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가족/자작시

천 년 묵은 여우 (이야기 시)

麗尾박인태행정사 2008. 11. 3. 12:04

천 년 묵은 여우

(이야기 시)


               麗尾 박인태


호롱불 아래

동네 조무래기들 턱을 괴고

울 할머니 옛날이야기 듣는다.

옛날 옛적

화목한 가정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단다.


처음에 닭

다음 개 염소

나중에는 황소가 죽어갔지

모두 간을 빼 먹힌 채로


오라비가 야밤에 외양간을 살피다

아 사랑하는 누이가 천 년 묵은 여우라

두려움에 도사를 찾아갔더란다.

노랑, 파랑, 빨강 주머니

도사가 빨강은 마지막에 사용하라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 아버지도 어느새 돌아가셨다지

오라비는 곧바로 집에서 도망을 한다

이를 눈치 챈 누이가

“오라버니 같이 가요.”

점점 가까이 쫓아 오더란다.


파란 주머니다

누이는 새파란 강물을 힘들게 건너오며

“오라버니 구해주세요.”


노란 주머니다

맨발이 가시밭에 찔리며 눈물을 흘리더란다.

“오라버니 너무 아파요.”


천지신명이여

오라비는 마지막을 망설이다

빨강 주머니를 던지고 말았지

“오라버니 미워요.”

목 놓아 울던 어여쁜 누이는

시뻘건 불꽃으로 승천하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