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성으로 풀어낸 연동 박윤중의닻배 (펌)
탁성으로 풀어낸 연동 박윤중의닻배
연동, 박윤중(82)옹의 발걸음이 분주해진다. 실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아가는 설레임이 그의 가슴을 못내 잡아채는 까닭이다. 젊은 날, 풍선으로 오가던 시절에는 참 많이도 나다녔던 뱃길이다. 지금은 하구언이 가로막혀 있어, 더 이상 영산강으로의 흐름은 끊겼다. 그의 눈가로 알 듯 모를 듯 물기가 번진다. 아마도, 유년시절부터 다도해와 목포를 이어 주던, 그래서 천년을 두고 흘렀을 그 물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상조도 서북쪽 끝으로 숨죽일 듯 조용한 한 마을에 다가선다. 마치 한폭의 그림이다. 그곳 여미리의 서쪽 바다로 마치 무덤처럼 군도가 펼쳐져 있다. 박윤중 옹이 대대로 나고 자란 원형의 땅이다. 그러나 박 옹의 지난한 삶의 궤적을 더듬어 올라가다 보면 아무래도 천형의 땅이었을 것 같다는 자괴감이 인다. 박윤중 옹의 입가로 ‘휴우’ 한숨이 터져 나온다. 고향을 떠난 지 수 십여 년. 간혹 조상의 산소를 찾아 온 것 외에 너무도 오랜만인 듯하다. 개가 한 번 짖는다. 마을 입구 등성이에 자리한 당집으로부터 몇 겹의 메아리가 파장을 이룬다. 다시 정적과 고요. 그저 걷는 이의 발자국 소리만이 겹겹의 층을 이룬 돌담에 부딛칠 뿐이다. 마을 사람들 몇을 만난다. 반가운 얼굴들이다. 손을 마주잡고 인사를 나눈다. 훨씬 늙어버린 삶의 지기들. 그들의 손을 다시 부여잡는다. 왠지 손을 놓기가 싫다.
한 폭의 그림 상도조 여미리
마을앞 스러져가는 단칸집으로 들어선다. 아흔을 훌쩍 넘겨버린 동네 형님이 사신다. 남의 나이를 너무 많이 차용한 탓인지 귀가 거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박박 소리를 질러대도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도 초라한 그 집이 변함없이 아름답다. 마당 한켠으로 정리하다만 그물들이 쌓여있다. ‘치깐’으로 이어지는 돌담은 거의 허물어진 상태다. 거기 노옹의 마당에 서면 마을 앞바다가 눈밑이다. 팔을 벌려 한 뼘쯤의 거리. 그 선착장에 에프알피 선박 몇척과 선외기 몇 척이 끼리끼리 코를 맞대고 있다.
풍선 시절에 비하면 선착장이니 뭐니 하여 이토록 좋아질 수가 없는데, 사람들은 그래도 살기가 팍팍한 모양이다. 바다는 너무 고요해서 미동도 없다. 간혹 동네 사람들이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작은 부름이 고즈넉함을 깨트린다. 물살이 갈라지듯 정적이 깨지고 그 틈새로 한때의 분주한 수선거림이 가득히 차 오른다. 사람들이다. 어장을 나갔다 들어오는 모양이다. 꽤 익숙한 이 풍경 밑으로 개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삽입된다.
박윤중 소리로 ‘디리는’ 닻배 줄
그리운 얼굴들, 지금은 당신이 온 백의 나이를 눈앞에 두고 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리운 것은 유년의 그늘아래 겹쳐오는 옛사람들 뿐이다. 그리고 수 십여년 전에 묻힌 그의 아내. 울컥 슬픔이 치밀어 오른다. 흙냄새 갯냄새, 그리고 땀내음이 흠뻑하던 그들의 ‘돔방애’에서 묻어 나오는 진한 그리움들, 박 옹은 잠시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그 그리움들이 파도 처럼 몰려온다.
박 옹은 말없이 북채를 잡는다. 외마디 탁성, 그의 쉰듯한 목소리가 한풀이를 한가락 뽑아낸다. 가닥가닥 청의 오르고 내림이 마치 ‘무느져’오는 파도와 같다. 그 탁성 속으로 그리운 사람들이 또 한컷씩 삽입된다. 박 옹의 소리는 금새 흥을 더한다. 그리고 술배 소리와 풍장 소리를 넘나든다. 닻배 소리다. 이내 고즈넉한 풍경이 분주한 마을 일터가 된다. 이들은 이미 70여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어 유년의 고향으로 내닫는다.
거기 분주한 할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닻배의 선원들이 마을앞 공터에 모여있다. 마을 사람들이 닻배 조업을 위해서 줄을 디리기 위함이다.
닻배를 무은다 여미리 바닷가에서
박 옹의 할아버지는 벌써 닻배 선채를 무으고 계신다. 대패도 없던 시절, 순전히 깎는 도구는 ‘짜구’류이다. 먼저 활톱으로 판자를 켠다. 구질 할 것은 못 대용 나무를 말함인데, 쪽나무 뽕나무 등으로 만든 단단한 나무다. 켜서 만든 판으로 옴팍하게 둘러놓으면 배밑이 완성된다. 이러한 삼판은 항상 겹쳐서 이었기 때문에, 댓거리로 이음새를 메워야만 했다. 이 댓거리는 대를 아주 가늘게 깎고 쪼갠 후, 겹쳐서 댄 삼판 사이에 총 총 박아 넣는 것을 말한다. 그래야 물이 새지 않기 때문이다.
선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치 집을 짓듯 칸막이 공사를 하고 돛대를 세운다. 돛대 밑에는 구레짝을 세운다. 왕년에 돛은 돛자리로 만들었다. 부잣집은 황포 돛을 짜서 달기도 하고, 가난한 집은 산에서 띠를 베어 와 짜기도 했다. 돛이 무겁기 때문에 가닥 가닥마다 활죽을 맸는데, 이 활죽에 걸린 줄이 아둣줄이다. 여러개가 있다고 해서 거무아두라고도 했다. 창기는 방철 없던 시절 바람의 방향을 점치기 위해서 항상 꽂아놓았다. 고물은 조도에서 꼬불이라고도 했다. 돛 꼬작에 다는 기는 봉기라고 하는데, 풍장할 때 단다. 장원했다 해서 장안기라고도 하며 이때 봉기 지른다고 했다.
육자배기조의 탁성후 다시 일상으로
탁성과 북소리가 어우러졌던 흥분과 열기가 차츰 식어간다. 이내 소리가 이끌었던 유년의 풍경들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다시 여미리는 정적에 쌓인다. 한무리 뱃일꾼들이 사라진 여미리 선창으로 개 두 마리마저 다시 사라진다. 박윤중 옹은 온 백이 가까운 동네 형님 손을 한참이나 끌어안는다.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다시 돌아올 때는 삶의 지기들이 몇이나 남아 있을꼬. 아니면 박 옹이 다시 올 수 있을지.
여리미 잔등을 올라 다시 마을을 내려다본다. 층층이 그리고 겹겹이 쌓인 돌담. 다시 오버랩되는 유년을 떨치고 돌아선다. 아, 아버지 그리고 할아버지. 앞 바다 저편으로 희끄무레하게 마치 아버지의 무덤처럼 섬들이 흩어져 있다. 박 옹도 머지않아 그들 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래, 다시 그 한 점 섬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머언 무덤으로부터 다시 눈길을 거둔다. 그리고 돌아선다. 돌아서는 발길이 천근이다. 박윤중 옹의 터벅 걸음 뒤로 여미리 앞바다가 잔뜩 웅크리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