 문예지의 일반적 현실이다. 그러면 그런 주제에 왜 문예지를 발간하고 그 운영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는가에 대한 문제와 일부 문예지가 깊이 자성해야할 부분은 다음 기회에 언급하기로 하자.
 
 지방을 포함하여 우리 나라 문예지는 모르긴 해도 250 여 종류는 되어 보인다. 이 문예지를 통해 등단한 작가들이 해마다 얼마나 되는지 어림잡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문예지가 홍수를 이루다 보니 작가가 되는 일은 더더욱 쉬워졌다. 사이버 공간이 또 다른 문학활동 영역으로 등장하면서 문학인구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한국문인협회에 가입된 회원수만도 7천명이 넘는다. 아무리 작가가 많아도 작가의 정신적 노작물인 작품을 문예지에 게재하면 당연히 원고료가 지급되어야 한다. 솔직히 필자 역시 원고료를 지급하는 편집장이고 싶다. 원고료가 충분히 지급된다면 원고청탁이 얼마나 당당할 것이며, 소위 잘 나간다는 문인들만 골라 작품을 선정 게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한 권이라도 더 팔릴 것 아닌가.
 작가들이 대부분 전업작가는 아니다. 따라서 원고료 몇 푼이 해당 작가의 생활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원고료는 작가의 자부심이며 창작의 에너지인 셈이다. 우리 나라 문예지 중 원고료를 지급하는 문예지는 모르긴 해도 열 손가락 안에 들지 싶다. 그것도 문예진흥원의 지원금을 받아 문예지를 운영하거나 종종 베스트 셀러를 내 경제적으로 탄탄한 출판사를 겸하고 있는 경우이다.
 
 월간으로 발행되는 종합문예지의 경우 60여명의 작품이 실린다고 했을 때, 장르를 떠나 작가 한 명당 원고료를 5만원씩만 잡아도 매월 나가야 하는 원고료는 300만원이다. 결코 작은 액수가 아니다. 문예지의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학회생 프로그램 추진위원회에서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선정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문예지에 원고를 게재하는 작가의 작품을 선정하여 문예진흥원에서 별도로 작가에게 직접 원고료를 지급한단다. 그러나 이런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작가가 얼마나 되겠는가. 아무리 문예지가 많다 하더라도 자신의 작품을 발표할 기회는 그리 많이 주어지지 않는다. 예컨데 회원 7천명이 넘는 한국문인협회는 자신의 기관지인 월간문학을 통해 1년이면 몇 명의 작품이나 발표해줄 수 있을까.
 
 작품의 질적 수준을 떠나 원고료를 지급하는 몇 몇 문예지만으로는 작가들의 작품발표 수요를 충족하기는 어렵다. 작가들은 끊임없이 창작을 하여 개인작품집이나 문예지를 통해 발표를 하면서 다양한 독자들과 만나야 한다. 작품 발표는 곧 독자들과의 교감을 의미하며 독자가 없는 작가는 쓸쓸하고 외로울 뿐이다. 문예지를 독자와 만나는 매개체로 생각한다면 원고료를 지급하지 못 하는 문예지라고 해서 경시하거나 원고청탁서를 휴지통에 버려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나라에 소위 말하는 A급 문예지 몇 개만 존재한다고 해보자. 그야말로 문인귀족이라는 특권층이 탄생할 일이다. 나는 그 귀족이 될 수 있을까?
문인들이 스스로 문예지를 아끼고 키워가려는 노력 없이 어찌 문학적 토대가 넓혀지겠는가. 수 십 년 된 정통 있는 문예지들도 수 십 번 휘청거리고, 급기야 간판을 내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느 원로문인을 취재 갔을 때 그 분도 문예지 하나 운영하느라 아파트 한 채를 날렸다고 했다.

 원고료를 언급하기 전에 작가 스스로도 원고료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실력을 쌓아가야 함은 물론이다. 예전에는 자신의 작품이 실리면 오히려 해당 문예지를 몇 권씩 사주는 미덕이 있었다. 그 책값이 문예지 운영에 크게 보탬이야 되겠는가 마는 작가로서 문예지의 어려운 사정을 함께 나누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작품을 실어달라며 원고를 들고 사무실을 찾아오는 작가들을 보면 오히려 고맙다. 그것은 문예지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작품 발표를 작가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는 듯해서다. 

 원고료 지급,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요원하지만 노력해야 하고 방법은 모색되어야 한다. 나 역시 문예지를 이끌어 가는 실무자이기 전에, 글을 쓰며 순수하게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어쨌든 나는 원고료를 지급하는 편집장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