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진도군 소개 요약
요약 : 2001년 기준 전라남도 서남단 해남반도 남서쪽에 있는 군. 면적 : 420.32㎢ 인구 : 4만 2229명(2001) 인구밀도 : 100명/㎢(2001) 가구수 : 1만 5735(2001) 행정구분 : 1읍 6면 군청 소재지 : 진도군 진도읍 성내리 64-1 군의 꽃 : 동백꽃 군의 나무 : 후박나무 면적 420.32㎢, 인구 4만 2229명(2001)이다. 동쪽은 명량해협(鳴梁海峽)을 사이에 두고 해남반도(海南半島)로 이어지고, 서쪽은 황해, 남쪽은 제주해협으로 틔어 있으며, 북쪽은 해남군 화원반도(花源半島) 및 신안군의 여러 섬들과 마주한다. 진도읍·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지산면·조도면 등 1읍 6면으로 이루어졌다. 군청소재지는 진도읍 성내리이다. 우리 나라에서 3번째로 큰 섬으로 전라남도 면적의 3.6%를 차지하며, 수리적(數理的)으로는 동경 125°37'∼126°28', 북위 34°08'∼34°35'에 위치한다.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 45개의 유인도와 185개의 무인도 등 23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해의 관문으로서 극동은 고군면 와도, 극서는 조도면 죽도, 극남은 조도면 병풍도리, 극북은 군내면 나리이다. 전라남도의 군 가운데 구례군·곡성군에 이어 인구가 3번째로 적은 곳으로, 특히 1985~1995년에는 37.5%의 인구감소율을 보였다. 인구는 진도읍에 집중되어 있고 군내면의 인구가 가장 적다. 진도군은 남서방향의 소백산맥 지맥이 황해에 이르러 서서히 침강하여 이루어진 다도해 섬으로서, 동북부는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서남부는 급경사로 인한 침식해안으로서 경관이 빼어나다. 중생층 점판암 토질로 유기질이 많아 비옥하고 해안은 개펄로 이루어져 해산물이 풍부하다. 전체면적의 70% 정도가 산과 구릉지이며, 지질은 백악기의 반암과 응회암이 대부분이다. 특히 진도·상조도·하조도·가사도 등의 섬들은 지질시대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있던 섬들이다. 산은 200~400m 정도의 산지가 많은데, 동쪽에는 첨찰산(尖察山:485m)·덕신산(德神山:385m)이 자리하고, 서쪽에는 지력산(智力山:325m)·석적막산(石積幕山)이, 북쪽에는 금골산(金骨山)·설매봉(雪梅峰) 등이 있다. 또 이들 산지 사이에는 좁은 계곡평야와 잔구가 생성되어 있다. 하천으로는 석교천(石橋川)·인지천(仁智川)·이십오천(二十五川)·진도천·의신천 등이 있으나, 대부분 3~6㎞로 짧다. 의신천만이 10㎞ 정도로,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대부분의 하천이 하상경사가 급하다. 해안선은 총 662.3㎞로서 리아스식 해안이라 양항이 많은 편이다. 계절에 따라 여름에는 태풍, 겨울에는 북서계절풍의 영향으로 큰 파도가 많다. 진도 본도의 만입지에는 간석지가 발달했고,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동거차도·서거차도·대마도·관매도·외병도·내병도의 해안을 따라 해식애와 파식대가 발달해 있다. 특히 울돌목으로 부르는 명량해협에는 시속 79㎞의 빠른 조류가 흐르고 있는데, 이 조류는 일본의 나루토[鳴門]해협과 함께 아시아에서 가장 빠른 조류로 알려져 있다. 기후는 남쪽 해상 부근을 흐르는 난류의 영향으로 온난하지만, 겨울에는 북서 계절풍의 영향을 직접 받기 때문에 인접한 완도군과 부산보다 기온이 낮다. 연평균기온 13.8℃이고, 1월 평균기온 1.7℃, 8월 평균기온 26.4℃이다. 연평균강수량은 1,121㎜이며, 봄과 여름에 비가 많다. 특히 봄철에는 짙은 안개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는 부근 해상교통에 많은 장애가 되기도 한다. 진도대교가 개통되면서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졌으며,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을 중심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유물·유적, 천연기념물, 기·예능보유자가 많다.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의 친근한 이미지를 상징하는 '진돌이'가 마스코트이다. 2. 연혁 신석기시대 이전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것이 없으나, 고인돌·석부·선돌 등 청동기·철기시대의 것은 많이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사람이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 마한의 소국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시기를 전후해 바구니섬으로 부르게 되었다. 백제시대에는 인진도군(因珍島郡)이라 하여 현 고군면 고성에 관부를 두고, 영현으로 도산현(현재의 고군면·군내면 방면)과 매구리현(현재의 임회면 방면)을 거느렸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인진도군을 진도현으로 고쳐 무안군의 영현으로 삼았고, 매구리현은 첨탐현으로 고쳐 뇌산군에 소속시켰다. 757년(경덕왕 16년) 도산현을 뇌산군으로 승격 독립시키고 매구리현을 담침현으로 바꾸어 뇌산군에 따르게 하였다. 후백제의 견훤이 고려 왕건에게 패한 뒤 고려의 지배 하에 들어갔다. 940년(고려 태조 23)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뇌산군을 폐지하고 가흥현으로, 첨탐현을 임회현으로, 진도현을 외이현으로 고치고, 새로이 진도군을 독립시킨 뒤 3현을 편입시켜 치소를 고성에 두었다. 1018년(현종 9)에 읍성을 고성에서 용장성으로 옮긴 후 남도포에 진을 설치하고 수군을 조련하였다. 1269년(원종 11)에는 경상도 창선현 사고(史庫)를 이전하였다. 1270년(원종 11) 6월, 삼별초의 배중손(裵仲孫)이 왕족 승화후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용장을 도읍으로 정하여 서남해안을 장악하고 대몽 항쟁을 계속하였으나, 여몽 연합군이 삼별초군을 토벌함에 따라 진도가 함락되고 잔여세력은 제주도로 옮아감으로써 1만여 명의 주민이 몽고에 잡혀가는 등 진도는 거의 황폐해졌다. 대신 군마사육장이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4천 필 정도의 우마를 방목하는 큰 규모의 목마장이 되었다. 왜구의 잦은 침략으로 1350년(충정왕 2) 한때 섬주민을 육지인 영암의 월악과 명산, 금산으로 옮기기도 하였다. 이후 80년간 진도에는 행정기관을 설치하지 않고 금산에 관부를 둠으로써 공도(空島)가 되었다. 조선시대 1409년(태종 9)에 해남현과 합해 해진군이 되었다. 1437년(세종 19) 해남군과 분리하여 진도군이 복구되었고, 읍터는 고성에 임시로 두었다가 1440년에 지금의 진도읍으로 관부를 옮겼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의 중심 활동무대였으며, 1597년 정유재란 때의 명량대첩과 고금도해전이 유명하다. 1662년(현종 3)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71년 군으로 승격하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유배지로서 많은 인물들이 이곳에 유배되었다. 특히 소치 허유와 미산 허형 등 남종화의 대가들이 다수 배출되어 지금도 그 제자들이 화단의 맥을 잇고 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고종 32) 진도군이라 개칭하고 나주부에 귀속시켰다. 1906년 삼촌(三寸)·명산(命山) 2개 면이 영암군에 이관되고, 1906년(광무 10)에는 육지부의 명산면, 삼촌면을 영암군과 해남군에 각각 귀속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면을 폐합하여 안창면·가좌면·도초면을 무안군에 귀속하고, 진도군은 진도면·군내면·고군면·의신면·임회면·조도면·지산면으로 하여 7개면 101리가 되었다. 6·25 전쟁으로 황해도 출신의 피난민 3천여 명이 진도에 정착하였고, 전쟁중 한때 적군에 함락되었다가 수복되었다. 1963년 1월, 조도면(鳥島面) 마진도리(馬津島里)를 무안군에 이관시켰다. 1966년 조도면 가사도(加沙島)에 가사출장소를, 서거차도(西巨次島)에 거차출장소를 설치하였다. 1973년 군내면의 수역리·수유리·해창리·산월리가 진도면으로 편입되었다. 1979년 5월에는 진도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재조정으로 조도면(鳥島面) 가사도리(加沙島里) 일부(고사도·평사도·송도)가 신안군 신의면(新衣面)으로, 역시 조도면 만제도리(晩才島里)가 흑산면(黑山面)으로 이관되었다. 1985년 진도대교 완공으로 비로소 육지와 연결되었다. 1990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신안군의 저도 외 5개 섬이 진도읍으로 편입하였고, 1992년에는 의신면 도목리가 도목리와 도항리로, 접도리는 원다리로, 임회면 죽림리는 동헌리로, 지산면 소앵무는 백연동리로, 심동리는 상심동리와 하심동리로 분리되어 236개 이(里)에서 241개로 늘었다. 2001년 현재 진도군의 관할구역은 진도읍·군내면(郡內面)·고군면(古郡面)·의신면(義新面)·임회면(臨淮面)·지산면(智山面)·조도면의 1읍 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3. 산업 섬으로 이루어진 군이지만 주민의 일부가 반농반어(半農半漁)에 종사할 뿐 대부분의 주민은 농업을 전업으로 한다. 산업구성비는 1차산업 77.7%, 2차산업 1.2%, 3차산업 21.1%로 제조업이 극히 미약하다. 총경지면적 127.5㎢ 가운데 논 69.9㎢, 밭 57.6㎢로 논밭의 비율이 비슷하며, 경지율은 30%이고 농가수 9,331호, 농업인구 2만 5264명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쌀보리·맥주보리·콩·목화·참깨·고구마·마늘 등과 진도대파 등 각종 채소류에 엽연초 등이 생산된다. 특산물로는 검정약쌀·구기자·돌미역·돌김·진도홍주·멸치·유자가 있다. 특히 진도 특산물로 손꼽히는 구기자는 난류와 한류가 교차하는 해양성 기후와 일조시간이 가장 긴 지리적 특성으로 진도읍·의신면을 중심으로 생산된다. 단감·포도·배·복숭아 등의 과일과 양봉·양잠도 활발하다. 임야면적은 256㎢로 군 전체면적의 약 60%를 차지하며, 임산물로 밤·대추·표고버섯 등이 생산된다. 주요 가축은 소·돼지이지만, 진돗개(천연기념물 53)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진도읍·지산면·임회면을 중심으로 사육되는 진돗개는 매년 4~9월에 심사하여 우수한 것은 족보에 올리기도 한다. 진돗개는 구기자·돌미역과 함께 오래 전부터 진도군의 3대 보배로 손꼽힌다. 지리적 특성상 수산업이 활발한데 어가수 3,685호에, 어업인구는 8,203명이다. 진도군 일대의 해역은 대륙붕 지역이고 북상하는 쿠로시오 해류의 영향으로 어족이 풍부하며 육지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해수 오염이 없어 해조류 양식에 유리하다. 연안의 바다에서 조기·갈치·도미·새우·해삼·고등어 등이 많이 잡히고, 연안의 만(灣) 일대에서는 미역·굴·김·패류(貝類) 등의 양식업이 활발하다. 연간 6만 7140t 정도의 수산물을 어획하며, 492억 6900만 원 정도의 소득을 올린다. 광물자원의 매장량은 많지 않으나 석재(石材)·납석·고령토·규사(硅砂) 등의 매장량이 많다. 군내면·조도면을 중심으로 연간 1만 1810t의 납석을 채굴한다. 제조업의 발달은 미비하고 소규모 도정·제분·양조업이 영세하게 이루어지며, 30개 업체에서 주로 해산물을 가공한다. 농공단지 1곳이 있다. 진도읍에 상설시장이 있고, 진도읍·고군면·의신면·임회면·조도면 등 5개소에서 5일 정기시장이 열린다. 대부분 가축시장을 겸하며, 농산물과 일용잡화가 거래된다. 4. 교통관광 서해의 관문으로서 해남반도에서 이어지는 국도가 진도대교를 통해 군의 중앙부를 통과하며, 내부에 지방도(801·803번)와 군도, 농어촌도가 진도읍을 중심으로 군내 주요지역으로 통한다. 도로 총길이 266.55㎞, 도로포장률 81.9%, 자동차등록대수는 6,565대이다. 군내면 녹진리(鹿津里)와 해남군 문내면(門內面) 학동리(鶴洞里) 사이에 연륙교인 진도대교가 놓임으로써 육지와의 교통이 편리해져 관광객 유치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진도 일주도로가 확장되었고, 해남을 거쳐 광주·목포·강진을 잇는 도로가 포장되었으며, 화원반도와 영암군 삼호면(三湖面)을 잇는 방조제가 완공되어 목포·광주와의 도로교통이 더욱 편리해졌다. 진도와 서울은 1일 4회, 진도와 부산은 1일 2회 왕복 운행한다. 해상교통으로 목포·제주·진도군 관내의 여러 섬들과 연결된다. 목포와 서거차도(西巨次島) 사이를 운항하는 연안여객선이 진도 남서단의 팽목을 거치고, 군의 북동쪽 고군면 벽파리의 벽파항은 목포와 완도, 목포와 제주를 잇는 중간 기착지로 목포·완도·제주와 연결된다. 조도면의 여러 섬은 정기여객선을 통해 조도와 목포를 연결한다. 항공이나 철도교통은 목포나 광주를 이용하고 있다. 문화재는 2001년 현재 국가지정문화재로 보물 1점, 사적 2점, 천연기념물 5점, 명승지 1점이 있다. 도지정문화재는 유형문화재 5점, 무형문화재 3점, 기념물 2점과 문화재자료 4점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인 강강술래 등 예능보유자 13명, 기능보유자 1명(전통진도홍주)이 있다. 대표적인 무형문화재로 강강술래, 남도 들노래, 진도 씻김굿, 진도북놀이, 진도만가, 진도홍주가 있다. 진도 관광은 진도대교·금골산·금골산 5층석탑·백조도래지·용장산성·용장사·석불좌상·이충무공전첩비가 있는 녹진권, 신비한 바닷길과 가계해수욕장, 오산리 선돌, 고성리 고인돌이 있는 회동권, 운림산방·쌍계사·진도향교·왕온묘·의신면상록수림·문화예술관·향토문화회관이 있는 사천권, 남도석성·남진미술관·상만비자나무·상만사지5층석탑이 있는 서망권, 접도·구자도·매섬·조도 6군도·관매해수욕장·시닉드라이브 여행을 할 수 있는 다도해권으로 크게 나눈다. 녹진권의 진도대교는 1984년 10월 18일 준공된 길이 484m, 폭 11.7m의 사장교로 낙조와 야경이 아름답고, 다리 아래의 울돌목 물살이 장관을 이룬다. 이 울돌목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승전장 명량대첩지로 잘 알려진 서해의 길목으로, 해남과 진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이루는데, 바다 폭이 한강 너비 정도인 294m 내외이다. 물길은 동양 최대의 시속을 지닌 11노트의 조수가 흐르며, 물소리가 크고 거품이 일며, 물이 용솟음치기 때문에 배가 거스르기 힘든 곳이다. 회동권의 신비한 바닷길은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義新面) 초평마을, 모도(茅島) 사이의 바다에서 해마다 음력 2~3월의 보름이나 그믐께에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져서 바닷길이 열리는 현상을 말한다. 약 1시간의 일시적인 현상을 보기 위해서 전 세계에서 많은 관광객이 몰려오고, 이와 때를 같이 하여 각종 문화행사가 열린다. 1996년 일본의 인기가수 덴도요시리는 신비한 바닷길을 주제로 한 노래를 불렀고 이후 일본 관광객이 급증하고 있다. 사천권의 운림산방은 첨찰산 아래 자리하고 있으며, 앞에 연못이 있어서 아침 저녁으로 연무가 운림(雲林)을 이룬다. 이곳에서 화가 소치(小痴) 허유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재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배운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운림산방은 소치-미산-남농(南農)-임전(林田) 등 4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 온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쌍계사의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에는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으며, 운림산방에서 150m 정도 오르면 1995년 8월 15일에 세워진 진도아리랑비가 아담하게 서 있다. 서망권의 남도석성(南桃石城:사적 127)은 고려 원종 때 배중손 장군이 삼별초군을 이끌고 진도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고 최후까지 격전을 벌인 석성이다. 성종~연산군 때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본래의 규모는 둘레가 1,233자, 높이가 8자, 샘과 우물이 각각 1개씩 있었다. 영조 때는 석축 둘레 1,040자, 높이 12자였다고 하는데 현재도 성터가 거의 원형으로 보존되고 있으며, 동문·서문·남문터가 있다. 현재 성의 총 길이는 610m, 높이는 5.1m이다. 조선시대 수군진영의 진지로서 보존 가치가 매우 크다. 진도 남서쪽 해상의 조도(鳥島)·거차군도(巨次群島)·독거군도(獨巨群島)·맹골군도(孟骨群島) 일대의 많은 섬들은 기암괴석·백사청송(白砂靑松)의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이다. 접섬·금갑도·갑도·접배도라고 하는 접도는 조선시대의 유배지로 곳곳에 기암 절경과 상록 활엽수림, 낙엽수림이 혼재해 풍경이 아름답다. 아직도 오염되지 않은 맑은 바다에 둘러싸여 청정한 자연을 접할 수 있다. 배로 섬을 일주할 수도 있고 낚시를 즐길 수도 있다. 날씨가 좋은 날 이 섬의 남방산에 오르면 제주도가 눈앞에 펼쳐진다. 접도 11경이 있다. 이 밖에도 삼별초(三別抄)의 근거지와 관련된 용장산성(龍藏山城:사적 126)을 비롯해 옛 성터·절터·싸움터 등 명승고적이 많다. 비경을 간직한 조도면 관매리(觀梅里)에는 국내 최대의 후박나무가 있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해수욕장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쪽빛바다 등 많은 관광지가 있다. 5. 사회문화 한국의 대표적 민요인 《진도아리랑》의 발상지인 진도는 예로부터 문화와 예술의 고장으로 알려져 왔다. 진도아리랑을 비롯해 남도지방에서 불리는 창이나 민요 등 어디를 가나 부녀자들의 노래 가락을 들을 수가 있다. 진도지방에서 불리는 토속민요는 김매기 등 농사를 하면서 부르는 농업요가 대부분이고, 닻배노래 등 고기를 잡으면서 부르는 어업요나 유희요 등이 많다. 특히 진도아리랑은 그 여음의 묘미가 특색이다. 조선 후기 남종 문인화(南宗文人畵)의 대표적 화가인 소치(小痴) 허유(許維)로부터 미산 허형,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남농(南農) 허건으로 이어지는 화가(畵家), 서예가 소전(素鵡) 손재형(孫在馨) 등이 진도 출생이다. 지금까지 국전에서 특선 40여 명, 입선 110명의 수상작가를 배출했다. 이와 같은 문화적 전통을 알리기 위해 해마다 4월에 옥주문화제(沃州文化祭)가 열린다. 향토문화제로, 매년 4~5월 신비한 바닷길이 열리는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리의 영등축제가 있다. 문화행사로 진도가락공연·군립민속예술단·판소리·강강술래·남도 들노래·씻김굿·축등행렬·노래자랑과 각종 민속경연 등이 열린다. 또 부대행사로 진돗개 묘기자랑, 뽕할머니 축원제, 진도 특산명물장, 서화 전시회, 홍주시음회 등이 함께 펼쳐진다. 1965년에 개원한 진도문화원이 무형문화재의 전승 및 허유를 추모하는 소치미술제를 주관하는 등 향토예술 발전에 힘쓰고 있다. 군내의 교육기관으로는 2001년 현재 고등학교 4개교, 중학교 7개교(분교 1개교), 초등학교 14개교(분교 18개교)가 있다. 조선시대 진도의 교육기관에 관한 자료는 드문 편이며, 진도읍에 있는 진도향교도 설립연대를 1437년경으로 추정할 뿐이다. 서원으로는 1602년(선조 35)에 설립된 봉암서원이 있었다고 한다. 근대적 교육기관으로는 1909년에 설립된 진명학교가 있는데 1920년에 5년제 보통학교가 되었고, 지금은 진도초등학교다. 이 밖에 1920년에 설립된 석교공립보통학교가 있고, 1922년에 세워진 의신개량서당은 지금의 의신초등학교다. 중등교육기관으로 1937년에 개교한 진도농업실습학교는 지금의 진도서중학교의 전신이며, 1951년에 세워진 진도농업고등학교는 1968년에 진도실업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문화시설로는 다목적예술회관·도서관·청소년수련관이 각각 1곳, 전시관·전수관이 각각 3곳, 공원 10곳이 있다. 의료기관으로는 병의원 12개소, 한의원 3개소가 있다. |