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리움/진도문화

[스크랩] 둥덩에 타령...

麗尾박인태행정사 2007. 8. 14. 16:38

 

막걸리 동우에 동동...둥뎅에 타령(이윤선)

 

옴박지에 쪽박 엎어놓고

 

 문화재 관리국에서 1980년 5월에 발행한 전라남도 국악실태조사 보고서에는 둥덩에 타령이 전남지방에서 널리 불리워지는 부녀요라고 밝히고 있다.

또 1990년 조사된 MBC 한국민요대전 전남편을 보면 무안 둥당애타령, 영광 둥당애 타령, 완도 둥당애타령, 해남둥당애타령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둥덩에타령이 불리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남도의 전반적인 정서를 대변하는 민요중의 하나로 손꼽을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이 민요대전에, 진도지역에서 광범위하게 불리워지고 있는 둥덩에 타령이 조사되지 않은점등을 볼 때 둥당에타령 권역은 전라도의 거의 전부를 포함하고 있다고 보겠다.

 

둥덩에 타령은 부녀자들이 흥겨이 놀 때 옴박지에 쪽박을 엎어놓고 쏘시게나 숫가락으로 두드리며 노래를 한다. 물래소리 여행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이것을 쪽박장단이나 물장구 친다고도 하고 독꼭지 장단이라 부르기도 한다.

1986년 발행 허옥인의 진도속요와 보존에는 "둥당에타령"을 우리고장의 토속민요라고 밝혔다.

또한 여자들이 율동을 섞어가며 부르며 남들이 보지 못하도록 방문을 걸어잠그고, 목화탈 때 쓰는 활(대로 튀어서 만든것)을 악기 삼아 죽창살에 대고 활을 퉁기면서 노래를 한다고 조사되었다.

근래에 민속경연대회나 문화재 지정등에 관련된 토속적인 이미지의 강조는 둥덩에타령뿐만이 아닌 여러 가지 민요의 연출을 강제했고 덕분에 둥덩에타령은 많은 민속놀이에 활용되는 영광(?)을 안았다.

 

진도아리랑이 통속민요(전문가들이 새로 다듬어서 짠 민요)를 짤 때 항상 말미에 장식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하겠다. 실제로 70년대 후반기를 거치면서 임회면 십일시 고 장성천옹을 중심으로 한 민요그룹이나 지산면 인지리 박병천, 고 조공례를 중심으로 한 민요그룹, 그리고 의신면 돈지리 허옥인, 박병훈을 중심으로 한 민요그룹들은 이같은 새로 짠 둥덩에 타령으로 민속대회에 출전하기도 하고 대외적 공연에 나가기도 했다.

이런 경우에는 주로 물레타령의 메들리(이어서 부르는 노래)로 활용되며 느린 곡에서 빠른 곡으로 이어지는 우리민족음악의 보편성에 따라 해당곡의 후반부를 장식하게 된다.

 

둥덩에 타령이란 이름은?

그러면 둥덩에 타령이란 이름은 어디서 온것일까. 아쉽게도 큰 국어사전에도 둥덩에 타령은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국악 대사전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쉽게 악기의 의성어일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물론 그 악기는 옴박지물에 담근 쪽박이나 대창살에 튕기는 활이 될 것이다.

1989년간 박용수의 우리말 갈래사전에는 덩덩, 덩더꿍, 덩더럭, 둥덩거리다등을 악기의 의성어로 풀이해놓고 있다.

또 둥개둥개, 둥둥등은 아이를 어르는 소리로 풀이해놓고 있다. 제주의 민요 둥그레당실도 둥글다는 이미지뿐만이 아닌 의성어의 영향이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등을 종합해볼 때 둥덩에타령은 옴박지 물에서 쪽박 두드릴 때 나는 "둥덩"소리의 의성어임이 확실해 보이며, 실제로 모두에서 볼 수 있듯이 둥당애타령, 둥덩애타령, 둥덩에타령등으로 혼용해 쓰고 있다.

마찬가지로 북이나 장구의 구음보(입소리를 문자로 표시한 우리의 전통적인 악보)에도 왼편을 궁편, 오른편을 채편(왼손잡이는 반대다)이라 하고 양편을 같이 치는 것을 "덩", "떵", "당", "쩡"등으로 표기한다.

 

아리랑이나 강강술래의 이름이 여러 학설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둥덩에타령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지만 거문고의 구음보도 "둥"소리가 쓰이고 있음을 볼 때 "둥덩에"에 대한 고찰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한편, 느린박자의 민요들이 심미적 정서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빠른 박자의 율동성이 있는 민요는 역동적 흥을 돋구어준다고 하겠다.

둥덩에 타령도 일부 진양조(6박자의 가장 느린 장단)를 부르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빠른 굿거리나 자진모리장단에 속한다.

즉 전형적인 3소박 4박자의 리듬체계로 구성되어있고 거의가 유희적 환경속에서 불리워지기 때문에 내재율을 가진 다른 민요보다 더 가시적인 장단체계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또 신세타령류의 민요가 독주로 불리워지는데 반해 둥덩에타령은 집단에 의해서 그리고 야외보다는 실내에서 불리워진다.

물론 지금처럼 한 사람의 선창자가 주도하거나 일방적인 가사를 배워서 부르는 것이 아닌 "벽돌림노래"(메김소리를 돌가면서 하는 형태)가 가장 일반적인 형태였다.

그러나 남존사상의 가부장적 체제하에서 "가심애피"로 체화되어있는 진도여인들의 '억눌림'을 그 '울림'으로 토로했던 절제된 소리 "둥덩에"는 어쩌면 "집인막걸리"('독엣막걸리'에 대비되는 말)의 또다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님방 잠자러 가세 동호박 동호박/통새 넘어 동호박/

 은장두 드는 칼로/닐닐리 꼭지를/ 다르락 썰어/

가만히 닝게라/ 꼭씹어 닝게라/ 니가 내입에/

둥당동당 떠여라/ 당기둥당에 둥당에덩.(조공례)

 

1979년 7월 지춘상에 의해 조사된 진도의 둥덩에타령에는 지금은 고인이 된 사람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이 참가했었음을 볼 수 있다.

79년 당시 지산면 인지리 조공례(여·55), 김옥옆(여·52), 이남례(여·52), 백복순(여·55), 최덕수(남·59), 박병천(남·47), 의신면 청룡리 한순옆(여·57), 허삼심(여·53), 한임자(여·43), 곽금심(여·57), 군내면 둔전리 최소심(여·72), 박애단(여·46), 김정자(여·52), 박을심(여·55)김덕심(여·53)등이 그들이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둥덩에 타령이 전형적인 여성 유희 요임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이 조사되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문틈으로 엿들었던 사설들을 기억하는 "총"좋은 남자들임에 분명하다. 사설의 내용은 4음보로 구성된 여타의 민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흥과 율동을 동반하는 것이기에 익살스런 성적 비유나 자연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거무야 거무야 왕거무야/ 니줄 내줄 엇따 쳤냐/

강안도 시안도/ 새끼산 이끼산/ 어나주 주찌사/

강천아 질치허라/ 명당굴로 들어간다/

도안마당 뿌루뻗어/ 뛰에 한쌍 꽃이 피어/ 그꽃한쌍 껑꺼들고/

우리임방으로 잠자러가세/ 덩기 둥덩에 둥덩에 덩.(최소심)

 

왜강목보신 손보신/ 왜강목보신 손보신/ 신을줄 모르먼 신지를 말제/ 신었다 벗었다 생급살맞네/

당기 둥당에 둥당에 덩(박을심) 사 상골산 삐둘기/ 사 상골산 삐둘기/ 상골만 잡고서 애뱅뱅돈다/ 덩기 둥덩에 둥덩에 덩.(김정자)

 

니양판 니양판/ 서울서 들어온 내양판/ 은종지기 놋젓가락/ 쩡쩡 울리고 내론다(김옥옆)

 

씨압씨 술값은 홑닷냥/ 며느리 술값은 열닷냥/ 섯달 금날 떡닥칭께/ 씨압씨 상투가 싹절단난다/ 당기 둥당에 둥당에 덩(조공례)

 

이방저방 댕기다가/ 씨압씨 붕알을 볿아서/ 엇쩌다 쫓겨났다네/ 당기둥당에 둥당에 덩(최덕수)

 

일년초 호배추는/ 속히 속히 속드는데/ 어린낭군 우리임은/ 언제 속이 생길랑고/ 당기 둥당에 둥당에 덩(백복순)

 

타래 타래 박넝쿨은/ 단장넘으로 손주는데/ 우리님은 어디가고/ 날손줄줄 모르는가/ 당기 둥당에 둥당에 덩(이남례)

 

진정한 사랑을 아는 진도 여인들 내 유년의 한자락에는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족속들이 벌이는 괴팍성에 대한 가슴아픈 기억들이 있다.

어쩌다 밥에 돌이 씹힌다거나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날이면 기분에 따라 밥상을 엎어버리거나 심지어 거멍솥을 뽑아 팽개치는 위대한(?) 진도의 아버지들.

그런 속에서 한마디 대꾸도 못하고 "정재깐"의 나무청에서 울먹이던 어머니와 그 어머니들의 눈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어쩌다 여자들끼리 만나는 한 저녁 못마시는 막걸리 한사발을 들이키고 처진 "젖통"이 들썩이게 부르던 둥덩에 타령을. 우리는 그런 저녁이면 "뒤까끔" 장솔나무가 내는 바람소리와 그 동당거림을 자장가 삼아 잠을 청했고 한밤중 꿈속에서일 것 같은 달빛에 비췬 창호지 사이로 "웃목"의 우리를 건너 어머니에게로 가는 아버지를 보았다. 화해였을까 ?

일찍이 시인 곽재구는 진도를 여행하면서 얻은 감동들을 그의 책 "내가 사랑한 사람 내가 사랑한 세상"에 비교적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그 속에는 진도여인들의 삶을 지극한 애정으로 바라보았던 시인의 맑은 눈이 투시돼있고 둥당에 타령으로 흥을 돋구던 투박한 모습들을 아름다운 배경으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이 시인도 진도를 드나들었던 수많은 학자들 중의 한 사람에 지나지 않는 이방인일 뿐이지만 그렇더라도 나는 그의 애정을 가슴 벅차게 받아들인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그리고 그 시인처럼 이야기한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사랑하는 진도(이윤선님의 글입니다)

출처 : 여미리를 아시나요
글쓴이 : 쏙대네식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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