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걷다가 서보니
산은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이 꽃이 피었네
마약 화공에게 이 경치를 그리라고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그릴까
하루는 김삿갓이 사또 행렬을 따라 꿩 사냥을 나서게 되었다.
그는 본시 사냥을 즐기지 않았으니 사또가 꼭 자신과 동행을 해야 한다며 간청하여
할 수 없이 함께 따라 나선 것이다.
사또는 김삿갓의 시 짓는 솜씨에 반해 있던 터였다.
사또 역시 사냥은 둘째였고 흰눈이 덮인 산과 들의 운치를 즐기며
그에게 시나 한 수 얻어 들을 심산이 더 컸다.
사냥에는 꿩잡이에 능한 포졸 여럿이 따라 붙었고
거기다가 1년동안이나 길들인 매도 데리고 나갔다.
그 매는 사또가 거금 2백냥을 주고 사서 애지중지 아끼는 사냥 매였다.
사냥이 시작되고 눈 덮인 들에서 꿩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포졸들은 재빨리 매를 풀어 꿩을 쫓게 하였다.
사나운 매를 본 꿩은 더 이상 도망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갑자기 땅을 향해 곤두박질치더니 눈 속에 머리를 쳐박고 꼼짝하지 않았다.
원래 꿩은 머리만 숨기면 자기 몸을 전부 숨겼다고 생각하는 아둔한 날짐승이었다.
이제 꿩은 다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눈속에 머리를 박고 죽은 듯이 있는 꿩을 물어오는 일만 남은 매가 하강을 하다 말고
갑자기 방향을 틀더니 하늘로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그러더니 조금 지나자 아예 머리를 돌려 멀리 숲속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아니 저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처음부터 사냥 현장을 비켜보고 있던 사또는 깜짝 놀라 포졸들에게 소리쳐 물었다.
그러나 포졸들이라고 그 까닭을 알리가 없었다.
숲속으로 사라진 매는 영영 나오지 않았다.
사또는 몹시 화를 내며 애꿎은 포졸들만 다그쳤다.
"사냥 훈련을 어떻게 시켰기에 매가 저 모양이 되었느냐?
관아로 돌아가면 내 너희들을 엄히 다스릴 것이다."
이째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김삿갓이 나서서 조용히 말했다.
"사또 노여움을 푸십시오.
제가 보기에는 그리 큰일도 아닌듯 싶습니다."
"그건 그대가 몰라서 하는 소리요. 내가 저 매를 얼마나 공들여 키워왔는데.."
"제가 시를 한 수 지어 올리테니 고정하십시오."
청산에서 얻어 청산에서 잃었으니
청산에게 물어볼 일 청산이 대답하지 않거든
청산에게 죄가 있으니 청산을 잡아 대령하렷다.
시가 마무리되자 사또는 무릎을 탁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러고 보니 옳은 말이구려, 어찌 생각해 보면
제 고향을 찾아 날아간 것인데 속 좁게도 그걸 이해하지 못했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