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다 천지간 남자들이여
내 평생을 알아줄 자가 누가 있으랴.
부평초 물결 따라 삼천리 자취가 어지럽고
거문고와 책으로 보낸 사십 년도 모두가 헛것일세.
청운은 힘으로 이루기 어려워 바라지 않았거니와
백발도 정한 이치이니 슬퍼하지 않으리라.
고향길 가던 꿈꾸다 놀라서 깨어 앉으니
삼경에 남쪽 지방 새 울음만 남쪽 가지에서 들리네.
떠돌아다니는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으니
우연히 한번 쓴 것이 사십 평생 쓰게 되었네
본시 목동이 가벼운 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갈 때 쓰고
늙은 어부가 고기 잡을 때 쓰는 것이라
술이 취하면 벗어서 꽃나무에 걸고
흥이 나면 벗어 들고 누각에 올라 달구경하네
속인들의 사치스런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나의 삿갓은 하늘 가득한 비바람에도 걱정이 없다네
금강산의 어느 절에 덕이 높은 스님 한분이 머물고 있었다.
김삿갓이 그 스님을 찾아가 차를 얻어 마시고 있는데
얼굴색이 좋지 않은 노인 한 사람이 찾아 왔다.
"몸이 불편하긴 것 같은데 어떻게 이 높은 곳까지 찾아 오셨는지요?"
스님이 묻자 노인은 몹시 힘든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 나이가 올해로 꼭 아흔이 되었소이다.
몸이 예전과 같지 않은 걸 보니 이제 살날도 얼마 남은 것 같지 않아요.
스님께서는 영험하시다는 말을 들었는데
저를 조금만 더 살게 해 주실 수 없으신지요?"
김삿갓은 그 소리를 듣고 적이 놀랐다.
나이가 아흔이나 됐는데 더 살겠다고 스님을 찾아온 걸 보면
욕심은 참으로 한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노인의 말에 스님이 반문했다.
"얼마나 더 살기를 원하시는지요?"
노인이 대답했다.
"한 백살까지만 살고 싶습니다."
"영감님은 왜 그렇게 욕심이 없으시오?
백 살을 산 다음에는 죽겠다는 말이요?"
노인은 골똘히 생각하는 기색이더니 이내 말을 바꿨다.
"그럼 한 백오십 살까지 살게 해 주십시오."
"알겠소이다. 그럼 백오십 살까지 살게 해드리리다.
그런데 백오십 살이 되면 돌아가시게 되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노인이 또 머뭇거리더니 말을 바꿨다.
"그럼 한 이백 살쯤 살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스님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영감님은 참 욕심이 없으시오.
이왕이면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말씀하시지 그러십니까?"
'예? 영원히 살 수 있도록 해주실 수도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부처님이 계신 극락 세계에서는 죽음이 없답니다.
그곳이 영생의 세계라는 사실을 왜 모르십니까?
자 이제 어떻게 하시겠는지요?"
그러자 노인은 그 자리에서 합장하며 고개를 숙였다.
이 가을 만나본 김삿갓을 끝내며..
김삿갓은 조부를 욕한 사실이 괴로워 밤새 술을 마시다가
새벽녘에 노인이 머물고 있는 주막에 들어 가게 되었는데
그가 죽을 듯이 괴롭다고 토로하자 노인은 이렇게 물었다.
"자네는 백일장에 장원을 한 실력이니
'하천불가고상(何天不可翶翔) 이비아독투야촉(而飛蛾獨投夜燭)'
이라는 말을 알겠지?"
채근담에 나오는 말로써
'넓디 넓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도 있는데
불나방은 어찌하여 등잔불 속으로만 뛰어 들려고 하는가'라는 뜻이었다.
"예 알고 있습니다."
"그처럼 박식한 자네인데 왜 그 문장에 나오는 불나방처럼
자꾸 등잔불 속으로 뛰어 들려고만 하는가?
넓은 하늘을 자유로이 훨훨 날아다닐 수도 잇는 일이 아닌가?"
김삿갓은 그 말을 듣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렇다, 내가 여기서 주저 앉는다고 해서 내 할아버지의 과오가 씻어지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그 때 가서 내가 할 일을 찾아 보아도 늦지 않다.
그렇게 생각을 고쳐 먹은 김삿갓은 그로부터 며칠 후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죄인이라 하여 테두리가 큰 삿갓을 특별주문하여 머리에 쓰고
방랑길에 나서게 되었다.
공자 말하기를 하늘에 죄를 짓게 되면 빌 곳이 없다 말했습니다.
하늘이 죄를 사해줄 수 있는 마지막 빌 곳이라는 말입니다.
김삿갓은 그런 하늘이 두렵고 또한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고
삿갓을 쓰고 방랑길에 올랐습니다.
그 후로 김삿갓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늙으신 어머니와 처자가 있는 집에 몇 번 들르지 않았으며
도중에 한 두번 그의 자식이 아버지의 귀가를 간절히 애원하였으나
그 때마다 억지스런 이유를 대거나 자식의 눈을 속여 끝내 귀가하지 않았습니다.
57세 때 전라남도 동복(同福)에서 객사하기까지 삿갓을 쓰고 전국각지를 유랑하였으며,
발걸음이 미치는 곳마다 많은 시를 남겼습니다.
후에 둘째 아들 익균(翼均)이 유해를 영월의 태백산 기슭에 묻었으며
그의 한시는 풍자와 해학을 담고 있어, 희화적(戱畵的)으로 한시에 파격적 요인이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이응수(李應洙)에 의해 《김립시집(金笠詩集)》이 간행되었으며
1978년 후손들에 의해 광주(光州) 무등산 기슭에 시비가 세워졌고,
87년 영월에 전국시가비건립동호회(全國詩歌碑建立同好會)에서 시비를 세웠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 주신님들께 감사드립니다.
한양대에서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계시는 정 민교수님이 본 김삿갓을 끝으로
김삿갓을 만나보자 끝맺음을 합니다.
김삿갓의 해학의 뒷길에는 이럴 수도 저러지도 못하는 체념의 비감이 감돌고 있다.
연구자들은 김삿갓이 특히 과체시에 능하여 2백여 수를 남긴 것을 특기한다.
과체시란 무엇인가?
문자 그대로 과거 시험장에서 요구하는 형식이 지극히 까다로운 시체이다.
김삿갓이 장난질의 와중에서도 그 많은 과체시를 남겼다면
그 속에 담긴 숨은 뜻은 무엇이었을까?
나도 마음만 먹으면 체제가 요구하는 교과서적인 시 쓰기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절규는 아니었을까?
어쨋든 그의 웃음은 슬프다.
그 슬픈 웃음의 뒤안은 외면한 채
자꾸 가십적인 살을 붙여
그를 봉이 김선달류의 '비천한 채담가로'로 만드는 것은
이즈음 사람들의 악취미이다.
지금까지 참고문헌은 한시미학산책, 김삿갓 시 모음집,
김삿갓 구전설화, 김삿갓의 지혜 등이었습니다.
책 선전 하는 것으로 오인될까 출판사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